고향의 서정 읊은 한국 단편문학 대표주자오영수(吳永壽). 호는 월주(月州), 난계(蘭溪). 본관은 해주(海州). 1909년 울주군 언양면 동부리에서 아버지 오시영과 어머니 손필옥 사이에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 때 오영수의 출생일이 1914년(혹은 1911년) 2월11일로 알려졌으나 이호종이 '난계 오영수론'에서 호적부에 '명치 42년(1
'타향살이'로 망국의 한 달랜 국민가수고복수(高福壽). 민족 항일기부터 1970년대 초까지 활약한 울산출신의 가수. 1911년 2월10일 울산군 하상면 서리(울산시 중구 서동) 21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제주. 가수 황금심과 사이에 장남 영준(가수) 등 3남2녀를 두었다.고복수는 울산출신의 국민가수이다. 이 나라의 대중가요사를 얘기할 때 결코 그를
학문적 기반 닦은 한국민속학의 출발점송석하(宋錫夏). 민속학자. 호는 석남(石南). 은진 송씨.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양등리 출신. 1904년 10월1일 고종의 시종부경(侍從副卿)을 지낸 부친 송태관과 모친 경주 최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독선생을 두고 한학을 공부했다. 1912년(9세) 신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언양공립 보통학교(지금의 언양초등)에
갱생의 길 제시한 민족의 위대한 스승최현배(崔鉉培). 우리말 연구와 한글 지킴이로서 평생을 살다간 겨레의 큰 스승이자 선각자. 호는 외솔. 본관 경주. 1894년 10월19일 경남 울산군 하상면 동리(울산시 중구 동동) 613번지에서 아버지 최병수, 어머니 박순화 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형제로는 병영 3·1운동을 주도했던 동생 현구가 있다. 어린시절 몸
국내 항일운동사 큰 획 그은 독립운동가박상진(朴尙鎭). 독립운동가. 자는 기백(璣伯). 호는 고헌(固軒). 본관은 밀양. 1884년 (고종21년) 12월7일(음력) 경남 울산 송정에서 승지 시규(時奎)와 여강 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태어난지 100여일 만에 큰 아버지 교리 시룡(時龍)의 양자로 입양됐다. 그후 양부모가 계신 경주 녹동과 생부모가
인재양성과 대한독립 위해 살다간 선각자'김홍조(金弘祚). 자는 경옥(景玉). 호는 추전(秋田). 본관은 금령(金寧). 고려 때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금령군(金寧君)으로 봉한 김시흥(金時興)의 25세손이자 사육신중 하나인 백촌 김문기의 16세손. 할아버지는 호조참의 김형복, 아버지는 선공감 가감역을 지낸 김규한(金奎瀚). 1868년(고종5년) 1월18
인재양성과 대한독립 위해 살다간 선각자김홍조(金弘祚). 자는 경옥(景玉). 호는 추전(秋田). 본관은 금령(金寧). 고려 때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고 금령군(金寧君)으로 봉한 김시흥(金時興)의 25세손이자 사육신중 하나인 백촌 김문기의 16세손. 할아버지는 호조참의 김형복, 아버지는 선공감 가감역을 지낸 김규한(金奎瀚). 1868년(고종5년) 1월18일
서인충(徐仁忠). 자는 방보(邦輔). 호는 망조당(望潮堂). 본관은 달성. 고려 판도판서 진(晋)의 후손. 달성군(達城君) 영(潁)의 8세손이자 제처사 구계선생 심(深)의 7세손. 증조부는 주부(主簿) 건손(乾孫), 조는 증 정랑(贈 正郞) 규(規). 아버지는 증 공조참의(贈 工曹參議) 희(熙), 어머니는 숙부인 경산전씨(慶山 全氏)이다. 1554년 9월1
송도(宋滔). 조선초기 세종 때의 인물. 울산시 북구 효문동에서 출생했다. 생몰년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본관은 연안. 고려 1359년(공민왕 8년)에 홍건족 모거경(毛居敬)을 격퇴한 공으로 1등 공신에 책훈되고 연안부원군으로 봉해진 송경(宋卿)의 8세손. 부친은 침(琛)이다. 침은 종묘서(宗廟署) 령(令)과 문화현령(文化縣令) 등을 지냈는데 울산으로 생활
이의립(李義立). 본관은 경주. 자는 예겸(禮兼). 호는 구충당(求忠堂). 신라좌명 공신 급량부대인 휘 알평의 후손. 부친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에 증직된 이영부, 모친은 경주 설씨. 1621년(광해군 13년) 5월18일 울주군 두서면 전읍리(옛날 경주부 남쪽 전읍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했다. 5세 때 천자문을 읽고 7세 때에 '오포시
이예(李藝). 조선 전기의 관원(외교관). 본관은 학성(鶴城). 아호는 학파(鶴坡). 시호는 충숙(忠肅). 학성이씨 시조. 1373년(공민왕 22) 울산에서 태어나 1445년(세종27) 2월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예의 부친과 조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다만 학성이씨 문중에서 '고려말 왕조 교체기에 불사이군의 절개를 지키다 조선 왕조의 미움을
김취려(金就礪 1172-1234). 고려 후기의 무신. 시호는 위열(威烈). 본관은 언양. 신라 경순왕의 일곱째 아들인 언양군(彦陽君) 김선(金鐥, 언양김씨 시조)의 후손. 아버지는 예부시랑 부(富)이다.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에서 태어났다. 음서제도(문음, 과거에 의하지 않고 조상의 후광으로 관리를 채용하는 제도)에 의해 정위(正尉)에 임명되면서 공직생활을
곽암(藿巖)(울산시기념물 제38호). '미역바위'라는 뜻이다. 울산시 북구 구유동 판지마을 바닷속에 있다. '양반돌', '박윤웅돌' '사암'이라고도 한다. 고려 왕건이 940년(태조 23년) 울산 호족 박윤웅에게 하사한 12개의 바위 중 하나이다. 그런데 박윤웅(朴允雄)은 누구인가. 울산 박씨의 시조이다. 박혁거세의 36세손으로 신라 하대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