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윤리학자 피터 싱어에 의해 ‘동물 해방’ 운동이 일었다. 인간 이외의 동물은 서구 지성사에서 오랫 동안 도덕적 보살핌의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 했다. 플라톤부터 이어져 온 생각, 즉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만이 자연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다만 칸트는 동물을 함부로 대하는 행위는 다른 인간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으므로, 동물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인간이 중심이었다.싱어는 도덕적 배려의 기준을 생각하는 능력이 아닌 고통과 쾌감을 수용하는 능력에 둬야 한다고 보았다.
얼마전 ‘촘촘히’와 ‘많이’를 둘러싼 한 문제로 화제가 됐다. 고등학교 시험 문제에서 전류의 세기를 크게 하는 방법에 관한 서술형 문제를 출제했다. 학생은 답으로 ‘코일을 촘촘하게 감는다’라고 표현했으나 오답 처리됐다. 정답은 ‘코일을 많이 감는다’였기 때문이다. 한 동안 ‘촘촘히’와 ‘많이’를 둘러싼 논의가 온·오프라인에서 벌어졌다.4지 선다형 문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서술형 문제가 공교육에 도입됐다. 그러나 서술형 문제 역시도 정답에 해당하는 답을 정확하게 써야한다는 점에서 4지 선다형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분명
인류의 지성사를 보면 매우 오래전부터 주관과 객관을 구분해왔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문명 발달이 가능하지 않다. 내가 배가 고프든, 사과를 먹고 싶든 상관없이, 채집해 온 사과가 가령 20개라는 사실은 객관의 영역에 속한다.하지만 이 둘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주위에 꽤 많다. 소위 갑질은 가해자의 주관적인 성향이나 고집 등이 반영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피해자는 공감이나 동의할 여지를 갖지 못한다. 요즘 갑질은 거대 권력을 가진 사람만 하지 않는다. 상품이나 음식 평가자, 민원 제기자, 수업 평가자
한 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으로 교사의 지위와 학부모의 갑질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오은영 박사를 향한 과도한 비난을 목격하고 있다. 옹호자는 오은영 박사의 금쪽이 솔루션은 각 가정의 자녀를 향한 하나의 교육적 대안일 뿐, 공교육에 적용할 내용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자는 오 박사의 방송과 저서가 일반적인 교육 방법이 아니며, 오히려 자녀를 향한 부모의 과도한 집착을 부추겼다고 주장한다. 교육의 문제는 워낙 복합적이라서 하나의 원인만을 찾기가 힘들다. 그런 점에서 오은영 박사를 향한 과도한 비난은 자제할 필
17세기 프랑스가 낳은 천재 파스칼은 생전에 강렬한 종교 체험을 했다. 그리고 수학자와 과학자의 모습에 기독교 변증가의 모습이 더해지게 된다. 기독교 지성인으로서 자기 생각을 담아 정리한 책이 바로 이다. 이 유명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독자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이 책은 내용이 어렵지 않고, 유명한 구절이 많아 꼭 한 번 일독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에는 그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에 비유한 구절이 나온다. 우주는 거대하고 힘이 세어서 단 한 방울의 물방울과 같은 힘만으로도 전 인류를 없앨 수 있다. 오늘날 과
전지한 신, 곧 모든 것을 다 아는 신이 있다고 해보자. 그가 오늘 당신에게 질문 하나에 대한 답을 해준다고 해보자. 당신은 어떤 질문을 하겠는가. 어떤 이는 앞으로 사게 될 로또 1등에 해당하는 번호를 묻고 싶어 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자신이 언제 죽는지를 궁금해할 것이다. 또 다른 이는 자신이 하는 일의 결과가 좋을지 궁금해할 수도 있다.필자는 인간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능력이 있는지 묻고 싶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필자에게는 로또 1등 번호이고, 하는 일의 좋은 성과이고, 삶과 작별할 때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줄 답이기 때문이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나러 온 사람들은 어린 자식을 품에 안고 울부짖으며 감옥을 나가는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를 목격한다. 무겁고 참담한 분위기 속에 그들은 독배를 마시고 죽음을 맞이해야 할 소크라테스를 만난다. 그러나 그들은 즐거워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보고 의아해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영혼을 믿으며, 따라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에 즐거운 일이라고 말한다. 방문객 중 케베스와 심미아스는 소크라테스에게 혼자서만 영혼과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지 말고 자신에게 증명해달라고 요청
과학은 만능일까. 인류가 직면한 모든 지성의 문제는 과학 발전으로 해결될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과학 활동은 특정한 방법을 통해 이뤄진다. 주로 통계, 실험을 통한 ‘귀납추론’으로 일반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거나, 먼저 가설을 내놓고 옳고 그름을 탐구하는 ‘가설연역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과학 활동에서는 어떤 현상의 ‘과학적 원인’을 탐구한다. 그러나 과학 활동은 만능이 아니다. 통계, 실험, 가설연역법은 세계의 진짜 모습을 알아 가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이는 마치 젓가락이란 도구와 같다. 젓가락으로
독일 브레멘 대학에서 예술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하면서 사진예술을 접하게 됐다. 그리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난 뒤에 사진을 틈틈이 찍었다. 여러 계기를 통해 결국 2022년 한 해 동안 서생면 평동마을에서 물질로 생업을 잇고 계신 해인(海人)들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을 맡게 되었다. 보통 제주도 해녀(海女)의 모습을 떠올리지만, 울주군 서생면에도 해녀들이 제법 있다. 평동마을에는 3대째 물질을 하고 있는 해남(海男)도 있다. 그래서 필자는 해녀라는 단어보다는 해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1년 동안의 사진작업은 올 2월에 ‘평동마을의 해인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때 지구 종말에 관한 얘기가 나오곤 한다. 옛 예언자들의 내용이 다시 언급되거나, 아니면 더 과학적인 근거로 뒷받침된 종말의 시나리오가 뉴스거리로 오르곤 한다. 백두산 화산폭발, 태양풍에 의한 자기폭풍이 현실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자연재해로 손꼽힌다. 지구온난화로 미국의 일부 지역은 영화 ‘투모로우’의 극한 상황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자연재해는 증가할 것이다.언젠가 16세기 벨기에 화가 페터 브뤼헬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브뤼헬의 그림 속 배경은 늘 겨울이었다. ‘이 화가
1980, 1990년대의 대학문화는 많은 부분 옛이야기가 되었다. 잔디밭이나 운동장에 모여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20대의 고민과 기쁨을 해소하던 통로가 더 다양해졌다. 술과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의 취향이 존중받고, 가부장제가 묻어나던 표현도 삼가야 하며, 다양한 취향과 취미가 존중받고 있다. 예전엔 ‘괴짜’ 정도의 취급을 받던 사람도 이제는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 중 어느 하나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일방향적, 집단적, 수직적 소통을 거부하는 사회적 흐름은 대학문화에도 드러난다.필자는 울산대학교에서 사진-산책 동아리를
어쩌면 우리에게 한 유명 가수의 노래 제목으로 더 익숙한 표현 ‘아모르 파티’는 ‘운명을 사랑하라’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소위 중독성이 강해 입시철 금지곡으로 선정되기도 했을 만큼 유명한 노래이기도 하다.그러나 이 표현은 인문학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철학자 니체가 강조했던 표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니체는 우리가 스스로 ‘자유롭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내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마치 포수의 글러브를 향해 날아가는 야구공이 자신이 자유롭게 날아가고 있다고 믿는 착각과 같다는 것이다. 우리의 선택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1926~2009)에게 수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수줍은 천재’, ‘은둔형 사진가’, ‘셀피(selfie)의 원조’ 등등. 마이어는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고, 평생 보모로 일하며 15만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2007년 작은 경매장에서 우연히 그의 사진을 낙찰받은 아마추어 역사학자 존 말루프에 의해 공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마이어가 사용했던 카메라 중 하나는 ‘롤라이 플렉스’라는 중형 카메라이다. 카메라를 명치나 가슴 쪽에 놓고 고개를 숙인 채 카메라 위쪽에
2019년 캘리포니아주 채프먼대학 뇌연구소에서 열린 국제컨퍼런스에서 40개 대학에서 온 90명의 철학자와 신경과학자가 ‘자유의지’를 규명하기 위해 학제간 연구를 하기로 합의했다. 신경과학자 마오즈와 철학자 암스트롱이 공동으로 연구 책임을 맡았다. 그리고 2022년 그 연구성과물이 (philosophers and neuroscientists in converation)란 제목으로 출간됐다.내용상 큰 진전이 있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지만, 철학자와 신경과학자가 공동의 문제를 놓고 서로 도움을 줄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좋은 스승이 참 많았다. 모두 다른 지면에서 꼭 소개하고 싶은 분들이다. 그중에서 나의 전공 분야에서 독일 본(Bonn)대학교 디터 슈투르마 교수님을, 부전공 분야에서는 사진가 김홍희 선생님을 꼽고 싶다. 두 분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우선 제자로 키우고 싶은 대상을 굉장히 강하게 시험해본다. 철학 박사논문에 대한 첫 발표 시간에 슈투르마 교수님의 혹독한 비판으로 결국 논문 계획을 처음부터 새로 짜야 했고, 1년 동안 혹독한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김홍희 선생님은 처음 보신 내 사진을
철학자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어릴 적 신동이었다. 세 살부터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학습에 몰두했다. 그의 아버지는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으로부터 공리주의라는 새로운 사상을 배웠다. ‘좋은 선택이란 다수에게 이익을 주는 선택’이라는 벤담의 생각은 이후 많은 문명권에서 대표적인 선택의 객관적인 기준으로 여겨진다.그런데 벤담의 사상에서 이익은 곧 쾌락이었고, 심지어 어떤 선택이 어느 정도의 쾌락을 주는지 계산까지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을 계승한 밀은 벤담이
서울에서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의 사진전을 보고 왔다. 레이터는 1950~1960년대 미국의 길거리 풍경을 찍은 컬러사진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흑백사진이 사진의 주류로 인정받고 있었기에 레이터의 컬러사진은 그가 80세가 되어서야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평소 사진을 좋아하던 필자는 레이터가 단순히 시대를 앞서간 컬러사진의 대가 정도로만 알았다. 그러나 전시회를 통해서 그가 평생 꿈꿨던 삶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소박한 행복을 누리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의 모델이자 평생의 연인이었던 솜스를 담은 사진을 통해서
과학과 철학 사이의 대화가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 이는 곧 사회의 안녕과 직결되므로 간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왜냐하면, 사회갈등의 많은 부분은 결국 과학과 철학의 근본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이며, 과학만으로 혹은 철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 의지’ 같은 난제가 대표적인 예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인지 아닌지와 관련해 어느 쪽이 옳은지에 따라 우리 사회의 교육과 법, 종교의 근본 틀이 바뀔 수 있다.2019년 미국 채프먼 대학 뇌 연구소에서 열린 국제 컨퍼런스에서 17개 대학의 뇌과학자, 심리학자, 철
사람의 죽음은 무엇일까? 심장과 뇌의 정지로 인해 모든 생물학적 기능이 정지되어 흙으로 흩어지는 자연적인 과정일까? 아니면 영혼으로 불리는 진정한 내가 신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사는 또 하나의 시작일까? 영혼에 대한 믿음은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됐다. 역사적으로 플라톤, 데카르트 같은 철학자가 그런 영혼을 이론화하고자 했다.영혼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기에 공간으로부터 자유롭고, 한 개인의 모습과 삶의 내용을 고스란히 갖고 있으며, 물리세계에 인과적인 힘을 행사하는 존재로 이해되어왔다. 만일 영혼이 있다면, 그들이
저기 종잇조각이 놓여 있다. 구겨져서 던져진. 누가, 언제, 왜 던졌는지 알 수 없다.한 번 상상해보자. 그 종잇조각이 자기의식을 가지게 된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자기 몸이 물기에 닿으면 상처를 입는다는 걸, 누군가에게 밟히면 구겨질 수 있으며, 바람이 불면 정처 없이 떠돌아다녀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그가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는 물음은 왜 자기 자신이 하필 거기에 있어야 하냐는 물음일 것이다. 자신을 맨 처음 던진 사람을 찾으면 그 물음에 답할 수 있을까? 아니다. 왜냐하면,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