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호 철학박사

과학은 만능일까. 인류가 직면한 모든 지성의 문제는 과학 발전으로 해결될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과학 활동은 특정한 방법을 통해 이뤄진다. 주로 통계, 실험을 통한 ‘귀납추론’으로 일반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거나, 먼저 가설을 내놓고 옳고 그름을 탐구하는 ‘가설연역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과학 활동에서는 어떤 현상의 ‘과학적 원인’을 탐구한다. 그러나 과학 활동은 만능이 아니다. 통계, 실험, 가설연역법은 세계의 진짜 모습을 알아 가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이는 마치 젓가락이란 도구와 같다. 젓가락으로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다고 해도, 모든 음식을 젓가락으로 먹을 수는 없다. 스프는 젓가락으로 먹을 수 없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과학으로 모든 걸 먹을 수 있다고 믿는다.

프랑스의 작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는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만 볼 수 있어.”라는 대사가 나온다.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어머님의 사랑은 과학적 탐구로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누구나 통계나 실험, 가설연역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어머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어머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어머님의 혈액 속에 옥시토신 같은 호르몬이 얼마나 분비되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없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 배려하는 일, 돕는 일은 과학 활동을 통해 파악할 수 없다. 담벼락 밑에 핀 노랑 민들레가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 순간, 과학이란 젓가락을 내려놓아야 한다. 바흐의 평균율 1번을 듣고 있을 때 느껴지는 황홀함을 이해하기 위해서 내 두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종류와 분자 구조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사랑의 상처를 누가 더 잘 이해할까. MRI를 사용해 내 두뇌 안을 살펴보는 신경과학자일까. 아니면, 괴테 같은 문인일까. 인류애의 의미와 실현에 대해 누가 더 잘 이해할까. 예수나 붓다와 같은 인물의 사상을 따르는 종교인이지 않을까.

세상에는 과학 방법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는 과학 이외에도, 철학(윤리학, 논리학, 형이상학, 과학철학 등), 예술, 종교가 똑같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현대의 학자 중 그 누구도 ‘과학’이 정확히 무엇이며, 다른 분야와 어떻게 구분되는지 확언하지 못한다. 그만큼 ‘과학적’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복잡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나 과학 발전에만 몰두하고 있지 않은지, 과학이란 이름을 맹신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김남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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