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서예술(書藝術)은 동양문화의 예술적 사유에서 그 의미는 특별하다.시(詩)적 미감과 예술적 형상에서 볼 때 시(詩)와 서(書)는 내적으로는 예술가의 정신과 정감, 심상과 관련을 맺으며 나아가선 동양 전통의 철학적 사유와 예술적 사유를 함께 담아내고 있다.예술을 창작할 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예술가의 심미세계가 드러난다. 예술의 형상성은 예
관능적인 여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누드화나, 사진에서 만나는 누드는 예술의 영역에서 ‘미적(美的) 대상으로서의 육체’ 임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작품화되는 나체’를 미화하는 것은 분명한 예술적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그리스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여인의 육체는, 사진작가나 화가들의 작품세계에 끊임없이 등장한다.더구나 사진예술에 있어서 여인의 누드를 다룬 작가
유혹은 아름답다. 푸른 유월의 달빛이 푸르다 못해 숙연하다. 마음 빼앗기는 일이 자연이든 사람이든 간에 더러는 그리하며 산다. 유월의 밤은 서늘함 속에 찔레꽃 향기로 익어간다. 달빛이 교교히 창가에 비쳐들고 바람결에 커텐 자락이 흔들린다.화려한 장막을 걷어 올리고 아름다운 잔에 차를 따른다. 고독은 슬픔과 즐거움을 절제하고, 때로는 기쁨과 노함을 누그러뜨린
프라하의 봄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프라하의 봄이다. 숨이 막힌다.스메타나가 그의 조국인 체코를 왜 이처럼 사랑했는지를 알 것 같다. 그의 작품 ‘나의 조국 중 몰다우’를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우고 들어서 알고 있다.보일 듯 말 듯 봄의 꿈은 꿈틀거리고 있고, 프라하의 봄은 무거움과 가벼움의 극적인 변주를 연출한다.밀란
잠 못 드는 밤이 있다는 것은 가슴이 뜨겁다는 것이며, 아직도 뜨거운 청춘이라는 말이다. 아득히 멀고도 깊은 밤에야 비로소 잃어버린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고독 속에서 비로소 낯설고도 멀었던 자신과도 손잡는다. 사람은 슬플 때만 우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 사무칠 적에 우는 울음은 그 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온다.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큰 딸에게 읽어
시작도 끝도 없는 허정(虛靜)의 상태가 고도(高度)의 철학적 사유의 세계라면, 떨어지는 봄비를 피해 잠시 몸을 숨기고 있는 한 순간이야말로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세계이다.아름다운 여인은 빨리 시들어 버리고 화려한 꽃은 여러 날 피지 않는다. 나의 좁은 뜨락에는 수 십 송이의 목단(牧丹)이 피었다가 지고 있다. 하늘이 높고 땅이 두꺼운 줄 모르던 젊은 시절의
바람이 불어도 차갑지 않아서 안길만하다. 봄바람이다. 사월의 햇빛은 은빛으로 출렁이고 꽃보다 더 눈부신 연초록의 물결이 여심(女心)을 향해 점령해 온다.긴 어둠의 겨울을 뚫고 봄을 여는 태화강 물굽이는 낮은 산굽이를 돌아 천년세월을 안고 흐른다.봄이다. 어제 내린 봄비는 우리가 사는 이 땅 울산을 골고루 적셔주고 있다.누구에게나 차별없이 이 땅 위에 생명있
울산의 봄은 숨 막히게 아름답다. 온통 흐드러지게 핀 벚꽃으로 마음을 부풀게 한다.며칠 전에 봄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싱그러운 풀내음까지 골목을 휘감아 내려오고 있다.몇 천 년 전 시저가 클레오파트라 7세를 처음 대면하는 날도 이렇지 않았을까. 봄 향기 무르녹는 밤,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순간도 이처럼 가슴 부풀어 숨 막혔을 것이다. 시인 키이츠가 ‘미(美)
유령(劉伶), 그와 술을 마셨다고는 하나 나는 술 맛보다는 그와 마시는 그 느낌을 마셨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와 함께 대작(對酌)하여 장면이 농익으면 그와 함께 한 시간도 농익는다.유령의 ‘주덕송(酒德頌)’은 수 천 년 전의 문장이긴 하지만, 지금도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심상이 매력적이다. 나 자신은 겨우 술의 취미를 맛보는 정도의 ‘주도론’ 초단에
누드화(nude畵) 속의 여인들, 그들의 영혼이 보는 사람을 흔들어 놓는다. 관능적인 자태와 매력이 선명하다 르느와르는 여성의 육체는 무엇인가를 고뇌한 예술가이다. 창조적 모태로서의 상징적 의미 외에 여성의 몸짓을 통하여 사물의 본질을 전달하려 애썼다.그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누드는 에로티시즘만을 의도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아름다운 육체의 모습을
봄이 오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해마다 봄이 온다는 사실이 얼마나 벅찬 감동인 줄을 몰랐다. 내게도 봄이 온다는 사실이 얼마나 눈물겹도록 고맙고 또한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눈밭에서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 어린 쑥이 연한 잎을 내밀고 있다.햇보리가 날 때까지 쑥은 우리들의 식탁에 반가운 식품이었다. 보리고개를 함께 넘어온 구황
아직 입춘이 먼데 실내의 난초는 그 꽃향기가 맑다.다정(多情)한 여인의 일지춘심(一枝春心)은 그 난향(蘭香) 아래로 흘러, 넘치는 봄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어느 봄날 화담 선생이 문간에 기대 서서 봄꿈에 잠겼는데 홀연히 당대의 명기(名妓) 황진이가 말을 타고 지나간다.잠시 잠깐 그녀를 불러 세워 ‘내 마음은 이미 미인 따라 떠나고 텅텅 빈 몸인채 문간에 기
황진이는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서 삼년간은 자신의 비향(秘香)이 묻어나 남정네를 사로잡아야 했었고 자신이 쓴 시향(詩香)으로 천년의 세월을 녹여야 황진이 자신의 이름에 걸맞는 시격(詩格)이며 풍류라고 했을 것이다.정도전은 첫눈 내리는 겨울, 가죽옷에 준마를 타고 누런 개와 푸른 매를 데리고 평원에서 사냥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하였다. 그는 이미 하늘의 명(
온 천지가 하얀 달빛이다. 차가운 겨울 달빛이 하염없이 쏟아져 비좁은 뜰엔 달빛으로 넘쳐난다. 이럴 때는 하릴없이 역사속의 영웅호걸을 찾아 나선다. 달빛은 소리 없이 쏟아져 적막하여 고요하다. 시대를 풍미했던 정객들, 제왕의 책사들의 발자취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을 되짚어 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시대의 주역이 되길 원한다. 그러나 그 어떤 드라마도 혼자서는
첫눈이 왔다. 눈이 펄펄 내리니 동화 속 나라 같다. 솜사탕 같은 눈송이가 우리의 어깨 위에 가볍게 내려앉는 적막한 풍요를, 바다 속처럼 깊은 고요함을 간절히 누리고 싶다. 아무 일 없이 한 열흘 정도만 눈 속에 갇히고 싶다. 그런 홍복이 내게도 내리기를 꿈꾼다.일전에 대선주자의 한사람을 15년을 하루 같이 받들던 보좌관이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급변
사랑은 축복이다. 신이 내린 선물이며, 청춘의 용오름이고, 젊음의 거대한 해일이다.사랑은 빛의 바다위에 떠오르는 궁성이며, 운명이며 당초부터 숙명이며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사랑은 감성으로 숨을 쉰다.사랑은 주는 것이다. 줄게 없는 사랑인데도 주는 것이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주는 것이다. 주머니 속 먼지 묻은 사탕 한 알을 꺼내 쥐
옛 말에 하늘이 주는 복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화를 당하고, 때를 만났는데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재앙을 받는다고 했다. 용맹과 지략이 뛰어나 임금을 두렵게 하는 자는 그 목숨이 위태롭고, 공적(功績)이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세상에는 그저 2인자나, 3인자 자리가 제격인 사람이 1인자의 자리를 넘보면서 행세하는 사람이 있고, 당대
누드를 즐겨 그린 르노아르는 ‘가슴이나 허리를 애무하고 싶어지는 충동을 느끼는 그림’을 그리려 노력했다.인간의 본질적 존재감은 신체의 미적인 구조와 생명력의 아름다움에 있다고 할 수 있다.인간을 낳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인간의 신체가 갖는 아름다움은 인간이 탐구할 영원한 미학(美學)적 과제다.산과 강, 바다, 이 자연 속에서 자연 그대로 놓여나 살고 싶
헌강왕이 춤 추었다는 어무상심무(御舞祥審舞)는 어떤 춤이었을까. 삶의 절정에서 왕(王)이 추는 춤은 과연 어떤 춤이었을까.헌강왕 재위 당시는 민간에서도 짚이 아닌 기와로 지붕을 덮었고, 나무가 아닌 숯으로 밥을 지었다고 한다.동경(東京)으로부터 동해 어구에 이르기까지 집들이 총총히 늘어섰지만, 단 한 채도 초가집을 볼 수 없었고, 길거리에서는 음악 소리가
김춘추, 그는 준비한 왕이었다. 아랫사람을 거룩하게 보고,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다 죽은 이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마음 따뜻한 왕이었다. 왕이라고 다 그러하지 않았기에 그를 위대한 왕으로 기억한다. 왕이 되기까지 김춘추가 가장 크게 준비한 것은 사람이었고, 왕이 되어서 그가 가장 잘한 것도 사람을 쓰는 일이었다. 하늘은 높고 물은 맑다. 경주의 가을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