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최민식(1928~2013)

▲ 삽화= 화가 박종민

관능적인 여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누드화나, 사진에서 만나는 누드는 예술의 영역에서 ‘미적(美的) 대상으로서의 육체’ 임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작품화되는 나체’를 미화하는 것은 분명한 예술적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그리스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여인의 육체는, 사진작가나 화가들의 작품세계에 끊임없이 등장한다.

더구나 사진예술에 있어서 여인의 누드를 다룬 작가들은 흥행의 물결을 타기만 하면, 가난을 멀리 할 수도 있었다.

최민식 사진작가는 그 흔한 여인의 누드 사진 한 장을 세상에 내어 놓지를 않았다. 55년의 사진예술가로 살면서 지난 2월12일 운명하기까지 그는 가난했다.

오로지 정신적인 고뇌로부터 탈출하려는 인간의 몸짓,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인간의 몸부림을 형상화하여 렌즈에 담아냈다.

자갈치 시장에서 생선을 팔다 뒷짐진 채로 젖을 물리는 생선장수, 외팔로 신문배달을 하는 사진, 용산역 앞에서 맨발의 어린 여자아이가 땅에 엎드려 국수를 빨아올려 먹고 있는 어린 소녀의 사진 한 장은 인간의 존엄성 앞에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의 사진들은 우리가 감추고 싶었던 한 시대의 아픔과 슬픔을 그대로 전해준다.

1967년 영국의 사진 영감에 최민식 작가의 사진 여섯 점을 싣고 그를 ‘카메라의 렘브란트’라 소개했다.

어두운 곳에 비치는 강렬한 빛으로 인간 내면을 표현했던 램브란트와 이미지가 비슷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독일 사진연감에는 그의 사진이 여덟 점이나 실렸다. 그리고 가장 대표되는 첫 페이지 사진을 최민식 작품으로 장식했다.

그는 이미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돈이 되는 사진을 찍으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항상 ‘사진을 왜 하느냐’고 자신에 대한 자문을 하면서 돈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1928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나서 평안남도 진남포에 있는 미쓰비시 자동차 기능공으로 일하다가 서울로 갔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미술학원을 다니다가,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쿄 중앙미술학원을 다녔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에드워드 스타이켄의 사진집 <인간가족>을 접한 후 사진작가가 되기로 하고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한 진정한 사진예술가이다.

그의 사진 속에는 미술을 공부한 전문예술인답게 음악, 미술, 철학이 녹아 있다. ‘전 인류가 모두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캠페인이 또한 그의 사진이념이다.

대상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느낌이 일치하면 그 때 진실이 되고 예술이 되는 것이다. 사진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이 진실해야 하듯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남긴다는 뜻이다.

그는 휴머니즘을 토대로 한 리얼리즘 사진을 찍었다.

인간이, 그것도 서럽도록 착한 인간이 거기에 있기에. ‘인간’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평생 사진을 촬영해 온 그는 1964년 사진집 <인간> 1권을 시작하여 총 14권의 <인간>을 발표하였다.
 

▲ 한분옥 수필가·울산예총 회장

뛰어난 미적 감각과 변화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살펴보는 시간에 그를 만난다. 나는 그의 사진집을 자주 열어본다.

흑백사진으로 빛과 어둠, 흑과 백의 대조로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 본다.

가끔은 그의 사진이 전하는 인간의 진실한 표정 앞에 울먹인다. 사진 한 장 앞에서 느끼는 감동은 그 어떤 음악보다, 미술작품에서 보다 현실을 포착한 인간의 실제 장면에서 감동하고 선(善)하게 다시 태어나고 싶은 몸부림을 가지게 한다.

2000년 10월 그는 옥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13년 2월 12일에 운명하셨다.

사진이 무엇인가에 대해 그의 작품은 해답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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