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고온다습했던 8월도 그 맹위를 뒤로하고 가을이 시작되는 9월이 다가오고 있다. 길었던 폭염과 예상치 못한 폭우 등으로 힘들었던 여름이었지만, 여름 휴가기간 동안 지난 상반기를 정리하고 하반기를 위한 새 힘을 충전하는 시간을 모두가 가지셨기를 바라본다. 이제 가을을 맞이하며 우리 울산경제도 지난 상반기에 어떠했는지 돌아보며 하반기는 어떠할지 생각해보면 좋겠다.최근 주요 경제활동지표를 볼 때, 상반기 중 울산경제는 전반적으로 생산과 내수가 전국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나 수출이 견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생산을 살펴보면, 제
울산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제조업 도시다. 전국 국토면적의 1.1%, 인구수의 2.2%(23년말)에 불과한 한 개 도시가 전국 제조업 생산액의 13.4%(2022년 광공업생산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산업구성(22년 총부가가치 기준)을 보면 농림어업 0.2%, 서비스업 30.7%인데 반해 제조업은 65.0%로 압도적이다. 전국과는 제조업(28.0%)과 서비스(6 4.2%) 구성이 정반대다.그래서인지 울산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주저없이 소득이 높고 일자리가 풍부한 도시 아니냐는 말을 건네곤 한다. 소득이 높은 도시라
미국 경제학자 J.K. 갤브레이스(Galbraith)가 1977년 를 출간한 전후로 전 세계는 1·2차 석유파동의 여파로 극심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즉,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던 물가급등과 경기불황이 동시에 오는 현상을 겪고 있었다. 그의 주장은 그 시대를 관통하는 지도적인 사상이나 원리, 진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당시 혼란스러웠던 정치·경제상황, 국제정세 등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지는 용어가 되었다. 현대사회에서는 불확실성이
드넓은 호주대륙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매우 건조한 사막지역을 아웃백(Outback)이라고 칭한다. 50℃가 넘은 기온에다가 강수량도 적어 사람은 물론 동식물들도 살아가기 매우 어려운 척박한 오지(奧地)이다. 그런데 이런 황량한 땅에서도 거대한 숲이 있고 유칼립투스 등 다양한 희귀식물이 잘 자라고 있다. 이러한 강한 생명력의 근저에는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연약한 수많은 ‘뿌리털(root hair)’이 있다. 원뿌리, 곁뿌리에서 뻗어나온 수천만 개의 근모(根毛), 즉 뿌리털이 흙 속 깊이 흩어져 있는 미세한 물과 자양
인류는 늘 인구문제에 봉착해 살아왔다. 식량증산이 쉽지 않았던 과거에는 너무 많은 인구가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생산성 향상으로 빈곤이 완화된 가운데 글로벌 자유무역이 확대되면서 인구가 많을수록 내수시장 규모가 커지고 노동투입량이 높아짐에 따라 더 많은 인구가 경제대국이 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경제대국이 되려면 일본처럼 1억명 이상은 되어야 한다거나 중국이 거대인구로 글로벌 기업의 투자 러브콜까지 받으면서 G2 반열에 올라선 것이나 일부 투자은행은 이제 최대 인구가 된 인도가 2075년이면 중국에 이어 2대 경제대국이 될 것
지난 6월초 35년만에 재개되어 70만여명이 다녀간 ‘울산공업축제’의 뜨거움과 다채로움을 보면서 울산시민들의 깊은 공동체 의식과 숨겨진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지역을 흔히 ‘산업수도’라고 자칭타칭으로 일컫고 있는데 근대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던 한국이 글로벌 공업입국이 되기까지에는 바로 ‘태화강의 기적’이 많은 기여를 했다는 데에는 우리 산업역사를 잠시라도 들여다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과정에서 한때 태화강은 ‘죽음의 강’으로 악명 높았고 울산시민들은 생산현장에서는 치열하게 일하고 생활공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로 우리의 일상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여건도 급격히 변화했다. 전염병의 확산으로 생산 및 소비 활동에서 비대면 방식이 확대되면서 정보통신기술, 로봇·AI·IoT 등 4차산업 기술의 활용도가 매우 높아졌다. 그리고 전염병 외에도 홍수, 폭염, 혹한 등 기후변화의 위험이 인류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탄소중립을 기조로 한 친환경 전환 트렌드가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글로벌 공급망 붕괴 이후 국가 간 전략물자 확보 및 경제안보 등을 위한 보호무역주의가 더 강화되며 국제교역이 크게 후퇴했다.이러한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