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을 하다가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학기 첫날 아침에 핸드폰으로 병리 검사 결과가 악성이니 재방문하라는 문자를 받은 것입니다. 양성 결절일 거라 생각하며 여름에 연수를 나가기 전에 확인하려는 마음으로 받은 추가 조직검사에서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급히 수술 일정을 알아보고 다른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병리학적으로 암이지만 예후가 좋은 편이고, 수술이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건강 상태나 생존율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입니다.하지만 ‘암’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는 여전히 무겁습니다. 특히 누나가 만 40세가 되기 전에 5년 생
몇 년 전 영국 BBC방송에서 오늘의 단어로 한국의 ‘꼰대’를 선정했습니다. 자신은 항상 옳으며 타인은 항상 틀렸다고 생각하는 연장자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은 자신들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며 ‘젊꼰(젊은 꼰대)’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냅니다. 매사에 이런 식은 아니더라도 연인 관계 같은 특정 상황에서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들도 우리는 가끔 보게 됩니다. 이런 일은 왜 벌어질까요.메타인지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신의 인지 과정을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바라보는 능력인데, 이것이 있다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
드라마 주인공은 학교폭력의 피해자입니다. 폭력을 견디지 못해 자퇴를 해야만 했던 고등학교 2학년 소녀는 서른여섯이 되어 십수년 전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들 앞에 나타납니다. 그녀는 더 이상 연약한 소녀가 아닙니다. 치밀한 준비로 가해자들의 약점을 간파하고 열심히 모은 돈과 안정적 직업을 무기로 천천히 복수를 진행합니다. 시청자들은 가해자들의 끔찍한 모습에 화와 혐오를 느끼다가 그녀의 복수에 통쾌해집니다.학교는 아이들에게 세상과 마찬가지입니다. 거친 세상에 나가기 전에 읽고 쓰고 셈하는 것을 배우면서 동시에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웁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말이 유행입니다. 프로 게임선수가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 기자의 손을 거쳐 사람들의 입에 오르게 된 문장입니다.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16강 진출을 위해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강팀 포르투갈을 꼭 이겨야 했습니다. 동점으로 끝날 것 같던 경기를 후반 추가시간에 극적인 골로 이긴 후 선수들은 관중석에서 건네받은 태극기를 흔듭니다. 태극기에 있던 이 문장이 극적인 결과와 맞물려 국민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가 있지만 버티고 이겨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이태원에서 158명의 희생자가 발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건 당일 저도 연구실 학생들이 가지 않았을까 걱정했습니다. 졸업생들은 괜찮은지, 학교 전체적으로는 어떤지 신경이 쓰였습니다. 다행히 우리 학교에는 피해자가 없었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기에 안타깝고 그들의 가족, 친구, 동료들이 안쓰럽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원인을 철저히 파악하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는 자주 그래왔듯이 비난의 대상을 찾기 위해 애를 씁니다. 스위스치즈처럼 조금씩 구멍이 난 부분들이 계속 겹쳐져서 큰 사고가
월요일 아침 이상한 소리에 깼습니다. “싫어. 싫어. 아침이 이게 뭐야. 이걸 먹으란 말이야?” 아이가 쉰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생떼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야채가 담긴 접시를 거부하고 잠옷 채로 식탁에 노트북을 켜서 게임을 하려고 합니다. 교과서를 읽는 것 같은 어색한 말투에 어젯밤 일이 생각났습니다. 아침을 먹여 학교에 보내려고 마음이 급해진 할머니에게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소아과에서 코로나는 아니고 감기는 심하지 않다는데, 어제 엄마에게 싫으면 싫다는 얘기를 해도 된다는 소리를 듣더니 그대로 따라하는 것 같아요.”조금 뒤 나갈
지난달 저의 정신건강 대중서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가 나온 후 많은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깊이가 없다는 평가도 있고 인생을 쉬운 언어로 돌아보며 마음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서평도 있었습니다. 사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도 다양한 관점에서 삶에 적용해볼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쓴 글이라 누군가에게는 다 아는 이야기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가끔씩 마음이 힘들 때 다시 펼쳐 보고 확인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제 오랜 친구의 말이 떠
저의 첫 책 가 지난주 세상에 나왔습니다. 유튜브 강연이 동시에 공개되면서 금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기존의 책들이 우울, 불안 등의 하나의 주제를 깊게 파고들었다면 저는 인간이 느끼는 다양하고 복잡하게 얽힌 어려움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했습니다. 제 연구 주제가 정신건강의 증진이기 때문입니다. 심각한 환자보다는 병원에 갈까 고민하는 단계의 학생, 교직원을 주로 만나게 됩니다. 화재도 소화기로 조기 진압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듯이 정신질환의 조기 개입과 예방이 제가 다루는 분야입니다.작년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은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인구의 1~2%가 겪는다고 알려져 있는 이 장애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함,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흥미, 활동이 특징입니다. 주인공은 언어적,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문제로 친구를 사귀기 어려워합니다. 그녀는 반복적인 행동으로 물건을 규칙에 맞춰 정리하고 말을 따라하는 반향어를 합니다. 고래처럼 제한된 영역에 큰 관심을 보이고 옷 라벨의 촉감에 예민해집니다.자폐스페트럼은 2013년 개정 전 자폐성장애, 아스퍼거, 아동기 붕괴성 장애로 분류되었으나 고기능 자
우리는 당연한 권리를 빼앗겼다고 느끼면 화가 납니다. 오이를 잘 받아먹던 실험실의 원숭이는 옆 우리의 원숭이에게 포도를 주는 것을 보자 화가 나서 소리를 지릅니다. 원숭이에게 다가가 다시 오이를 주면 아까는 맛있게 먹었던 오이를 집어 던지며 철창을 흔듭니다. 나도 똑같이 포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나는 것이죠. 옆 원숭이가 힘든 실험을 마치고 보상을 받은 것인지, 건강 상태 때문에 다른 먹이를 먹고 있는 것인지 원숭이 수준에서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인간 사회에서도 비슷한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코로나19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전의 일상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습니다. 비대면수업과 재택근무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 변화가 달갑지 않기도 합니다. 초중고 학생들은 학업과 친구 관계에 대한 부담을 호소합니다. 직장인들은 출퇴근으로 사라지는 시간적 여유와 불편한 회식 같은 대인관계 부담을 이야기합니다. 비대면수업이나 재택근무를 새로 익혀야할 때도 부담이 되었는데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편하지는 않습니다.변화는 스트레스와 관련됩니다. 심각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불편한 것은 쉽게 예상이 됩니다.
우리는 학교와 가정에서 교육받으며 독립된 성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합니다. 처음에는 가르침을 따라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부분이 늘어납니다. 부모님이 사주시는 옷과 학용품을 쓰다가 핸드폰, 노트북 같은 고가의 제품도 용돈 상황, 가격 동향, 내게 필요한 사양을 따져가며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해 애를 씁니다. 충동적으로 돈을 써서 곤란해지는 경험을 하는 사람도 있고, 너무 재기만 하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 소비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패턴을 만들어 갑니다.비교적 간단한 소비에서도
우리사회는 숫자로 비교하는 것을 강조하다보니 궁극적 목표와 이를 위한 수단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악착같이 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는데 돈 버는 것만 신경 쓰다가 제대로 써보지도 못했다고 후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건강도 망치고 가족도 화목하지 못한데 무엇을 위해 돈을 벌었는지 모르겠다고 속상해 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겨우 갖게 되었는데 정작 자신과 잘 맞지 않아 후회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학생 때는 숫자로 비교되는 성적이 이와 비슷한 성질을 갖는 것 같습니다. 비교가 되어
우리 인생에서 인간관계만큼 영향을 크게 주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에는 어떤 선생님에게 배우는지, 어떤 친구와 어울리는지가 삶에 영향을 끼칩니다. 부모나 형제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없는 것에 비하면 조금이나마 내가 관계를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성인이 되면 선택권이 더 커지고 영향도 많이 받습니다. 학교 밖에서도 이어지는 친구, 함께 일하는 사람들, 심지어 가족을 꾸릴 배우자도 내가 선택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타인을 잘 파악할 수 있다면 여러모로 편리해질 것입니다.누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진료실에서 공부나 일에 집중이 안 된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울이 심해 에너지가 부족할 수도 있고, 걱정과 불안으로 방해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면 집안일이나 친구를 만나는 것도 잘 안 됩니다. 반대로 일상적인 일들은 문제없이 해내는데 졸업 논문과 같은 누구나 어려워하는 일에 평소보다도 더 집중을 못해 좌절하게 된다는 학생들도 만납니다. 혹시 말로만 듣던 성인 ADHD가 아닌가 걱정이 된다며 찾아옵니다.여행 계획도 잘 세우고, 물건도 잘 챙기는 사람이 논문을 잘 쓰지 못한다고 해서 집중력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 문화는 부모나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강조되다 보니 개성이 발현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데도 살아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젊은이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해야 할 과제가 주어지듯 스스로도 받아들일만한 살아갈 이유가 주어지길 기다리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삶의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야 하며, 정답도 존재하지 않습니다.아기는 삶과 죽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말을 배우면서 조금씩 이해를 넓혀가죠. 유치원생 정도면 죽음을 나이가 들어 사라
연애경험이 많지 않은 남자가 오랜 노력 끝에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짧은 연애 후 결혼했는데 전업주부인 아내가 자신에게 애정표현을 하지 않고 집안일을 과도하게 떠넘기며 경제적으로도 불평등한 상태에 놓이는 상황을 묘사한 이야기, 일명 ‘퐁퐁단과 설거지론’이 인터넷을 통해 유행했습니다. 과학적으로 적립된 이론이 아니기 때문에 여성의 결혼 전 연애경험 등 다른 요소에 대해 다양한 논박이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혼인관계에서 남편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입니다.나이든 재력가와 젊고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결혼하는 이야기는 흔
우리는 목표를 성취했을 때 기쁨을 느끼고 또 다른 목표를 떠올립니다. 선물처럼 찾아온 행운도 기분 좋지만 스스로 한 단계씩 완성했을 때의 기쁨도 상당합니다. 연말이나 새해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공부, 운동, 연애 등 여러 가지 목표를 떠올립니다. 이 목표에는 각자의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에 돈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돈과 관련된 목표를 우선으로 삼기도 합니다. 돈이 충분해야 가족이 아파도 마음이 든든하다며 삶의 가치 중에 우선순위를 높여 둔 것이죠.가치에 다가가는 목표들을 성취하면 기쁨이나 안정을 느끼지만
우리가 똑똑함을 이야기할 때는 주로 IQ를 떠올립니다. 집중력과 기억력을 이용해서 특정 패턴을 익히면 이것을 학습이라고 합니다. ‘파블로프의 개’는 이것을 통해 종소리가 울리면 음식을 얻는다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언어를 통해 정보를 더 쉽게 전달하고, 이를 종합하여 계획하고 결정합니다. 언어, 숫자, 도형으로 구성된 시험지를 통해 이런 인지기능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이를 IQ라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IQ가 높은 사람이 돈도 잘 벌고, 사회에 잘 적응해서 범죄율도 낮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그런데 이런 ‘시험지 풀이
정신건강에는 감정, 인지기능, 대인관계 뿐 아니라 잘 자고 깨는 것, 즉 뇌의 에너지 관리가 중요합니다. 불면증은 워낙 흔해서 정신과에 지독한 편견을 가진 사람도 불면에 대해서는 쉽게 받아들입니다. 잠이 망가지면 집중력 장애, 우울, 불안도 따라옵니다. 조현병, 조울증과 같은 중증 질환에서는 불면이 재발의 시작점이 되는 경우가 많아 주치의는 환자의 잠을 주의 깊게 확인합니다. 최근에는 자면서 뇌에서 치매 물질을 씻어낸다는 사실까지 밝혀졌습니다. 잠은 단순히 신체의 스위치가 꺼진 시간이 아니라 뇌와 몸의 건강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