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책을 통해서 길을 찾는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스웨덴 속담을 책과 관련지어 자주 쓰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삶의 지향점은 대개 비슷하지만 목표에 도달하는 길은 여러 갈래다. 그 중에는 가보지 않은 길이 대부분이다. 지리적인 길이든 지식적인 길이든 한 사람이 가고 싶은 길을 모두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러 갈래 길을 만날 수는 있다. 그 길에서 정보나 지식들을 얻는 방법이 책읽기다.(홍성광/연암서가)는 이러한 생각을 잘 대변해주는 책이다. 책을 읽음으로써 길을 찾고자 애쓸 필요가 없
복권당첨은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다. 종이에 적힌 번호를 체크하거나, 얇게 덧칠한 음영부분을 긁으면서 기대감을 갖는다.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벼락 맞기만큼이나 어렵다는 말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복권가게를 들락거리는 이유이리라. 그러다 어마어마한 당첨금으로 한순간에 부자가 된 사람들은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산다. 그런 가운데 당첨금을 제대로 관리하면서 사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아이러니다. 행복을 금전적인 잣대로 재거나 가치관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뜻밖의 행운을 만나더라도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등대, 라고 중얼거리면 두 가지 낱말이 떠오른다. 외로움과 희망이다. 다소 상반된 느낌의 두 낱말이 생뚱맞은 듯하면서도 성격 다른 두 사람의 우정처럼 어울린다. 떼어놓고 생각하기엔 왠지 한쪽이 기우는 느낌이다. 캄캄한 밤 등대는 땅의 끝자락에서 홀로 불을 밝힌다. 외로움을 운명처럼 안고 선 채 캄캄한 바다를 항해하는 뱃길에 희망을 전하는 등대. 그 외로움과 희망을 담담하게 그려낸 책이 있다. ‘이지원의 등대기행’이다. (이지원, 휴면컬처아리랑). 제목에서 외로움과 희망이 제대로 읽힌다.어느 행
주전바다 스토리텔링 과정에서 해녀를 취재한 적이 있다. 투박한 말투와 굵고 깊게 패인 주름, 도무지 곁을 주지 않을 것 같은 배타적인 모습에 주눅이 들기도 했다. 바다 같은 격랑의 삶을 풀어낼 때도 툴툴거리는 느낌이어서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강인한 삶의 외면일 뿐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런 모습은 제주에서 건너와 울산 바다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취재만 하려는 내 목적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민망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잠수병과 싸우며 낯선 바다에 정착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해하기보다
현대는 여성의 사회활동이 자유롭다. 특별한 능력을 인정받는 여성도 꽤 흔하다. 여성이 기업인이나 대기업의 임원이 되기도 한다. 장관은 물론 대통령이 되는 시대이니 당연하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성행하던 ‘여성백일장’ 같은 여성만을 위한 사회 진출기회조차 흐지부지되었을 정도다. 그만큼 여성이라 차별받거나 활동을 제한 받는 일이 없어졌다는 반증이다. 여성이 남성과 균등한 기회를 부여받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여성이라서 못할 일은 없다. 불과 100년 전 대한민국의 여성이 집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
세상은 똑똑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학력 인플레로 모두가 지식인입네 자처한다. 그럼에도 한 사람의 어리석은 주장에 휘말려 주위가 혼란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식을 지혜로 변환하지 못한 사람들이 빚는 촌극에 씁쓸할 때도 많다. 어떻게 보나 A가 분명한데도 입담이 좋거나 힘 있는 이가 B라고 우기면 그렇게 믿는 일도 허다하다. 그럴 때 혼자서 ‘아니오’를 외치는 건 무모한 용기로 비난받기 일쑤다. (류시화/연금술사) 속의 ‘세상에서 가장 쉬운 위기 대처법’처럼.이 책의 무대는 폴란드의 헤움이라는 마을이다. 천사의 실수로
나이 들수록 생각하게 되는 것이 사이다. 한계를 많이 생각했던 젊은 날에 비해 삶에 대한 관조의 깊이가 달라졌음이다. 한계는 도전과 어울리는 낱말인 반면 사이는 관계와 어울린다. 두 대상의 사이에 끼게 되는 조사 ‘와’나 ‘과’에 무게를 두기도 한다. 받침이 없는 낱말 다음에 오는 ‘와’가 왠지 부드러운 느낌이다. 그다지 연관성이 없음에도 조사의 쓰임에 따라 사이의 돈독함이나 간격의 적절성을 가늠하기도 한다. 며칠 전에 읽은 한 권의 수필집이 갖게 한 생각이다.(최민자/연암서가)는 저자가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묶은
작년 1월, 코로나19로 시끄러울 때도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다. 하나둘 사망자가 생기는 공포도 조만간 끝나리라 여겼다. 정부의 발 빠르고 공격적인 대처도 미더웠다. 이제는 아니다. 생명체라고 정의할 수도 없는 바이러스 하나 잡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에 지쳐가고 있다. 백신 개발로 조만간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도 여전히 불안하다. 그 사이 변이를 거듭하는
요즘은 독신이 흔하다. 그들을 어색하게 보거나 왜 혼자 사는지를 묻는 이도 거의 없다. 독신도 결혼처럼 선택이라는 인식이 퍼진 까닭이다.이 책에는 40대 독신 작가의 비망록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 아주 작은 글씨가 뭔가 은밀한 변화가 일어나는 독신녀의 40대를 생각하게 된다. 40대 독신녀의 삶은 어떨까, 기혼자여서 그 마음을 온전히 알 수는 없으나 짐작
언양을 들렀다가 고인돌을 본 적이 있다. 사진으로 보았던 것보다 훨씬 큰 덮개돌의 위엄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덮개돌 아래도 궁금했다. 들추기만 하면 왠지 억눌렸던 많은 이야기들이 빳빳이 고개를 들 것 같았다.(함영연, 내일을여는책)은 그 기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한 이야기였다. 동화지만 어른이 읽어도 무게감이 예사롭지 않
청소년 폭력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행위가 날로 흉포해지고 연령이 낮아지는 추세도 문제다. 많은 경우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잘잘못을 인식하지 못하는 점은 더 큰 문제다. 그저 심심풀이로, 재미 삼아, 놀이 삼아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연예인이 되어 천사의 모습을 연기할 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배우와 등장인물의 인격까지 동
삶이 나날이 복잡해진다. 머릿속이 어지러워질 때도 있다. 수십, 수백 갈래로 뻗쳐 있던 잡다한 안테나들. 이미 작동을 멈춘 것도 있다. 그런 안테나가 갑자기 작동하지만 무슨 일인지 황망해지는 날. 그런 날이면 단순함이 절실해진다.단순해지고 싶어서 펼치는 것이 시집(詩集)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시인은 한 점 살을 깎듯 어렵게 썼겠다 싶은 시들로 충분한
천주교 박해는 서양문물의 낯섦에 대한 인식부족이 빚은 비극이다. 그 역사도 길다. 새로운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다. 무조건 배척만 해서도 발전이 없다. 그걸 간과한 무지에서 비롯된 비극 때문에 조선 후기는 신앙인들의 피바람이 그칠 새 없었던 시대였다. 새삼 신해, 신유, 기해, 병인박해로 이어진 순교자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트라우마라는 말이 일상어처럼 쓰이는 세상이다. 어떤 일로 받은 충격은 심리적인 위축감을 갖게 하거나, 용기를 내야 할 때 망설이게 한다. 심하면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트라우마는 자신이 기억하는 상처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가 트라우마가 된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그것도 극단적 사건의 잔혹함 때문에 생기는 것만이
대승적 삶은 쉽지 않다. 얽히고설킨 삶의 희로애락에서 초연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연인을 표방하는 삶을 조명하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다. 등장인물들은 거의가 남성이다. 사연도 가지가지다. 지병을 고치기 위해서, 사업에 실패해서, 삶의 무게가 버거워서 연결고리를 끊고 사는 사람들이다. 가끔 아무것도 거치적거릴 것 없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익숙한 것은 편안하다. 자주 읽는 작가의 작품이 그렇고 자주 입는 옷도 마찬가지다. 늘 하던 일은 쉬엄쉬엄해도 시간이 절약된다. 시행착오도 거의 없다. 새로운 것은 반대의 개념이다. 설레지만 낯설고 어색하다. 그만큼 긴장되고 조심스럽다. 때로는 시행착오로 인해 일이 틀어지기도 한다.사랑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사랑은 편안하고 익숙한 만큼 처음의 감정이 희석되
사람살이는 결코 만만하지 않다. 밥벌이가 그 무게감의 으뜸이지만 그보다 어려운 것이 관계형성이다. 물론 차원이 다른 문제이긴 하다. 밥벌이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해결이 가능하나 원만한 인간관계에는 상대와의 이해가 얽혀 있다. (정정화, 산지니)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이 책에 수록된 소설은 여덟 편의 단편이다. 하나
최근 인간의 성격이나 질병, 성향 등은 유전자의 작용으로 이미 결정되어진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더불어 유전자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중시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 걸맞다는 생각에 완독한 (리처드 도킨스, 을유문화사).종족 보존의 본능을 어쩌면 이렇게나 어렵게 썼을까. 읽으면서 내내 했던 생각이다. 분자, 세포의 구조도 그렇거니와 저자가
3월이다. 한일관계에 있어서 8월만큼이나 의미가 큰 달이다. 36년의 일제강점기를 잊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가까운 이웃나라로 여겼던 일본이었다. 무역과 관광도 활발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작년 일본의 갑작스런 수출규제와 지소미아 파기는 반일감정을 불붙게 했다. 거기에다 이달 초에 내려진 일본정부의 한국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금지 조치는 반일감정의 정점을
미(美) 원주민들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는 탈무드와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다. 탈무드는 유대교의 율법, 윤리, 철학, 관습, 역사 등에 대한 랍비의 생각을 기록한 문헌인 반면, 우리가 접하는 미 원주민들의 이야기는 일반인의 경험서가 많다. 삶에서 직접 얻은 지혜를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탈무드와는 다르다.(조셉M.마셜, 조화로운 삶)는 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