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바다 스토리텔링 과정에서 해녀를 취재한 적이 있다. 투박한 말투와 굵고 깊게 패인 주름, 도무지 곁을 주지 않을 것 같은 배타적인 모습에 주눅이 들기도 했다. 바다 같은 격랑의 삶을 풀어낼 때도 툴툴거리는 느낌이어서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강인한 삶의 외면일 뿐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런 모습은 제주에서 건너와 울산 바다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취재만 하려는 내 목적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민망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잠수병과 싸우며 낯선 바다에 정착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해하기보다 함부로 안쓰러워했던 일도 미안하다.
<해녀 새벽이>(최봄, 단비어린이)는 이런 내 기억을 부끄럽게 하는 동화책이다. 직접 인터뷰를 했던 나보다 더 해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데 놀랐다. 일제강점기로 고통 받는 건 누구나 같았지만 해녀들의 삶은 더 힘들었다. 거친 바다를 달래면서 일본의 노략질을 감당하는 일은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열세 살에 소녀 가장이 되어야 했던 새벽이에게야 말할 것도 없다.
노름꾼 아버지는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알 수 없다. 빚을 갚기 위한 엄마의 물질을 돕고 싶어도 새벽이는 그럴 수도 없다. 이미 두 딸을 바다에서 잃은 엄마가 새벽이만은 물질을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물을 무서워하게 된 열세 살 새벽이는 한시적인 가장이 된다. 엄마마저 빚을 갚기 위해 출장 물질을 떠나게 된 터라 할머니와 동생들을 건사하는 일이 새벽이의 몫이 된 것이다. 결국 엄마가 극구 말리던 물질을 하게 되면서 아기해녀가 되어 엄마를 대신하게 되는 과정이 상세하다.
새벽이의 도전은 어린 독자들에게 애국을 강요하거나 용기를 북돋우려는 억지가 없다. 다만 각자가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 그것만 한 애국도 없다는 걸 담담한 감동으로 전할 뿐이다.
“내 나라가 없다는 것은 갓난아기에게 엄마가 없는 것과 같다.” 일제의 수탈에 항거할 수밖에 없는 해녀들의 명분 있는 궐기에 정신이 번쩍 든다. 바닷가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풍습까지 세세히 그려낸 작가의 필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 덕분에 가독성이 좋아 단숨에 읽었지만 여운이 길게 남는 이유다. 장세련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