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무성해지는 여름철이 되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김종삼 시인의 묵화(墨畵)라는 글이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함께 지났다고/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서로 적막하다고” 어린 시절 여름날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짧은 시를 읽고 나면 한참 동안 시어들을 곱씹게 된다. 해거름녘 집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함께 고생한 소에게 물을 먹이는 일이다. 시인에게도 이러한 풍경은 먹으로 그린 그림처럼 깊은 울림을 주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제목을 묵화라고 지었을 것이다. 시 속의 할머니에게 소는 단순한
노령 인구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생긴 조어가 있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다. ‘제2의 인생’이라는 말도 이와 비슷한 뜻을 담고 있다. 노인이 되어서도 늙은 티 내지 말고 젊게 살아야 한다는 긍정적인 표현이다. 시대적 조류를 담고 있는 지혜로운 생각이고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다른 의미의 해석을 불러오기도 한다. 현실보다는 앞으로 지향하고 싶은 모습이 더 많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노년의 생활 속에서 대면해야 하는 실질적인 어려움을 앞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수산 기슭에는 국수를 파는 집들이 많다. 등산객들이 드나드는 입구에 자리한 자그마한 식당에는 국수와 더불어 막걸리를 판다. 별다른 안주 없이도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편리한 장소다. 국수나 칼국수를 주문하면 막걸리 안주를 별도로 시키지 않아도 주인이 눈치를 주지 않는다. 이러한 식당의 가장 큰 장점은 산의 풍경이 남아있는 야외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산객들도 국수와 더불어 막걸리를 마시며 등산길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도심의 야외 카페에서 식사와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산기슭에서 먹는 국수와 막걸리도 나름
한해 한해 지나다 보면 만나는 사람의 수도 줄어들고 느끼는 감정도 엷어진다. 부러운 사람도 줄어들고 부러운 일도 줄어들게 된다. 사람살이의 모습이 결국 거기서 거기라는 평범한 깨달음이 주는 작은 위안이다. 남다른 재주를 타고난 사람도 나이가 들면 지극히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또 존경받는 비범한 사람들이 너무 쉽게 세상 떠나는 것도 흔히 경험하는 일이다. 삶을 다른 사람에 비추어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짧은 생애의 모습들이다. 그래서 때로는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나이 들어서도 부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누구에게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그래서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은 어느 자리에서나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일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능력과 건강이 있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먼 대륙으로의 여행이 아니어도 좋다. 이웃 나라에서의 짧은 여행도 일상에서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다.모든 사람은 지금 살고 있는 익숙한 환경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항상 새로운 풍경과 낯선 문화 속에서 느끼는 설렘과 긴장의 시간을 갈망한다. 여행을 소재로 하는 수많은 방송프로그램을 보면 여행에
요즈음 주위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주 거론되는 단어가 요양병원이다. 사전적으로는 매우 긍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명칭이다. 휴양하면서 치료하는 병원이 요양병원이다. 그러나 그 단어가 구체적인 사람과 연결되면 사전적인 의미를 넘어선다. 특히 나이 든 사람이 요양병원에 갔다는 소식은 병 치료와 같은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가족이나 친지가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있다는 소식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당사자와 가족이 겪어야 하는 과정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일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바다는 여름보다 겨울에 더 풍성하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는 맨손으로도 건져낼 수 있는 해조류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겨울 바다 풍경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미역과 같은 해조류가 나오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바위틈에 붙은 맛있는 따개비를 캐는 것도 겨울 바다에서였다. 그래서 바닷가 근처 마을의 겨울 밥상은 작은 고동이나 해초들로 이루어지는 것이 예사였다. 어린 시절 먹던 겨울 음식은 대부분 이런 맛과 냄새에 대한 기억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도 재래시장에 가면 해산물 파는 가게 근처를 기웃거린다.소한 대한의 추위가 잦아드는 이맘
마음을 먹어야 하는 시기다. 새해가 시작되면 누구나 마음을 다시 먹는다. 큰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도 그렇고 지금까지 해오던 습관을 버리려는 사람도 모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새롭게 마음을 먹는다. 심지어 번잡한 생각을 멈추고 세속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사람도 자신을 다잡기 위해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것도 큰마음을 먹어야 한다.마음을 먹는다는 표현은 자신의 의지나 결정이 다시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강렬한 열망을 나타낸다. 무엇을 가장 강하게 느끼고 그 체험을 오랫동안 보존하는 길은 그것을 먹어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문수산 등산길에 갈비가 수북하게 쌓였다. 사철 푸른 소나무도 늦가을이 되면 잎을 떨어뜨려 몸을 가볍게 한다.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라 생각한다. 무성한 여름 잎을 달고서는 추운 계절을 지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식물도 아는 것이다. 빛이 귀한 계절에는 활동을 줄이고 영양분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생물은 없다. 이런 지혜는 사람에게도 필요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역동적인 생활보다는 단순하고 가볍게 살아가는 태도가 어울리는 시기가 반드시 오게 된다.나무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떨어진 낙엽은 나무를 푸르게 만드는 잎만큼이나 유익
감이 익어가면 시골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감나무 아래 풀숲을 헤치고 다녔다. 홍시를 찾는 것이다. 떨어져서도 모양이 살아있는 홍시 하나는 여느 간식거리에 못지않은 기쁨을 주었다. 달콤한 맛을 얻기가 쉽지 않았던 어린 시절 이야기지만 감이 익어가는 때가 되면 다시 떠오르는 기억이다.시골 아이들은 감나무 한 그루에서 봄 여름 가을 내내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봄에 감꽃이 피면 떨어진 감꽃을 모아 말렸다. 그리고 단맛이 오르기를 기다렸다.풋감이 열리면 아침마다 감나무 밑을 뒤졌다. 밤새 떨어진 풋감을 모아 소금물에 담그면 떫은
가을은 시와 어울리는 계절이다. 봄은 기분을 들뜨게 하지만 가을은 사람을 생각 속으로 침잠하게 한다. 그래서 문학적인 정서와 거리가 있는 사람도 낙엽이 지는 10월이 되면 소싯적 외운 시 한두 구절을 떠올린다. 계절 감각이 무디어지는 노년이 되어서도 가을 햇살과 청량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면 별다른 이유 없이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가을에는 산과 바다뿐만 아니라 매일 걸어 다니는 강변의 풍경도 시어를 만들어 낸다.태화강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심 속의 강이다. 그래도 강변 경관은 여느 강보다 수려해 멀리서도 찾아오는 명소가
가을이 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은 여유로워진다. 그래서 문득 떠오르는 여행길을 나서기도 하고 소식이 뜸한 옛 친구를 찾아보기도 한다. 사계절 모두 저마다의 정서를 자아내지만 서늘한 가을이 주는 느낌은 어느 계절보다 깊고 편안하다. 특히 혹독한 여름을 보내고 난 뒤의 가을은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정이라도 나누어야 할 것 같은 고마움과 겸허함을 느끼게 한다. 거리를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서늘한 기온 탓도 있지만 눈을 편안하게 하는 빛과 풍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풍경의 색조가 변하면 마음과 정서의 색깔도 변한다고 한다.산
문수산 등산길에는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비가 내려서 땅이 젖은 날에도 맨발로 걷는다. 맨살로 땅을 느끼고 싶은 충동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바닷가 모래밭에서는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게 된다.부드러운 황톳길에서 맨발로 걷는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도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그러나 비가 오는 날에 미끄러운 등산길을 신발의 도움 없이 걷는 일은 그렇게 낭만적인 일이 아니다. 한발 한발 정신을 집중하고 나아가는 모습은 가벼운 등산이 아니라 수행자의 순례 같다. 무엇이 이들을 맨발로 나서게 했을까. 단순한 지압 효과를 얻기 위해
한 사람의 죽음이 가족의 슬픔을 넘어서 사회의 아픔으로 승화되고 있다. 얼마 전 돌연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서울아산병원 고 주석중 교수가 우리에게 남긴 자취다. 그날도 주 교수는 새벽까지 수술을 집도했다고 한다. 짧은 휴식 후에 집에서 다시 병원으로 가는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주 교수의 삶은 오롯이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 집중되었다고 주위 사람들은 말한다.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거주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행사를 자제할 정도로 철저하게 의사로서의 소명을 실천하며 살았다.동료 교수들은 주
인간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민의 정을 느끼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그러한 고통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이 고통을 당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자신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들을 염려하고 걱정한다. 친구가 힘든 질병에 걸리면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건강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건강 상태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안도감을 느끼는 것도 이러한 때이다. 타인을 통해서 자신의 처지를 가늠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타인의 아픔이나 슬픔에 대한 이러한 공감 능력이 사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젊은이가 겪은 교통사고 소식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매일 접하는 사고 소식이지만, 20대 젊은이가 당한 날벼락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비극적인 일이다. 직장을 얻고 석 달 만에, 그것도 아침 출근길에 당한 음주운전 사고라고 한다. 며칠이 지나도록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젊은이와 그 곁을 지키는 부모에게 위로가 될 만한 말을 쉽게 찾지는 못할 것 같다. 의식을 찾더라도 병상에서 일어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의사의 진단이 틀리기만을 바랄 뿐이다.자식이 오랜 교육과정을 마치고 직장을 찾으면 모든 부모들은 박
흔히 성격이 팔자라고 한다. 자신의 운명은 자기 탓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성격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적절히 제어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운명이라고 하는 것 같다. 세월의 풍상을 겪어오면서 얻은 지혜가 또 하나 있다. 운명은 자신의 성격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혈연관계 속에서 사랑이나 배려 같은 정서보다 원망과 회한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얻게 된 경우에는 평생 감당하기 힘든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한다.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삶의 모습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리
설 명절을 쇠고 나면 예전 농촌의 어머니들은 한 해 신수를 보러 갈 곳을 정해야 했다. 신수를 잘 보는 용한 점쟁이는 대부분 멀리 있었다. 근동에도 점을 치는 사람은 있었지만 한 해의 운수를 서로 사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묻는다는 것이 미덥지 못했을 것이다. 적지 않은 복채도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소문난 점집을 찾아가서 온 가족의 신수를 보고 오는 일은 한 해를 시작하면서 치러야 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그것도 한해의 점괘가 온전히 드러나는 정월 보름이 지나기 전에 해결해야 하는 급한 일이었다. 한 해의 신수에 나타나는 예지력의 범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여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이 만든 ‘졸업식의 노래’ 첫 구절이다. 지금은 추억 속의 동요가 되었지만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모든 초등학교 졸업식은 이 동요를 부르면서 끝이 났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몇 번 부르지 않았지만 아직도 가락을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다. 노랫말이 주는 여운의 깊이도 그러하지만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졸업식 분위기도 노래 가락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초등학교 졸업식에서 학생뿐만 아니라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의 삶을 위로하는 사람들은 대개 나이가 60대이다.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에 걸맞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휴식이나 은퇴와 같은 말들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활동을 개척하면서 인생 2모작을 실천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역할을 찾지 못한 경우에도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열정과 역량이 아직 남아 있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그러다보니 법적으로 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