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들며 아동 정서 닮아가는 노년기
가을엔 감나무 얽힌 어린시절 떠올라
도시에서 벗어난 전원생활 꿈꾸기도

▲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감이 익어가면 시골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감나무 아래 풀숲을 헤치고 다녔다. 홍시를 찾는 것이다. 떨어져서도 모양이 살아있는 홍시 하나는 여느 간식거리에 못지않은 기쁨을 주었다. 달콤한 맛을 얻기가 쉽지 않았던 어린 시절 이야기지만 감이 익어가는 때가 되면 다시 떠오르는 기억이다.

시골 아이들은 감나무 한 그루에서 봄 여름 가을 내내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봄에 감꽃이 피면 떨어진 감꽃을 모아 말렸다. 그리고 단맛이 오르기를 기다렸다.

풋감이 열리면 아침마다 감나무 밑을 뒤졌다. 밤새 떨어진 풋감을 모아 소금물에 담그면 떫은맛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감을 담가 둔 항아리를 열고 익은 정도를 냄새로 구별하는 일이었다.

허기진 배를 채울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 했다. 비어 있는 찬장보다는 집 안의 나무 근처를 뒤지는 것이 훨씬 현명한 방법이었다. 요즈음 아이들이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열 듯이 그때의 아이들은 감나무 밑에서 먹을거리를 마련했다.

홍시가 나무에 달리면 엄마가 생각난다고 노래하는 가수도 있다. 자녀들을 위해서 홍시를 마련하고 보관할 정도로 자상한 엄마였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집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추수로 바쁜 가을에 감나무를 돌보는 일은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들의 몫이었다. 서리가 내려야 감의 떫은맛이 단맛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기다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높은 감나무를 예사로 오르고 내렸다.

긴 장대를 메고 미끄러운 고무신에 의지해 나무를 오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안전하게 나무를 상대하는 기술을 스스로 연마한 것이다. 어린 나이지만 그 나이에 어울리는 생활의 지혜를 체득하고 있었던 셈이다.

주위에 있는 자연 속에서 허기를 채우는 방법을 배운 아이들은 나무 한 그루가 주는 즐거움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집안의 나무에 생채기를 내거나 가지를 찢어 내는 일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무상으로 열매를 얻고 있지만 나무를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에서 배울 수 있었다.

가을이 되면 어느 나무나 열매를 맺지만 감나무처럼 많은 열매를 달고서 서리가 내릴 때까지 풍성한 모습을 유지하는 과일나무는 드물다. 또 감나무는 밭이나 논과 같이 먼 곳에 심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집 울타리 안에 있었다. 아무리 마당이 좁은 집이라도 감나무 한두 그루는 울타리 삼아 심어 놓았다. 아무 거름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열매를 맺는 고마운 나무였던 것이다.

지금은 감을 자주 먹지도 않거니와 나무에 달린 감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도 드물다. 그래도 이맘때가 되면 홍시를 달고 서 있는 감나무의 풍경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 한다. 밭에서 여러 그루 재배하는 감나무가 아니라 집 마당에서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매를 달고 서 있는 감나무를 보고 싶은 것이다.

긴 장대로 감을 따는 경험도 가을의 정서를 풍성하게 한다. 감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가을 내내 마음이 든든하던 유년 시절의 느낌은 시장에 가득 쌓인 감에서는 찾을 수 없는 깊고 소중한 경험이다.

노년이 되면 다시 어린아이의 정서를 닮아가면서 소박함과 단순함을 어느 정도 회복한다고 믿는다. 쇠약해지는 신체 리듬에 순응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는 자연 속에서 만들어진 기억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른다. 감나무에서 잎이 떨어지고 붉은 감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면 노년의 정서는 시골의 유년 시절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시절에 경험한 정취를 찾아서 산이나 들로 떠날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익숙한 도회 생활을 벗어나 전원 속에서 살아가는 꿈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도 이런 때이다.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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