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말 신문사에서 매달 암각화에 관한 짧은 칼럼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신통찮은 글솜씨로 시작한지 어느새 일년하고 반년이 지났다. 그 사이 풀리지 않는 매듭 같았던 반구대암각화는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48년 전, 댐속에 수몰된 반구대암각화가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문화유산으로 기본적인 가치 기준이 되는 연대조차 명쾌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갖가지 추
몽베고 암각화 유적은 해발 2800m에 이르는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베고 산봉우리 주변으로 약 4만점에 이르는 많은 암각화들이 산재하고 있는 노천 박물관이다. 몽베고(Mont Bego)는 프랑스어 산을 의미하는 몽(mont)과 베고(be-go)의 합성어이다. 베고(be-go)의 어원은 황소 신을 의미하는 ‘be’와 대지의 여신 ‘ge’에 뿌리를 두고
프랑스 남부 지중해를 면하고 있는 해안도시 니스는 연평균 15℃의 온화한 기후로 겨울철 영국인들이 많이 찾는 피한(避寒)여행지로 잘 알려져 있다. 알프스 몽베고 암각화는 니스에서 북쪽으로 약 80km 정도 떨어진 해발 2000m~2700m에 이르는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다.1877년 선사학자 리비에르(Emile Riviere)가 첫 유적조사보고서를 과학자협
흔히 어떤 분야의 중심지를 메카(Mecca)라고 한다. 메카는 이슬람교 창시자 마호메트가 태어난 도시로 모슬렘이라면 일생에 꼭 한번 방문해야할 성지다. 암각화 연구자들에게 메카를 꼽으라면 어디라고 할까? 아마도 많은 연구자들이 알프스라고 할 것 같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국경을 넘나드는 수많은 암각화 유적들과 연구자 밀집지역이기 때문이다. 19
2007년 프랑스 학술지 은 인류 문명의 기원을 주제로 특집호를 발간했다. 아시아권에서 한국의 신석기와 반구대암각화가 유일하게 다뤄졌다. 문명사를 다루는 저작물에서 흔히 중국이나 인도가 비중 있게 기술되고 있음을 보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2015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북태평양 연안에서 연어를 기초식량으로 삼고 있는 대부분의 부족들은 촌락에서 생활하는 정주민이다. 보통 남성들이 잡은 물고기를 여성들이 보존처리와 조리를 한다. 일반적인 보존처리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내장과 머리를 떼어낸 다음 포를 뜨고 덕장에 걸어 바람과 햇볕에 말리거나 훈제처리를 해서 비축을 한다. 작은 물고기는 몸통을 꿰어 통째로 말리기도 하고 큰 것
베링해협을 통과하는 자오선을 마주한 북태평양 연안지역은 위도와 하천, 섬의 계통, 풍부한 어류, 연어 회유 등에서 매우 흡사하다. 유라시아 북동지역과 아메리카 북서지역의 민족들은 오래 전부터 계절성 어로자원을 대량으로 비축해 정주경제를 이룩했다. 이들 민족 대부분은 연어를 기초 식량으로 삼아 육지와 바다에서 수렵과 어로로 살아가는 정주 수렵민이다. 풍부한
르와-꾸우랑의 제자였던 비알루는 스승의 연구방법을 계승하여 선사미술의 기호체계 분석을 통하여 일종의 언어구조의 문법과 유사한 원리를 찾으려고 했다. 연구자들은 기호나 상징이란 말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빈약한 선사시대 자료를 통해 이를 구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알루는 동물과 사람처럼 현실을 기반으로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표현물을 구
선사유적들이 즐비한 베제르 계곡에서 부모를 따라 여름휴가를 보내던 비알루(Denis Vialou)는 우연히 동굴벽화에 관한 강의를 듣게 되었다. 라스코 동굴을 조사하던 글로리(Andre Glory, 1906~1966)는 벽화에 마음을 빼앗긴 15세의 어린 소년에게 밤마다 곁에서 램프를 들게 하였다. 글로리의 문하생으로 대부분의 학창시절을 보낸 비알루는 19
루이-윌리엄은 트랜스 현상과 관련된 그림들은 샤머니즘과 관련되었다며 몇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첫째, 현실과 다른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이원적 세계관이다.둘째, 현실세계는 다른 세계(저승)와 관련돼 있으며 제의의 대상은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사냥이 되지 않거나 질병에 걸리면 다른 세계에서 그 원인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천전리 암각화에는 유난히 추상적인 그림들이 많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저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동심원을 두고 어떤 이는 동심원을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상징하는 것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태양이라고 한다. 아프리카 산족은 웽웽거리며 날아다니는 벌을 동심원으로 표현한다고 한다.루이-윌리엄은 이런 추상적인 이미지가 인간의 뇌신경 작용에 관련된 것으로 보았다
선사시대 바위그림은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상징과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서는 과거 태화강을 무대로 살았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천전리 암각화에 표현된 추상적인 형상들은 대부분 해독이 불가능한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반구대 암각화처럼 어떤 사물이나 장면
루와-꾸우랑은 고고학과 민족학을 접목하여 현대선사학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문헌기록이 없는 선사시대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족지가 열쇠가 된다고 믿었다.1937년부터 아내 아리에트(Ariette)와 함께 2년간 일본 홋카이도에서 머물면서 아이누족(Ainu)을 조사했고 1945년 사회인류학자 마르셀 모스(Marcel Mauss, 1872-1950)의 지도를
브뢰이(Henri Breuil)의 공백은 루와-꾸우랑(Andre Leroi-Gourhan, 1911~1986년)으로 채워졌다. 루와-꾸우랑은 직감이나 주관적인 해석에서 탈피해서 그림을 보다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이런 방법을 통해 선사인류의 정신세계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는 동굴벽화들이 무작위로 흩어진 것이 아
선사미술에서 브뢰이(Henri Breuil, 1877~1961년)만큼 큰 공헌자를 찾기는 어렵다. 동굴벽화를 불신했던 학계에 알타미라의 진실을 밝혔고, 20세기에 발견된 대부분의 동굴벽화가 그의 손을 거쳤으며, 수천 편에 이르는 많은 논문과 저서를 남겼다. 그를 ‘선사학의 교황(Pope of Prehistory)’으로 부르기도 한다.브뢰이는 선사미술을 ‘사
미술사학자 르네 위그(Rene Huyghe, 1905~1997)는 ‘눈은 말이 필요 없고, 그림은 이론이 필요 없다’고 했다. 또 ‘그저 보이도록 창조된 것’에 지나친 해석과 설명은 잉여(剩餘)라고 했다.위그는 미술이론을 작품의 부가가치를 높여주는 담론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이 미술을 말하기 이전에 창조된 선사시대 이미지에서 이성에 오염되지 않은 원초적
지난 5월 쟝뤽 보브레(JeanLuc Bouvret) 감독의 이란 영화가 파리에서 개봉됐다.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포즈 코아(Foz Coa)에서 있었던 일을 소재로 삼은 다큐영화이다.코아 이야기는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포르투갈은 유럽연합
지난 2016년 6월 울산 반구대암각화가 발견된지 45년만에 처음으로 해외전시에 나섰다. 그곳은 포르투갈 코아계곡에 세워진 코아암각화박물관이다. 코아암각화는 댐건설로 인해 수몰 위기에 처했다가 댐을 포기하고 암각화 보존을 선택한 사례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 전시회 개막식에서 코아계곡고고학공원 및 코아박물관 안토니오 밥티스타 관장은 참석자들에게
1879년 스페인 북부 산티야나 델 마르라는 작은 산촌마을에서 역사상 첫 구석기시대 동굴벽화가 발견됐다. 아마추어 고고학자 사우툴라(Marcelino de Sautuola, 1831~1888)가 어린 딸 마리아(Maria)와 함께 자신의 영지를 탐사하다 발견한 것이다. 사우툴라는 벽화가 구석기 미술임을 직감하고 정성스럽게 그림을 모사해서 학계에 발표했다.
1863년 아일랜드 지질학자 킹(William King)은 독일 네안데르탈(neanderthal)계곡에서 발견된 인골에 호모 네안데르시스(Homo neanderthalensis)라는 학명을 부여했다. 역사상 처음 생물학적으로 우리와 다른 인류(Homo)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기존 신학적 세계관으로 상상조차 불가능했던 일이다. 미국 철학자 쿤(Tho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