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태가 났다. 이골 저골, 이산 저산, 천지 강산에 꽃이 피어 어지럽다. 꽃과 바람, 빛이 한데 엉켜 출렁일 때마다 어지럽다. 자연이 이렇듯 맹렬한 기세로 봄기운을 뿜어내기에 중생들은 눈멀고 귀 먹어 기운이 쇠하는 듯 하다. 영덕의 봄은 온통 붉은 빛이다. 영덕의 오십천변과 지품면 일대는 복사꽃 흐드러져 선명한 분홍의 꽃 잔치가 무르익었다. 봄 햇살에 분홍
4월의 영덕은 축제가 한창이다. 복사꽃 축제와 대게 축제가 함께 열린다. 영덕은 국내 최대의 복숭아 산지로 온통 연분홍과 진분홍의 꽃이 질펀하게 피어 꽃대궐을 만든다. 영덕읍 화개리의 오십천변과 지품면 일대는 복숭아꽃이 만발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경에 빠져들게 한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복숭아꽃을 보고 강구 항으로 나오면 영덕 대개가 한창이다. 4월
부처님의 위엄은 백수의 왕인 사자에 비유되곤 한다. 사자가 포효하면 온갖 짐승들이 놀라 도망치듯 부처님이 삼매에 들어가면 온갖 악한 것들이 복종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설법을 사자후(獅子吼)라 하고 부처님이 앉는 자리를 사자좌라고 한다. 두려움 없는 부처의 엄정함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계곡에 위치한 사자빈신사터의 사사자석탑이
예천은 이름 그대로 물 좋은 고장이다. 이름만 들어도 맛이 확 도는 감천 샘물이 있고 내성천이 만들어 낸 물돌이 마을 회룡포가 때묻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정자 초간정을 돌아 흐르는 물소리는 청량하다. 그래서 예천의 곳곳에 산재한 탑들은 물처럼 순하며 다소곳하다. 예천 땅의 탑들은 장엄하지 않다. 지나치게 높지 않다. 화려하거나 특별하지도
중원땅 남한강변, 탑평리 칠층석탑 앞에 서면 유치환의 시 ‘깃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높은 토단 위에 14.5m의 거대한 탑은 우주의 중심에 꽂힌 깃발처럼 한껏 위엄을 자랑한다. 얼마 전 인도와 네팔을 다녀왔다. 탑의 원류를 찾아가는 여행이기도 했다. 기원전 3세기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은 인도 전국에 8만 4천기의 탑을 건립하였다. 그 후 무슬림의 침략
산청(山淸)은 나의 모태다. 부모님의 고향이고 잠깐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그 곳으로의 여행은 정답다. 지리산의 우뚝 솟은 천왕봉을 보고 자랐고 경호강 맑은 물에 대한 내 유년의 기억은 편편이 이어진다. 첫 발령지도 산청이어서 경호강을 따라 통근을 했다. 지리산 계곡에 자리한 대원사에서 고3 여름방학을 보낸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일이다. 그리고 시천골
"그"라고 부를까. 그대, 아니면 그이가 좋을까. 그가 되었든, 그대라고 부르든 알싸함이 입안에 감돈다. 그를 만나러 가는 날은 가슴이 떨린다. 이 옷 저 옷을 꺼내 입어보지만 마땅하지 않다. 훤칠한 키, 완숙한 아름다움, 청신한 기품을 지닌 그와 어울리는 옷차림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신사다. 하얀 턱시도를 입고 이제 막 연주를 마치고 관객을 향해 어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황매산 아래 영암사터에는 부처님의 나라가 돌 이야기로 남아 있다. 황매산의 잘 생긴 바위들이 굴러 내려와 쪼거나 깎고 다듬어 만들어진 석조 유물은 제대로 된 부처님의 나라를 보여준다. 화려함으로 비범함으로 때론 출렁이는 불법의 바다로 남아있는 유물들은 이 팍팍한 세상에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래서 내 발길이 잦은 곳이다.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절터에 섰을 때 당황했다. 이해하기 힘든 역사의 현주소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첩첩산중 골짜기에 수많은 석조유물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잠시 낯선 세계에 와 있는 듯 하였다. 구불구불 산길을 넘었고 내촌천 물길을 따라 좁은 길을 더듬어 돌았다. 그리고 고요한 마을길을 지나 만난 이 절터의 유물들은 경외심을 일으키기에
정암사로 가려면 8월이 제격이다. 찾아갈 땐 반드시 싸리재를 넘어야 한다. 태백을 지나 정선의 정암사로 가는 38번 국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길이다. 해발 1268m의 싸리재는 구름 속을 헤치고 녹색 숲의 바다를 건너가는 길이다. 그리고 한창 벌개미취의 보랏빛 향연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 보랏빛의 선명하고 단정함은 탄성을 자아낸다. 8월에만 느낄 수 있는
먼길이었다. 빗속을 달려 강원도로 향할 때부터 가슴은 두근거렸다. 거세게 내리던 비도 진전사터를 찾았을 때는 거짓말처럼 개었다. 부처님의 가피다. 진전사지로 향하는 나를 아들은 부러워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여행을 같이 한 아들은 우리나라 국보를 거의 다 보았다. 그런데 진전사지 삼층석탑은 놓쳐버렸다. 몇 년 전 진전사터를 향할 때도 고3이라 제가 슬그머니
우리나라 탑 역사에 획을 그은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귀중한 문화재다. 그러나 실상은 버려진 듯한 인상을 주곤 한다. 국보로 지정되어야 마땅한데 아직 그대로이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양식의 삼층석탑이다. 상, 하층 기단에 각각 2개의 탱주와 우주가 있다. 일층 탑신에 비해 2, 3층이 낮아져 안정감을 주는 것도 그 시대 석탑의 특징이다. 5단의 옥개 받침
탑 기행을 마치고 오면 아들은 어떠했는지 꼭 물어본다. 그때마다 나는 형용사나 부사를 잔뜩 붙여 흥분된 목소리로 일일이 설명하려고 애쓴다. 매번 가만히 들어주던 녀석이 어느 날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탑은 탑일 때 가장 멋진 거예요 머리가 찡하게 아프고 정신이 번쩍 났다. 탑은 탑일 때 가장 완벽한 부처님의 집이 되는 것을 아들 녀석이 깨닫게 해 주었다.
남한강의 상류에 위치한 제천은 물의 본향이다. 남한강 줄기를 낀 곳이며 충주댐이 있어 물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제천을 가면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의림지다. 삼국시대에 축조된 우리나라 최고의 수리 시설인 의림지는 농경민족의 뿌리를 느끼게 한다. 물의 고장 중심에 장락리 칠층 모전석탑이 우뚝 서 천년의 세월을 이어와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적한 시골, 과수원
매화를 보러 갔다가 뜻밖에 멋진 탑을 보게 됐다. 꽂을 보러 떠날 땐 중흥산성 삼층석탑은 덤으로 여겼다. 막상 탑 앞에 섰을 때 눈을 뿌린 듯 화사했던 꽃이 외려 덤이 되고 말았다. 중흥산성 탑은 처음이다. 섬진강 변을 수없이 다녔고 남해고속도를 따라 광양을 지나치면서도 중흥산성 답사는 늘 미루어 왔었다. 내 아둔함이 늦게 서야 이 탑을 찾게 된 원인이다.
경주 남산은 작지만 큰산이다. 골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하며 기암 괴석이 많다. 남산은 불국토요, 경주인의 이상향이었다. 40여 개의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석불과 석탑이 무수히 많고 147곳의 절터가 있다. 그러하니 남산은 산 전체가 보물이요, 박물관이다. 그 산에 80여 기의 탑이 세워졌고. 대 가람이었던 용장사지 삼층석탑이야말로 하늘에 맞닿아 수미산 도
우리나라 전탑의 역사를 알아보려면 안동에 가야 한다. 안동은 전탑의 고장이다. 사과가 익어갈 무렵이면 더욱 좋다. 남안동 IC로 들어가면 이내 보물 제57호인 조탑동 오층전탑을 만난다. 사과밭 한 가운데 있는 이 탑을 보려면 과수원 주인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사과가 빨갛게 익을 무렵 허락도 없이 들어갔다가 벼락을 맞았던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 그럴 필요
보름밤에 감은사지로 갔다. 달은 뜨지 않았고 별만 총총했다. 어둠 속에 서 있는 두 기의 탑은 엄청나게 큰 실루엣을 만들어 내고 있어 무서웠다. 으슬으슬 한기가 옷 속으로 파고드는데 진한 어둠은 냉기를 더해 추위에 떨었다. 대금을 부는 장선생은 오싹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탑 가까이 다가가는데 나 또한 낮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운이 밟고 선 절터에서 스멀
백제 기행의 끝점은 항상 서산의 보원사터가 된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보원사터를 향해 옛길을 따라가는 맛은 쌉싸름하고 은근히 단맛이 난다. 처음엔 서산 마애삼존불의 미소를 찾아갔다가 덤으로 들르는 곳이다. 그러나 보원사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을 끄는 곳이 되었다. 절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초등학교 때 소풍 온 것처럼 기분이 한껏 부풀어오른다. 철제 찰주가
울산예술고등학교(교장 황우춘)가 제6회 예일전국무용경연대회 참가신청서를 접수한다. 4일 울산예고는 오는 26일 울산예고 예림홀에서 열리는 제6회 예일전국무용경연대회에 참가할 전국 초·중학생들의 참가신청서를 오는 15일부터 24일까지 접수한다고 밝혔다.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 전공자로 학교장의 추천을 받은 학생이면 누구가 참가할 수 있다. 신청서는 울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