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山淸)은 나의 모태다. 부모님의 고향이고 잠깐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그 곳으로의 여행은 정답다.
 지리산의 우뚝 솟은 천왕봉을 보고 자랐고 경호강 맑은 물에 대한 내 유년의 기억은 편편이 이어진다. 첫 발령지도 산청이어서 경호강을 따라 통근을 했다. 지리산 계곡에 자리한 대원사에서 고3 여름방학을 보낸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일이다. 그리고 시천골 외딴 마을 친구네 집을 찾아가던 날의 땡볕은 지금도 찬란하다. 계곡을 건너고 산길을 지나고 고개를 넘어가던 날 우리는 온갖 이야기를 했었다.
 대학 때 처음으로 지리산 등산을 갔는데 우리의 등반을 안내하던 남자는 뒷날 지리산에서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얽힌 산청이지만 그 곳을 떠올리면 늘 남명 조식 선생과 단속사지 삼층석탑이 제일 우선이 되곤 한다.
 존재의 중량감이 무거워서 살기가 버거울 때 산청을 향한다. 엄밀히 말하면 단성면 운리로 간다. 그곳에 아담하게 서 있는 두기의 삼층석탑을 보기 위해서다. 이 겨울 어머니 품에 안기듯 지리산 자락으로 푹 빠져든다.
 단성 초입에는 문익점 목화 시배지가 있고 성철 스님의 생가인 겁외사도 있다. 조선시대 양반 마을인 고색창연한 남사 마을도 지나게 된다. 조선의 고고한 유학자인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지도 가까이 있다. 덕분에 산청 답사 길은 내 정신에 제대로 날이 선다.
 그 옛날, 절은 번창하여 신도들이 초입인 광제암문에서 미투리를 갈아 신고 절을 한바퀴 돌아 나오면 미투리가 닳아 떨어져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지만 옛날의 번성함은 가늠하기가 어렵다. 다만 솔숲에 놓인 당간지주와 두기의 탑이 그 흔적을 엿보게 한다.
 무엇 때문에 금계사라는 이름을 버리고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자 하는 의미의 단속사(斷俗寺)가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때문인지 절은 황폐화되고 완전한 연을 끊은 것은 아니었을까? 이 탑 앞에 서서 단속사의 장대함이 어떠했는지 짐작을 해 보곤 한다. 그 당시 이 쌍탑은 많은 사람들의 경배와 기도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8세기 초 신라는 석탑 조형의 전성기였다. 성대의 정형을 잘 계승한 탑이 경주와 멀리 떨어진 이 산골에 아름다운 비례로 삼층탑을 조성되었다.
 단속사지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8세기 후반의 전형적인 석탑이다. 이중기단의 하층기단은 2기의 탱주가 정연하나 상층 기단은 탱주가 하나로 줄어들었다. 지붕 돌은 비교적 엷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흘러내리다 날렵하게 들린 점도 그러하다. 층급받침은 그대로 5단으로 계승된다.
 툭 트인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동 서로 서 있는 두 기의 탑은 그다지 높지 않은 5.3m의 키에 알맞은 비례와 균형으로 안정감을 준다. 단정하고 우아하여 맵시 있는 여인이다. 수법이나 규모가 비슷한 두 탑은 흠 잡을 데 없이 아름답다. 다만 서탑이 조금 파손이 되었지만 보물 제 72, 73호로 지정되어 있다.
 단속사지에 들어서면 솔거를 생각한다. 역사시간에 수없이 들었던 그의 신필에 대하여, 그리고 황룡사 벽에 그렸다는 노송도를 떠올린다. 솔거가 단속사에 유마거사상을 남겼다고 하나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두 기의 탑 중간에 앉아 있으면 솔거의 노송도를 연상시키는 당간지주를 둘러싼 노송도 아름답고 유마거사상도 다가오는 듯 하다. 그래서 단속사지 삼층석탑은 특별하다.
 올 겨울은 따뜻하다. 여행하기에 그만이다. 바람이 없어 겨울 한낮에 탑과 마주하고 있으니 그저 좋다. 햇볕이 탑을 오글오글 둘러싸고 있다. 금당지가 있던 자리에 지어진 민가에는 온통 햇살이 넘친다. 명당이 따로 없다. 그 집 마루에 앉아 사계절 내내 탑을 볼 수 있는 게 내 소망이다. 그곳에다 솔거 다실 하나를 꾸미고 싶다.
 강당이나 요사채 자리이었음직한 곳에 민가가 들어서 동네를 이루고 있어 이 탑은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탑 옆으로 배추밭도 있다.
 마을 초입에는 고려 말 문신 강회백이 단속사에서 공부하면서 심었다는 600년이 넘었다는 매화나무도 있다. 겨울이라 매화 등걸은 제 몸통을 그대로 드러내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후세인들은 강회백이 정당문학이란 벼슬을 하게되자 정당매라고 부른다. 사람은 가고 없는데 매화는 남아 단속사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매화가 피면 삼층석탑을 만나러 다시 와야 할 것 같다.
 동네에선 저녁 연기가 피어오른다. 배추를 뽑는 농부의 손길이 바쁘다. 단속이 아니라 세속이다.

◇주변 볼거리
단속사지와 멀지 않은 시천면에 있는 남명 선생의 유적지는 꼭 들러 볼 만하다. 덕천강 주변에 자리한 유적지는 맑은 강과 어우러져 정신을 맑게 해 준다. 산천재는 남명 선생이 만년에 학문과 정신을 제자들에게 전하고 나라를 위해 경륜을 편 곳이다. 덕천서원은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이며 서원 옆에 있는 세심정은 성인의 마음을 씻는다는 정자로 선생의 제자들이 건립하였다. 남명 선생의 묘소도 가까이 있다.
 삼장면의 대원사계곡 깊은 곳에 위치한 대원사는 충남 예산의 견성암, 양산 석남사와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정갈하고 단아한 절집이다.
 삼장면의 내원사도 꼭 들러 볼 일이다. 장당골과 내원골이 합류하는 지점에 절묘하게 위치한 절이 내원사다. 반야교는 천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기쁨을 느끼게 한다. 비로전의 비로자나불은 우리나라 최초의 비로자나불로 중요한 문화재다.
 금서면에 위치한 가야국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릉으로 전해오고 있는 능은 특별한 돌무덤으로 또 다른 여행의 묘미를 더해 준다.

◇찾아 가는 길
남해 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진주까지 가서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 대전 방향으로 들어간다. 단성 IC를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단성면으로 향하는 20번 국도다. 초입에 문익점 목화 시배지가 있고 이곳을 지나면 남사마을이 나오고 남사 마을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돌아 7㎞를 가면 단속사지가 있다.
 단속사지에서 다시 돌아나와 남사마을에서 지리산 중리로 이어지는 20번 국도를 따라 10㎞쯤 가면 시천면이다. 조식 선생의 유적지는 시천면 곳곳에 있다.
 시천면 삼거리에서 오른쪽 대원사 방면으로 난 군도를 따라 들어가면 삼장면 대포리에 내원사가 있고 삼장면 유평리에 대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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