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의 시(詩)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2000편의 시가 소개돼 있다고 한다. 시인 행세하고 살지만 그렇게 많은 시가 소개돼 있는지 몰랐다. 그 편 수에 놀랐다. 시집으로 치면 30권 이상의 분량이다. 공자는 ‘시삼백(詩三百)을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하면 왈(曰) 사무사(思無邪)’라고 했는데. 서울 지하철의 무려 2000편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끝났다. 대국의 수보다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아무튼. 그 결과 미래부가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래창조과학부’란 정부부처가 뒤늦게 상상하지 못한 ‘미래’에 화들짝 놀랐던 모양이다. 인공지능시대를 위해 예산을 투입하고 ‘전담팀’을 만든다고 한다. 결국 이번 대국의 실질적 승자며, 알파고의 주인인 ‘구글’의 값어치
네팔 ‘담푸스’에서 편지를 보내려했습니다. 그 무렵 바쁜 일정이 겹쳐 건강에 무리가 왔었습니다. 그건 히말라야가 제 편지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말의 다름 아닐 것입니다. 늦은 편지와 인사에 대해 이해를 청합니다.히말라야를 꿈꾸거나, 히말라야를 찾아간다면 ‘ABC’란 말을 자주 듣게 될 것입니다. ABC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준말입니다. 안나푸르나(1봉
어제 새벽, 미국이 ‘마침내’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마침내’라는 부사까지 사용하는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7년 동안 유지했던 미국의 ‘제로 금리’ 시대가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새벽까지 연구실에 붉을 밝히고 기다리다 메가톤급 파괴력을 가진 그 뉴스를 확인하며 이 나라 청춘들의 처진 어깨를 생각했다. 올 겨울이 유난히 춥고 길 것이라고 생각했다.미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무서리 내리고/ 나래 푸른 기러기는 북녘을 날아간다/ 아 이제는 한적한 빈들에 서 보라/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 고향 길 눈 속에선 꽃등불이 타겠네.’이 무렵이면 흥얼거려지는 노래가 있습니다. 김재호 작사, 이수인 곡 ‘고향의 노래’입니다. 학창시절 선생님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배운 그 노래가 세
월급생활자의 즐거움은 제 날짜에 급여를 받는 일에 있다. 필자는 30여 년 전 첫 월급으로 현금이 들어있는 월급봉투를 내 손으로 받았던 기억이 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은행계좌가 월급을 대신받기 시작했다. 마치 은행계좌가 내 월급의 주인인양 돼 버린 것이다.은행이 UMS(Unified Messaging System 통합메시징시스템)를 제공하면서 휴대전화에서
울산의 가을은 울주의 산군(山群) 산정에서부터 조용조용 내려온다. 이른바 해발 천 미터 이상의 산군들이 모여 있는 ‘영남 알프스’가 울산 가을의 푯대며 전령사인 셈이다. 올핸 아직 가보지 않았지만, 하마 억새들의 이삭이 아름다운 은빛으로 패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 발품을 팔아 그 산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요란한 도시보다 고독한
당신이 이 글을 읽을 때쯤 저는 남쪽 바다 먼 섬에 머물고 있을 것입니다. 비올 확률이 높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습니다. 아마 비를 맞으며 섬의 높은 곳에 자리한, 불을 밝힌 지 100년이 지난 등대로 가는 외길을 혼자 걸어가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칠팔월의 지독한 불볕더위를 지나오며 뼛속까지 흠뻑 젖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섬에서 오랜 만에 산업도시
언제부터인가 TV채널마다 음식이 넘쳐난다. 그중에서 ‘집밥 백종원선생’은 연일 상종가다. 바야흐로 ‘집밥’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선생의 상종가는 집밥 신드롬까지 만들고 있다.선생은 집밥에 설탕을 당당하게 사용한다. 흰설탕이나 갈색설탕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지만, ‘뭔가 있어 보여서’ 갈색설탕을 쓴다고 한다. 설탕을 폭탄처럼 투하하는 선생의 요리는 신
메르스 사태는 끝이 없다. 대한민국은 한 달째 날개 없이 추락중이다. 현재 메르스의 답은 없다. 정부는 매주 고비라고 발표한다. 고비를 넘지 못한 사태는 지금까지 고비에서 고비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0일, 1번 환자가 확진판정을 받았다. 그 이후 메르스 환자들은 번호로 호칭된다. 확진환자 1번부터 169번까지, 번호로 호칭되는 환자는 인격이 사라진 그
고래의 외형적인 정체성은 ‘힘’이다. 고래를 뜻하는 영어 ‘Whale’이 바퀴를 뜻하는 ‘wheel’에서 왔다고 한다. 고래가 바다를 헤쳐 나가는 모습이 큰 바퀴가 굴러오는 것 같다고 생각한 그 어원의 상상력에 동의한다. 그러나 고래의 생태적 정체성은 ‘모성’이다. 사람처럼 새끼를 낳고, 젖을 물려 키우는 고래의 모성애는 지극정성이다. 자식 하나 낳아 기르
‘춘서(春序)’란 옛말이 있다. 봄에 꽃이 피는 순서를 말한다. 매화가 첫 신호를 보내면 춘서에 따라 차례차례 꽃이 피었다. 하지만 그 질서가 무너진 지 오래다. 요즘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한꺼번에 꽃이 핀다. 꽃이 질서 있게 필 필요는 없지만 이런 무질서가 새로운 질서가 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건 환경이 변했다는 경고이다. 말하자면 온난화에 대한
지난 13일 울산발 ‘고래회충’ 보도에 ‘고래도시 울산’이 쌓아놓은 공든 ‘고래탑’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울주군 서생면과 동구 대왕암에서 30년 경력의 낚시꾼에게 잡힌 망상어와 바닷물고기에서 다량의 기생충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전국으로 빠르게 퍼졌다. 그리고 그 원망이 울산과 고래에게 쏟아졌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는 말이 있지만 이번 사태는 고래회
필자는 1955년에서 1963년까지 태어난 1차 베이비붐 세대이다. 인구가 710만 명에 이르는 1차 베이비붐 세대는 전체 인구의 14.3%에 달한다. 지금 그 세대가 명예퇴직이란 불명예스런 이름으로 자신의 오랜 직장에서 내몰리고 있다. 유행가 가사처럼 ‘아니 벌써!’라는 신음이 고통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1차 베이비붐 세대는 비교적 구직난에 시달리지 않
겨울은 추워야 맛이라고 했습니다. 그 맛 좀 봐라는 듯이 이번 주엔 강한 한파가 한반도를 덮쳤습니다. 날씨가 경제가 되고 뉴스가 된지 오랩니다. 이번 한파는 생활섹션의 주요 뉴스로 계속 올라가 있습니다. 언론은 겨울추위가 ‘절정’이라고 비유합니다. 이육사 시인은 ‘절정’이라는 시에서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육사 시의 무지개는
지난 주말 자주 찾아가는 고성 안국사에서 철새 독수리를 보았습니다. 안국사가 자리 잡은 천황산 하늘 위로 긴 날개를 펼치고 선회하는 모습을 보며 하늘의 제왕 독수리가 보여주는 품새가 늠름했습니다. 독수리는 우리나라에서 귀한 맹금이어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철에 따라 날아오고 날아가는 새를 철새라고 합니다. 후조(候鳥)라고도 합니다. 제대로 철새구경을 하지 못
늦은 밤, 어느 커피숍에서 보았습니다.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세 명이 한 자리에 앉아 식어버린 커피 잔을 앞에 놓고 각자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흔한 모습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이 있는 풍속도’였지만 저는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대표작 ‘절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들은 같은 원탁에
최근에 아주 열심히 읽은 소설이 있습니다.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언어철학을 강의한다는 파스칼 메르시어가 쓴 란 꽤 두툼한 장편소설입니다.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입니다. 우리가 사는 도시 울산이 유라시아 대륙의 해 뜨는 바다를 가진 도시라면 포르투갈은 해 지는 바다를 가진 땅입니다.리스본에 가본 적은 없었지만 그 책을 보는 순간, 갑자기
69주년 광복절 아침입니다. 저는 최근에 ‘님 웰이즈’가 쓴 을 다시 읽었습니다. 님 웨일즈(1907~1997)는 미국의 신문기자이자 시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오랜 시간을 아시아에서 보내면서 중국과 한국에 관하여 많은 글을 집필하였습니다.김산(1905~1938)은 독립운동가로 중국 공산혁명을 통한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1924년 고려공산당 베이징
여름산을 표현할 때 저에게는 ‘힘차게 솟아오른다’는 말이 뒤따라 떠오릅니다. 진녹의 여름산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그 순간순간, 어디에선가 불쑥 솟아오르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눈길 닿는 곳마다 푸르고 거대한 생명의 상징이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요즘의 ‘영남알프스’ 산군들이 그런 상징을 줍니다. 제가 좋아하는 길인 울주군 삼동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