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사로 가려면 8월이 제격이다. 찾아갈 땐 반드시 싸리재를 넘어야 한다. 태백을 지나 정선의 정암사로 가는 38번 국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길이다.
 해발 1268m의 싸리재는 구름 속을 헤치고 녹색 숲의 바다를 건너가는 길이다. 그리고 한창 벌개미취의 보랏빛 향연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 보랏빛의 선명하고 단정함은 탄성을 자아낸다. 8월에만 느낄 수 있는 환희요, 특권이다.
 지금은 두문동재 터널이 뚫려 이 아름다운 고개를 넘나드는 차가 거의 없다. 덕분에 이 고갯길을 온전히 차지하는 기쁨도 있다. 그래서 8월이 오면 정암사를 찾아간다.
 싸리재를 넘어 고한의 탄광촌을 지나야 정암사로 갈 수 있다. 그래서 정암사 가는 길은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눈물겨운 길이다.
 시커먼 탄광촌의 납작한 판자촌을 지나야 했고 함백산 여기저기 뻥뻥 뚫린 탄광은 삶의 고단함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그러다 하나 둘씩 폐광이 늘어나자 빈집이 되어버린 판자촌 좁은 마당에 노란 해바라기며 봉숭아가 시커먼 동네를 배경으로 피어나 더욱 가슴아팠다.
 지금은 강원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카지노가 생겨 길은 넓어지고 큰 건물은 들어섰으나 여전히 피폐한 냄새가 난다. 자동차를 비싼 값에 매입한다는 문구가 쓰인 전당포가 줄줄이 이어진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암사로 가는 길은 고해에 빠진 중생들을 만나고서야 갈 수 있다. 정암사는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절이다. 그곳에 정암사가, 수마노탑이 자리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숲과 골짜기는 해를 가리고 멀리 세속의 티끌이 끊어져 정결하기 짝이 없다 하여 이름 붙여진 정암사는 신라 선덕여왕 14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수마노탑은 적멸보궁 뒤 가파른 산 중턱에 세워졌다. 정암사 절 마당에 들어서 눈만 들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보석으로 지어진 탑은 중생을 그윽이 내려다본다. 그래서 적멸보궁까지 가지 않고도 저절로 합장을 하게되고 나도 모르게 허리를 깊숙이 굽힌다.
수마노 탑을 오르려면 계곡의 좁은 다리를 건너야한다. 그 차가운 계곡 물에는 천연 기념물인 열목어가 산다. 그리고 오솔길을 지나 150여 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야 만나는 탑이다.
 바람이 건듯건듯 불더니 옷깃을 날린다. 더위를 싹 씻어주는 바람이다. 그렇구나. 이 바람이 있어 탑의 전각에 매달린 풍경이 맑은 소리를 내는 구나. 그 소리가 공중에 가득 차고 소슬하다.
 정암사 수마노 탑은 높이 9m의 칠층 모전석탑이다. 회색 마노석을 정교하게 잘라 쌓았다. 전설에 의하면 자장율사가 당에서 마노석을 가지고 와서 쌓은 탑이다. 앞의 는 자장율사의 불심에 감화하여 용왕이 마노석을 이곳까지 무사히 실어다 주었기에 붙인 것이다.
 자장율사는 당나라 청량산 운제사의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세존의 정골사리, 치아, 불가사, 패엽 등을 가지고 귀국하여 금탑, 은탑, 수마노탑을 쌓고 부처님의 사리와 유물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중생들의 탐욕을 우려해 금탑, 은탑은 육안으로 볼 수 없게 숨겨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정암사 북쪽에 금대봉이, 남쪽에 은대봉이 있으니 막연히 전설만은 아닐 것이다.
 자장율사의 창건설과는 달리 탑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탑 앞에 놓인 배례석의 연화문이나 안상문은 고려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모전 석탑은 가공기법이 정교하여 돌이 아니라 잘 구워낸 벽돌처럼 보인다. 마노석은 어찌나 매끈한지 돌이라고 믿어지지 않아 손을 가만히 대어보기도 하고 쓸어본다. 비누를 만질 때처럼 매끄럽다.
 일층 몸돌에는 감실이 있다. 문은 1장의 판석을 끼웠고 중앙에는 세로줄을 음각 하여 두짝 임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문고리도 달았다. 옥개석은 전탑의 형식을 본 따 추녀가 짧다. 옥개석의 받침 수나 층단의 수는 위층으로 갈수록 줄어들었다. 상륜부는 노반 위에 청동제 장식이 완전하다. 그리고 네 줄의 철쇄가 내려와 고정되었다.
 수마노 탑 주위로 다람쥐가 들락거린다. 사람 눈을 피하지 않고 탑의 화강암 기단에 앉아 빤히 쳐다본다. 한 마리가 아니다. 어디서 또 한 마리가 나타난다. 그러고 보니 탑 앞에 쌀 공양 올린 것을 열심히 먹고 있다. 제 먹이가 있으니 뭐가 무서우랴. 그러고는 움쩍도 않고 한참을 앉아있다. 그 녀석도 부처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걸까?
 마노석은 보석임에 틀림없다. 미끈한 돌이 천년을 끄덕 없이 비탈에 서서 부처의 자비로움을 품고 사북과 고한의 중생들을 굽어살피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황금만이 아니다.
 보물 제410호인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에 자리한 정암사 수마노탑을 보려면 벌개미취가 한창인 8월이 끝날 때쯤에 가보라. 싸리재 뿐만이 아니라 태백과 정선은 온통 벌개미취의 축제가 시작된다.

#주변 볼거리
태백에서 정선으로 가는 싸리재를 넘기 전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기차역인 추전역이 있다. 태백시 화전2동에 위치한 이 역은 해발 855m이다. 우리나라 역 가운데 적설량이 제일 많으며 여름에도 밤에는 난로를 피운다. 환상선 눈꽃 순환 열차가 운행되면서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평소에 이용객은 거의 없으나 이 곳을 찾는 관광객은 끊이지 않는다.
 황지 연못은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로 태백시내 중심에 있다. 이 못은 상지와 중지 하지로 구분되며 하루 5천 톤의 물이 일정하게 솟아나고 있다. 이 물이 드넓은 영남의 평야를 적시고 남해에 이른다.
 태백시에는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도 있다. 태백시 자연림 금대봉골에 위치한 검룡소는 태고의 신비를 자아낸다. 둘레 20여m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검룡소는 석회암반을 뚫고 올라오는 지하수로 하루 23천톤 가량 된다고 한다. 이 밖에 태백시에는 석탄박물관과 용연동굴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찾아가는길
울산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대구 금호JC까지 가서 중앙고속도로 안동방향으로 방향을 바꾼다. 영주IC에서 빠져나간다. 영주시를 지나 36번 국도를 따라 봉화읍, 법전면, 소천면 소재지까지 간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31번, 35번 국도로 청옥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계속 가면 태백시에 이른다. 태백시를 통과하여 정선으로 가는 38번 국도를 따라 두문동 터널을 통과(싸리재를 넘어도 됨)하여 고한읍 사무소에 가기 전에 좌회전하여 414번 지방도를 따라 조금가면 정암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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