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를 보러 갔다가 뜻밖에 멋진 탑을 보게 됐다.
꽂을 보러 떠날 땐 중흥산성 삼층석탑은 덤으로 여겼다. 막상 탑 앞에 섰을 때 눈을 뿌린 듯 화사했던 꽃이 외려 덤이 되고 말았다.
 중흥산성 탑은 처음이다. 섬진강 변을 수없이 다녔고 남해고속도를 따라 광양을 지나치면서도 중흥산성 답사는 늘 미루어 왔었다. 내 아둔함이 늦게 서야 이 탑을 찾게 된 원인이다.
 전남의 광양시 옥룡면은 일찍이 신라시대에 도선 국사가 터를 잡고 옥룡사를 창건하여 불교의 중흥을 일으키던 곳이 아닌가. 중흥사도 도선국사가 창건한 절이다. 그러고 보면 광양 땅에 서린 불력이 만만치 않았음을 이 삼층석탑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그 노력의 흔적이, 정성과 불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탑이 중흥산성 삼층석탑이다. 탑에 새겨진 풍부한 장식은 그 당시 중흥사의 번창함도 함께 말해 주고 있다.
 중흥산성은 고려시대에 쌓은 토성이다. 해발 400m의 산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이 성은 임진왜란때 의병과 승병의 훈련장이었다. 또한 왜군과 큰 전투가 벌어 졌던 곳이다. 왜군의 침입으로 중흥산성이 함락되자 승병들은 모두 순절하고 사찰은 불타버렸다.
 승병들이 산화한 슬픈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아야 했던 탑은 그 날의 한을 간직한 채 묵묵히 서 있다. 그래서 보듬어 위로라도 해 주고 싶다. 중흥사야말로 애국심이 깃들은 호국사찰로서 대접을 받아야 할 곳이다.
 폐찰 됐던 중흥사는 1963년부터 중건하여 오늘날에 이르렀으나 절집의 건물들이 덩그렇게 크기만 했지 안온함이 없다. 다만 탑이 서 있는 천불전 옆 마당은 역사의 정신이 깃들어서 인지 분위기가 다르다.
 탑은 이중기단을 갖춘 방형 삼층석탑으로 전형적인 신라 양식이다. 전체적으로 안정적이며 조형미가 우수하여 멀리서도 가까이 다가서도 보는 맛이 그만이다. 양질의 화강암이라 손상이 적고 오랜 세월에도 보존이 잘 되어 생생한 감동을 준다.
 아래층 기단은 매우 안정적이다. 위층기단은 폭이 넓은 우주를 새겼다. 한 면을 넓은 탱주로 분할하고 각 면에 조각을 하였다. 앞면에는 인왕상이 2구. 양 측면에는 사천왕상이 2구씩, 북쪽에는 공양상 2구를 도드라지게 새겼다. 입체감이 풍부하다.
 불법을 수호하는 인왕상은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모습이 귀엽다. 과장되게 튀어나온 근육 때문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생동감도 보여준다. 결연한 의지는 부처님의 집을 지키는 수호신답다. 사천왕상의 볼은 도톰하고 표정도 재미있다.
 기단 위의 갑석은 두 장의 판석으로 되어있고 갑석의 중앙과 모퉁이에 작은 구멍들이 나 있다. 별도로 장식물을 달았던 흔적이다. 풍부한 조각에 장식물까지 달았다면 자못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었을 것이다.
 초층 몸돌에도 굵직한 우주가 네 모서리마다 정연하고 사면에 사방불을 새겼다. 앙련과 복련의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사방불은 얼굴이 동글동글하고 미소까지 머금고 있어 친근한 인상을 준다. 둥근 광배를 두르고 있어 더욱 온화하게 보인다. 그래서 오래 부처님을 들여다본다. 탑을 조성한 장인도 부처님을 새겨놓고 나처럼 오래오래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손이라도 잡아 줄 것 같아 은근히 기다려본다.
 2층 탑신과 삼층 탑신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지붕 돌의 아래 면은 매층 3단의 받침이 있고 윗면은 1단의 탑신 받침이 있다. 통일신라 말의 형식이다.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이 탑에 상륜부까지 갖추어 있었을 때의 화려함을 잠시 상상해 본다. 중흥사 일주문으로 많은 승병들이 드나들던 때도 생각해 본다.
 탑이 선 북쪽 언덕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봄이 섬진강을 한바퀴 휘 돌고 이 산성까지 오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매화 꽃잎이 봉긋하다. 곧 팝콘 터지듯이 활짝 필 것이다. 동백도 그저 수줍은 듯 붉은 입술을 물고 있다.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기 마련이다. 중흥산성 탑이 그러하다. 처음 왔건만 이제껏 자주 만난 벗처럼 푸근하다. 탑은 그 만이 지닌 아름다움으로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불끈 주먹을 쥔 인왕상에 가만히 손을 대 본다. 벙글어진 연꽃 대좌 위에 앉아 계신 부처님께 말도 붙여본다. 거친돌이 아니라 숨쉬는 혼이 깃들어 있다.
 보물 제 112호인 중흥산성 삼층석탑을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을 안고 절을 나온다. 높이 3.8m의 아담한 탑은 내 발길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내려오면서 보니 계곡을 끼고 울창한 숲이 더 없이 넉넉하다. 그래서 사방불은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도 미소를 머금을 수 있었나 보다.

#주변 볼거리
광양시는 볼거리가 많은 동네다. 3월의 대표적인 볼거리 인 섬진강 다압마을의 매화 축제를 보고 문화재를 찾아보는 것도 좋다.
 중흥산성에서 가까운 옥룡면 추산리에 옥룡사터가 있다. 통일신라 말, 뛰어난 고승인 도선 국사가 35년 간 머물면서 수백 명의 제자를 길러낸 곳이다. 또한 이곳에서 입적을 하였다. 아쉽게도 그 때의 문화재는 남아있지 않으나 도선 국사가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하여 심었다는 것으로 전해오는 동백나무 7천 여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장관이다. 사적 제 407호로 지정된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김 시식지인 광양시 태인도는 특별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섬진강과 광양만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지리적 특성으로 각종 수산물이 양식의 최 적지이다. 이러한 여건으로 1640년경 김여익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로 김 양식이 시작됐다. 광양 김은 왕실에 바치는 특산물로 인기가 높았다. 태인동 궁기 마을에는 김여익의 묘역과 사당이 있다. 김 시식지 전시관과 김 시식지 유래 비도 있다.

#찾아 가는 길
남해 고속도로를 이용한다. 남해 고속도로 광양 IC로 나와 광양읍 방향으로 1㎞ 정도 가면 네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4㎞ 가면 옥룡면 사무소가 나온다. 옥룡초등학교를 왼쪽으로 돌아 봉강 방향으로 가다 보면 중흥산성으로 오르는 산길이 나 있다.
 중흥산성에서 나와 옥룡면 사무소 쪽으로 다시 나와서 추산리 방향으로 가면 옥룡사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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