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밤에 감은사지로 갔다. 달은 뜨지 않았고 별만 총총했다. 어둠 속에 서 있는 두 기의 탑은 엄청나게 큰 실루엣을 만들어 내고 있어 무서웠다. 으슬으슬 한기가 옷 속으로 파고드는데 진한 어둠은 냉기를 더해 추위에 떨었다. 대금을 부는 장선생은 오싹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탑 가까이 다가가는데 나 또한 낮에는 느끼지 못했던 기운이 밟고 선 절터에서 스멀스멀 올라와 휘감았다. 우리는 몸을 한껏 움츠리고 탑을 돌았다.

 호국의 혼이 서린 곳이기에, 만파식적의 전설을 간직한 절터이기에 생명력과 함께 땅의 기운이 전해지는 것이라며 나직이 주고받으며 절터를 내려왔다. 탑 앞에서 대금을 연주하려던 계획은 포기하고 말았다. 장선생은 무서워했고 나 또한 귀기가 느껴져 얼른 내려오고 싶었다. 우리는 주차장에 자리를 펴고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켜 어둠을 물리고 대금 연주를 했다. 탑의 윗 부분이 어른어른 보이고 쭉 뻗은 쇠찰주 끝에 수많은 별이 걸려 빛나는 밤이었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온 동네 개가 짖어대더니 대금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일시에 멈추었다. 동물이 사람보다 소리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막 떠오르는 달빛과 대금소리에 무서움은 조금씩 달아나고 우리를 평온하게 했다. 장선생이 부는 젓대 소리는 대종천을 타고 동해바다로 흘러갔다. 청아하고 구성지며 우아한 소리를 들으며 조금은 겁먹은 마음으로 다시 탑을 보러 올라갔다. 달빛에 탑은 더욱 장대하고 절제미가 돋보여 가슴이 꽉 막히는 감동을 주었다. 지난해 가을밤이었다.

 가을의 한낮 탑을 보고 있다. 나란히 선 두 기의 탑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좋다. 두 탑은 동일한 양식과 크기를 보여준다. 멋있다. 힘이 넘친다. 이 세상을 구원해 줄 영웅이 나타난다면 바로 저런 기백이 아닐까 하고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밝은 햇살을 받으며 두 탑을 마주 한다. 밤에 느끼던 으슬으슬한 기운은 전혀 없다. 통일신라 초기의 힘이 느껴진다.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굳은 의지를 가진 문무왕이 이 어지러운 세상에 새삼 그립다.

 오후의 햇살을 받아 비스듬히 사선으로 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탑은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을 배경으로 편안하다. 서탑의 초층 기단에 앉아 가지고 간 차 한잔을 마신다. 2층 기단의 면석에 편하게 등을 기대어도 본다. 따뜻해진 돌은 아주 푸근하다. 1960년 서탑의 해체 수리 시 3층 탑신에서 사리 장엄이 발견되었다. 1997년 동탑의 해체 수리 시에도 화려한 금동제 사리장치가 나왔다.

 수십 개의 부재를 조립하여 만든 탑이기에 그 돌과 돌 사이로 온갖 풀들이 자란다. 질경이, 민들레, 며느리밥풀, 이질풀도 뻗어 나간다. 생명이란 이렇듯 저 자신을 지키는 일에 사력을 다한다. 풀밭에는 여치도 뛰어다닌다. 감은사지는 그렇게 한 나절을 보내기에 딱 좋다.

 신라석탑의 양식적 근원을 보여주며 한국 석탑의 규범이 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그래서 언제 봐도 기백이 넘친다. 그 힘을 느끼려고 탑의 당당함을 부러워하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일년 내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폐사지는 쓸쓸하지 않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절터로 들어선다. 갑자기 온 절터가 싱싱함으로 넘쳐난다. 그들은 일제히 목을 쭉쭉 빼고 높이 13.4m의 탑을 올려다본다. 키가 작은 교수님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신라 탑은 이렇게 감은사탑을 효시로 이중 기단이고 백제계 탑은 기단이 없다. 그 대표적인 탑이 정림사지 오층탑이다. 너그들, 부여의 정림사지 가 봤나?"

 묵묵부답이다.

 "아이고 답답해라. 여름에 비키니 입고 바닷가에서 폼만 잡지말고 문화유산 좀 찾아 가봐라. 이래 갖고 무슨 공부하는 학생이고"

 뒤에 선 학생들은 쿡쿡 웃는다. 그래도 목은 한결같이 탑을 우러러보고 있다.

 "이 탑이 신라 탑 중 가장 크다. 아주 장엄하지. 탑이 이래 큰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탑은 꼭 껴안아 주고 싶도록 예쁜 탑도 있다. 너그들 그런 탑 본 적 있나? 허 참 본 적이 있어야 내 말이 통하지. 공부 좀 해라"

 신라 통일의 위업을 나타내는 탑 앞에서 목을 뺀 젊은이들을 보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기분이 확 좋아진다. 교수님의 강의는 계속된다.

 "탑을 보러 와서 휙 돌아보고 그냥 가는데 무얼 알고 느낄 수 있겠노. 적어도 20분은 쳐다봐야 해. 그래야 탑이 말을 거는 기라"

 국보 제 112호인 감은사지 탑 앞에서는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어 막막했는데 그렇게 명쾌한 결론을 내려준 교수님이 고맙다.

 탑을 바라보기 위해 동네로 오르는 언덕길에 가서 서 본다. 내가 탑을 보는 기준은 항상 산과 일체감을 이룰 때다. 감은사지 탑도 그 언덕에서 바라보면 삼층 지붕 돌이 멀리 보이는 산의 부드러운 능선과 함께 곡선을 이룬다. 그땐 물결치듯 부드러워진다. 거대한 감은사지 탑도 그렇게 보면 훨씬 다정해 진다. 한 20분 그렇게 서 있어봐야 한다. 늠름한 그가 말을 걸어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주변 볼거리

토함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대종천을 이루고 그 물줄기가 동해로 흘러드는 감포 앞바다. 경주시 양남면 봉길리 해안에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다. 일명 대왕암으로 불리는 이 능은 육지에서 약 200m 떨어진 바위섬이다. 내부에 동서남북으로 십자수로가 있고 바위섬 가운데 조그만 수중못을 이루고 있으며 그 곳에 거북모양의 화강암석이 놓여있다.

 ‘죽어 동해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뼈를 뿌린 곳으로 숭고한 호국정신이 깃든 곳이다.

 이견대는 감포읍 대본리 해안가 언덕위의 누각이다. 문무왕이 용으로 변한 모습을 보았다는 곳으로 신문왕의 전설의 피리인 만파식적을 얻은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서면 아래로 문무대왕 수중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견대라는 이름은 주역의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臺人)이라는 말에서 따 왔다는데 신문왕이 바다에서 나온 용을 보고 크게 이득을 얻었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견대에서 내려와 동해구 표지석 아래로 내려가면 우현 고유섭 선생의 반일 의지를 기리기 위해 1985년 제자들이 세운 기념비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가 있다. 놓치면 안 되는 볼거리이다.

#찾아가는 길

울산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정자해변으로 나간다. 그리고 양남 방면으로 가서 월성 원자력발전소를 지나면 봉길리 대본 해수욕장이 나온다. 해수욕장 앞 바다에 문무대왕 수중릉이 있다. 다리를 건너 대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돌아 200m 쯤 가면 감은사터다. 멀리서도 감은사터 삼층탑이 우뚝하게 보인다. 대본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100m 가면 이견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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