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절터에 섰을 때 당황했다. 이해하기 힘든 역사의 현주소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첩첩산중 골짜기에 수많은 석조유물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어 잠시 낯선 세계에 와 있는 듯 하였다.
 구불구불 산길을 넘었고 내촌천 물길을 따라 좁은 길을 더듬어 돌았다. 그리고 고요한 마을길을 지나 만난 이 절터의 유물들은 경외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곳에는 보물 제 545호인 삼층석탑 한기와 보물 541호와 제542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과 석조비로자나불 좌상이, 보물 543호와 544호로 지정된 석불대좌와 광배가 남아 있어 9세기 석조 미술의 화려함을 한껏 과시하고 있었다. 통일신라의 전성기에 저 멀리 북쪽의 산골마을까지 불교 미술이 활짝 꽃을 피운 것이다.
 폐사지에서 불상이나 탑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부처의 대좌로 보이는 팔각의 석조물에 새겨진 사자상이었다. 빼어난 걸작임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사자상의 생생함은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 하였다.
 불교에서 사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림이 없는 강인함의 표시다. 두려움이 없고 일체를 굴복시킨다는 사자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물걸리 절의 그 화려한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통일신라시대, 서라벌에서 한참 떨어진 이 산골에 탑을 세우고 대형 불상을 조성하였다면 가람의 규모는 대단했을 것이다. 큰 불사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재정과 그만한 세력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물걸리는 서울로 가는 길목이었고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수로가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하던 때는 물물교환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었다. 그러고 보면 신라석탑의 양식이 영동지방을 지나 영서지방까지 확산되는 매개 역할을 한 중요한 탑이 바로 물걸리사지 삼층석탑이다.
 물걸리뿐만이 아니라 홍천에는 많은 문화재가 남아 그 땅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홍천강변의 희망리에 당간지주가 있고 읍사무소 마당에는 희망리 삼층석탑과 괘석리에서 옮겨온 사사자석탑이 있다. 그리고 곳곳에 산재한 유물이 홍천이 역사의 고장임을 말해준다.
 홍천은 예부터 물산이 풍부하고 상업이 발달한 고장이다. 남한강의 지류인 홍천강으로 한양의 마포나루에서 소금과 새우젓을 싣고 강을 따라 거슬러 내륙 깊숙이 들어와 물건을 부린 곳이다. 그리고 이 지방에서 나는 곡식이나 나무를 실어 내갔다.
 특히 물걸리는 동학군이 장렬한 최후를 맞은 곳이요, 3·1운동이 격렬했다. 이런 여러 사실을 알고서야 물걸리 절터의 삼층석탑에 대한 객관적인 눈을 가질 수 있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 만나는 물걸리절터의 삼층석탑 앞에 서니 새삼 검푸른 이끼가 천년의 무게로 다가왔다. 석탑이 있음으로 해서 이 고장은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피 흘리는 아픔도 겪게 된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21세기의 잣대로 9세기의 불교 유물을 보려고 한 나야말로 문화 읽기에 대한 청맹과니다.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열어 나가야 하나 항상 내 문화 읽기는 혜안이 없어 나중에야 어렴풋이 깨닫고 만다.
 물걸리사지 삼층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삼층 탑신을 올린 신라의 일반적 형태다. 몸돌 모서리에는 우주가 얇게 표현되었다. 지붕돌의 층급이 1층과 2층은 5단이나 3층의 층급이 4단으로 줄어든 것이나 기단의 탱주가 한 개로 줄어 든 점은 9세기 후반기의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지붕돌의 낙수면은 완만하나 모서리 선이 뚜렷하다.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에 이르러 강한 반전을 보이고 있다. 상륜부는 없어지고 노반만 남아있다. 비에 젖어 물을 머금은 탑은 푸릇한 이끼가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 세월의 흔적이 뚜렷하다.
 탑의 맞은편에는 농가가 한 채 있지만 인기척이 없다. 개 두 마리가 큰 소리로 짖어대더니 이내 멈춘다. 비나리는 날 찾아온 낯선 방문객에게 대한 인사였나 보다. 그 녀석들도 이 탑과 오래 살아서 그런지 성불한 것 같이 순한 모습이다.
 삼층석탑 너머로 낮은 산이 죽 펼쳐진다. 비 때문 엷은 안개가 끼어 폐사지의 쓸쓸함을 더해 주는데 발길을 돌리려니 괜히 마음이 서글프다.
 불법을 수호하는 사자상이 웅크리고 포효하고 있으니 이 이후에도 오래 흔들림 없이 탑도 부처도 세월의 무게를 쌓아갈 것이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를 헤치고 다시 초록으로 빛나는 내촌천 물길을 따라 골짜기를 벗어났다.

#주변 볼거리
수타사가 있는 수타계곡은 홍천이 자랑하는 비경이다. 물걸리사지에서 멀지 않다. 공작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의 명당자리다. 수타사는 건물들이 예스럽고 단정하며 절 마당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있어 사찰의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대적광전 지붕의 숫막새위에 백자 연봉이 설치되어 특이한 모습을 보여 준다. 특히 수타사의 사천왕상은 다른 사찰과는 달리 특별한 배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 모습도 화려하여 눈길을 끈다.
 횡성은 홍천과 이웃한 고장으로 볼거리가 많고 먹거리가 풍부한 고장이다. 역사적 유물도 곳곳에 있다. 가족 나들이라면 횡성의 공근면 상창봉리에 있는 우리별 천문대를 권하고 싶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은하수와 쏟아질듯많은 별을 볼 수 있다. 가족 단위를 중심으로 다양한 별자리 강의도 한다. 대형 천체망원경을 이용한 별자리 공부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부추긴다. 가족용 통나무 방갈로와 식당이 있어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찾아가는 길
대구 금호 JC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안동, 영주, 원주를 지나 홍천 IC로 들어간다. 홍천읍에서 44번 국도를 따라 인제 방향으로 가다가 칠정초등학교 네거리에서 오른쪽으로 451번 지방도로를 따라간다. 이 길을 따라 16가면 내촌면 사무소를 지나 외야교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4 정도가면 대승사 표지판과 함께 물걸리 동창마을로 가는 도로가 있다. 마을길을 따라 조금가면 3·1만세 기념동산이 있고 절터는 동상 뒤 마을 안쪽에 있다.
 수타사는 홍천 읍내로 다시 나와 444번 지방도로 횡성, 서석방면으로 7.5㎞로 가면 동면 면 소재지인 속초리에 닿고 속초초등학교 앞으로 수타사가는 마을길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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