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탑 역사에 획을 그은 원원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귀중한 문화재다. 그러나 실상은 버려진 듯한 인상을 주곤 한다. 국보로 지정되어야 마땅한데 아직 그대로이다.
 전형적인 통일신라 양식의 삼층석탑이다. 상, 하층 기단에 각각 2개의 탱주와 우주가 있다. 일층 탑신에 비해 2, 3층이 낮아져 안정감을 주는 것도 그 시대 석탑의 특징이다. 5단의 옥개 받침과 2층의 탑신 받침이 8세기 탑 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원원사지 삼층석탑은 이런 전형 양식에 장엄이 가해지는 최초의 탑이다.
 토함산 남쪽으로 이어지는 봉서산 기슭,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에 자리한 원원사는 삼국유사에 자주 등장하는 절이다. 김유신, 김의원, 김술종이 신인종의 개조 명랑법사 후계자인 안혜, 낭융, 과 뜻을 모아 호국의 염원으로 7말에 세운 사찰이다. 울산만을 이용해 침입해 오는 왜군을 막고자 불력을 기울여 원원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높은 곳에 위치한 이 산지 가람에 발을 디디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한편으론 관리가 소홀한 듯 하여 옛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탑을 보러 가면 주변 환경에 끌려 종일 머물기도 한다. 봄날에 가면 좋은 곳이 있고 가을에 찾아가야 한껏 멋스러움을 들어내기도 한다. 허허 벌판에 남겨진 탑은 눈 내린 날이 제 격이고 산 속에 있는 탑은 녹음방초 무성한 여름이 좋다. 쓸쓸함이 묘미인 탑은 해질 녘에 봐야하고 장식이 풍부한 탑은 해 뜰 때가 좋다.
 탑은 주변 환경에 따라 각기 풍기는 멋이 다르다. 웅장함, 비장미, 절제된 아름다움, 세련미에 부드러움까지 갖추기도 한다. 그래서 탑 기행은 설레는 여행이 된다.
 원원사터를 찾아가면 습한 기운이 돈다. 쾌청한 날에도 그렇고 햇볕 좋은 가을날도 마찬가지다. 여름과 겨울도 침침하기는 마찬가지다. 절터를 가득 메운 키 큰 소나무들이 만드는 그늘 탓도 있지만 금당지 주변도 늘 퀴퀴한 냄새가 난다. 탑을 둘러싼 소나무는 탑을 감상하는데 방해가 된다. 그래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긴 계단을 밟아 내려오고 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애틋함으로 다시 탑을 찾아가곤 한다. 원원사 탑의 매력은 주변 환경이 아니라 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상층기단의 십이지상 조각이나 일층 몸돌의 사천왕상 조각이야말로 이 탑이 지닌 가치를 말해 준다. 이런 훌륭한 장식이 나타나는 삼층석탑으로는 원원사지 쌍탑이 가장 선구적이다. 그 조각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다.
 상층 기단에는 각 면마다 3구씩 새긴 십이지신상이 있다. 얼굴은 동물이지만 몸은 사람의 형상이다. 연화좌 위에 천의 자락을 휘날리며 앉아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그 자세가 고요하다. 깊은 산 속이라 선경에 든 듯 하다. 고유섭 선생은 그 모습을 성덕대왕 신종의 비천상에 비유하여 높이 평가했다. 이런 십이지신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 원원사 쌍탑이 최초이고 이후로 다른 탑에서 더러 나타나기도 한다.
 일층 몸돌은 우주를 새기고 장방형의 구획을 설정하여 사면에 사천왕상을 부조하였다. 그 도드라진 새김은 거의 환조에 가까워 양감이 풍부하다. 건장한 사천왕상은 불법을 수호하려는 듯 긴장감도 넘친다. 두 탑의 조각 수법은 거의 동일하다. 모두 일층 탑신의 남쪽 면은 조각이 깨어져 알아 볼 수 없지만 동, 서, 북쪽 면은 완전하게 남아 있다. 그 조각품을 하나하나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서탑의 북방에 있는 다문천왕은 특이하다. 두 마리의 악귀를 밟고 오른손에 보주를, 왼 손에는 보탑을 받쳐들고 있다.
 동탑의 지국천왕은 조각수법이 정교하다. 악귀를 밟고 오른손에 칼을 잡고 서 있는데 그 긴장된 모습은 활력이 넘친다. 불법을 수호하려는 의지가 역력하다. 한 참을 들여다 보다 물러서 있으면 사천왕상들은 풀밭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와 손이라도 잡을 것 같다. 탑에서 금방 튀어나올 것 같아 마음의 준비를 한다.
 높이 쌓은 축대 위의 절터에 서 있는 두 탑은 계단을 하나씩 밟아 올라가다 계단이 끝날 즈음 바라볼 때가 좋다. 다문천왕은 걸어 나와 악수를 청하고 천의 자락을 날리는 십이지신상들은 일제히 하늘을 날아 오를 듯 하다. 둥글게 굴린 갑석의 모서리에 소나무 사이로 내리는 햇살이 그득 모인다. 깨어져 나간 조각도 떨어져 나간 지붕도 천 이백 여년의 세월을 버텨온 인고의 아름다움이다.
 높이 7m의 쌍탑을 보고 언덕을 내려 올 때면 뒷덜미가 간지럽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끌리듯 다시 찾아간다. 소나무 사이, 수직으로 내리는 햇살의 매력을 알기 때문이다. 그 햇살이 머무는 지붕돌의 부드러운 선을 보고 싶기에 나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신발 끈을 조이며 나선다.
 머지않아 국보로 지정되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날을 기대하며 원원사터 삼층석탑을 만나러 간다.

#주변 볼거리
원원사터와 가까운 거리에 숭복사터가 있다. 이 절터는 신라 진성여왕 때에 최치원이 찬 한 사산비명중 하나인 "유당신라국호월산대숭복사비"명이 있었던 곳이다. 이 절터에도 삼층석탑이 남아있다.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쌍탑식 가람배치로 금당 앞에 동. 서로 배치되어 있다. 금당과 석탑의 배치는 불국사와 아주 비슷한 형식이며 건립 연대도 큰 차이가 없다. 동. 서 삼층석탑은 양식과 크기가 같은 양식으로 이중 기단을 갖춘 석탑이다. 안타깝게도 탑재가 많이 없어져 완전한 복원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감나무 밭에 둘러싸여 안온해 보인다.
 깨어진 비편들은 동국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귀부는 국립경주박물관 입구 정원에 전시되어 있다.
 숭복사터에서 나와 괘릉 쪽으로 가면 신계리 마을에 이른다. 이 괘릉이 있는 골짜기를 따라가면 넓은 대지가 펼쳐진다. 통일신라 성덕왕 18년(719년) 김지성이 부모의 명복과 국왕 및 그 가족의 안녕을 빌기 위해 세운 감산사가 있다. 지금은 주불로 모셔진 석조비로자나불상이 있는 조그만 절이다. 융성했던 절터는 대부분이 전답으로 변하고 1965년 복원된 삼층석탑이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감산사는 우리나라 불상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화강암으로 조성된 완전하고 아름다운 석불입상 2구가 발견되었다. 국보 제 81호와 제 82호로 지정된 석조아미타불 입상과 석조 미륵보살상이다. 이 불상들은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 불상실에 전시되어 있으며 한국 조각양식 사상 가장 중요한 불상이다.

#찾아가는 길
울산에서 7번 국도를 따라 경주 방향으로 간다. 관문성을 지나면 외동읍이다. SK주유소를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면 모화 불고기 단지가 나온다. 우회전하여 불고기 단지 앞 내를 따라 가면 1.6 가면 골짜기 끝에 사적 제 46호로 지정된 원원사터가 있다. 원원사터에서 다시 국도로 나와 불국사 쪽으로 가면 대동교가 나온다. 이 다리를 지나면 오른쪽에 말방리 표지판과 함께 숭복사터 표지판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돌아 1 들어가면 감나무 과수원이 있다. 과수원 안쪽에 삼층 쌍탑이 보인다.
감산사는 국도로 나와 괘릉으로 들어간다. 괘릉을 지나 골짜기로 들어가면 감산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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