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위엄은 백수의 왕인 사자에 비유되곤 한다. 사자가 포효하면 온갖 짐승들이 놀라 도망치듯 부처님이 삼매에 들어가면 온갖 악한 것들이 복종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설법을 사자후(獅子吼)라 하고 부처님이 앉는 자리를 사자좌라고 한다. 두려움 없는 부처의 엄정함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계곡에 위치한 사자빈신사터의 사사자석탑이다.
 사자빈신이란 이름에서 말해주듯 사자가 포효하듯 기세 등등하게 일어나라는 절집은 사라지고 폐사지에 사사자석탑 한 기만 남아 있다. 깊은 계곡의 봄은 더디게 온다. 네 마리의 사자가 지키고 있는 절터는 봄 햇빛의 일렁임에도 쓸쓸하다.
 인도여행을 할 때마다 꼭 들르는 곳이 사르나트 박물관이다. 작은 규모에 비해 뛰어난 불교 소장품이 많은데 이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아쇼카 석주의 상부에 안치되었던 사자상이 있다. 3세기, 마우리아왕조가 남긴 최고의 걸작품으로 인도의 국장으로도 쓰인다. 아쇼카왕은 부처님의 뜻을 기리고 불법을 널리 펴기 위하여 불적지를 다니며 석주를 세웠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길에 아쇼카 석주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사자빈신사터의 사자 또한 부처님의 불법을 전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사찰에 사자상이 많이 등장하는 것 또한 그런 이유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사사자석탑이 최초의 예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구례 화엄사의 사사자석탑이다. 사자빈신사터의 석탑 또한 화엄사 사사자석탑을 본받은 것이지만 곳곳에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사자석탑이란 기단부 상층에 네 마리의 사자가 탑신을 떠받치고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화엄사의 네 마리의 사자가 지축을 울릴 듯 그 기세가 당당한데 반해 사자빈신사터의 사자는 그저 순한 아기 사자의 모습이다. 짧은 다리에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몸집하며 약간 벌리기만 한 입은 사자상의 조각이 약식화 되었다.
 하층기단의 방형 하대석에는 각 면에 3구의 안상이 배치되었다. 안상안에는 솟아오르는 꽃봉오리 모양을 조각하여 고려시대 안상문의 특징을 나타내었다. 중대석은 한 개의 돌로 이루어져 있고 정면에 79자의 명문이 새겨져있다. 그에 따르면 고려 현종 13년 (1022년)에 월악산 사자빈신사에 구층석탑을 세운다고 되어있다.
 이 기록에 의해 사사자석탑은 그 시대상을 말해주는 중요한 탑이며 정확한 건립연대로 인하여 비슷한 형태의 홍천 괘석리 사사자석탑이나 다른 탑의 건립연대를 추정 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상층 기단의 우주에 해당하는 네 귀에 네 마리의 사자를 앉혀 갑석을 받치고 그 한가운데 두건을 쓴 비로자나불 좌상을 두었다. 두건의 뒷부분을 나비매듭으로 동여맨 비로자나불은 인자한 모습에 볼이 터질듯하다.
 이 탑의 묘미는 사자가 아니라 비로자나불 머리 위에 핀 한 송이 연꽃이다. 즉 갑석 아랫부분에 연꽃을 새겼다. 도톰한 꽃잎은 만개하였고 꽃술은 선명하여 아름다움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고려의 석공은 해학이 넘쳤다. 백수의 왕인 사자를 귀엽게 표현하는 대신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연꽃 한 송이를 피워내는 장인 정신을 발휘하여 극락정토에 이르는 종교적 열망을 나타내어 보였다. 이 탑의 매력은 몸을 낮추어 깨달음을 얻게 한다. 사자빈신사탑을 자주 찾는 이유는 탐스럽게 활짝 핀 연꽃 때문이다.
 구층이던 탑은 오층 몸돌 까지만 남아있다. 1층 몸돌은 유난히 높고 2층부터는 급격히 줄어들어 균형을 잃고 있다. 지붕 돌의 층급 받침은 모두 3단이며 낙수면은 아주 완만하다. 지붕돌 모서리가 크게 반전되어 자칫 가벼운 느낌이 드나 그런 경쾌함이 없다면 절터는 더욱 허전한 느낌이 들것이다.
 갑석 위에는 큼직한 굄대를 놓아 탑신부를 받치고 있는데 복련을 새긴 연화대로 이 또한 고려시대 탑의 특징을 보여준다. 사자빈신사터의 사사자석탑형식과 같은 탑이 강원도 홍천에 있는 괘석리 사사자석탑이다. 상층 기단부에 네 마리의 사자를 배치한 점이나 갑석 아랫면에 연화문을 새긴 것은 거의 동일하다. 지대석의 안상무늬에 꽃봉오리를 새기고 연화문 굄대를 놓는 등 그 수법 또한 같다.  괘석리 사사자탑의 사자는 아무리 봐도 재미있다. 비쩍 마른 다리와 그 표정이 원숭이를 닮았다. 앞가슴에 방울까지 달고 있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보물 제540호, 높이 3.5m의 아담한 이 탑은 홍천읍사무소 마당에 있다.
 사자빈사터 사사자석탑을 찾아갈 땐 송계계곡의 유명세를 피해야 한다. 그래서 화창한 봄꽃이 피기 전에 한적한 길을 달려간다. 계곡에는 버들강아지가 한껏 물이 오르고 탑 아래 두 그루의 매화나무가 꽃봉오리를 물고 곧 ‘봄’하고 터질듯하다. 네 마리의 사자는 따스한 햇살에 한가롭다.

◆주변 볼거리
월악산은 우리나라에서도 풍광이 빼어난 곳으로 일년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고대로부터 있어온 길을 따라 펼쳐진 유적지가 많은 곳이다. 계립령 길섶의 미륵리 절터는 중원 문화의 핵심이다. 절터에 남아있는 석조물들은 웅장하여 넘치는 힘을 과시한다.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다 석굴을 짓고 북쪽을 향해 미륵불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월악산의 송계계곡을 따라 덕주산성과 덕주사가 있다. 마의태자의 동생인 덕주공주는 송계계곡에 덕주사를 세우고 남향한 암벽에 마애불을 새겼다고 전한다. 덕주사는 사자빈신사터 입구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덕주골이 나오는데 그 골짝을 따라 펼쳐져 있다.
 덕주사에는 전체높이가 15m이 이르는 거대한 마애불이 있다. 덕주골에서는 덕주산성도 만날 수 있다. 송계계곡의 물줄기는 충주호로 흘러 들어간다. 물의 고장 충주로 가면 중원문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 찾아가는 길
울산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방향으로 간다. 구미를 지나 김천의 초입에 들어서면 새로 생긴 45번 고속도로인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상주, 점촌을 지나 수안보 IC로 나간다. 597번 지방도로를 따라 수안보온천까지 간다.
 수안보온천에서 계속 597번 지방도로를 따라 월악산 국립공원에 있는 미륵사지를 지나 송계계곡으로 내려가다가 덕주사 입구 못미쳐 와룡교에서 왼쪽으로 약 500m정도 가면 사자빈신사지탑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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