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은 이름 그대로 물 좋은 고장이다. 이름만 들어도 맛이 확 도는 감천 샘물이 있고 내성천이 만들어 낸 물돌이 마을 회룡포가 때묻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정자 초간정을 돌아 흐르는 물소리는 청량하다. 그래서 예천의 곳곳에 산재한 탑들은 물처럼 순하며 다소곳하다.
 예천 땅의 탑들은 장엄하지 않다. 지나치게 높지 않다. 화려하거나 특별하지도 않다. 보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정겨움으로 이웃이 되고 자비의 표상이 된다.
 탑은 깊숙한 골짜기 절 마당에 단정한 자태로 서 있다. 동네 어귀에, 논 가운데 우뚝 하고 강 둑 아래서 푸근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작은 키의 아담한 탑들은 비례가 정연하여 균형감이 있다. 제 본연의 자세에 충실하여 유구한 세월을 이어온 초연함이 서려있다.
 예천은 신라 때부터 내려오는 고찰이 많고 곳곳에 절터가 있어 불교 유적도 다양하다. 고려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세를 넓혀온 용문사를 비롯하여 청룡사, 한천사, 명봉사, 장안사, 보문사는 불교가 융성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신라와 고려시대 석탑 5기가 온전하게 남아 있다. 예천에서의 탑 순례는 세월을 거슬러 오르는 특별한 시간이 된다.
 예천읍 남본동 들판 가운데 자리한 개심사지 오층석탑은 이 고장을 대표하는 불교 문화재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탑으로 높이 4.3m 의 아담한 키로 보물 제 53호이다. 이중 기단을 갖춘 평면 방형의 석탑은 신라탑 양식을 충실히 따른 고려 초기의 탑이다.
 고려석탑은 신라의 전형적인 형식을 탈피하여 다양함을 추구하며 조성되었다. 예천은 경주와 가깝다. 개심사지 오층석탑은 신라 탑을 계승하면서 세부적인 곳에 변화를 주고 있다. 이 탑에서는 복련이 조각된 굄돌을 일층 탑신 아래에 둠으로써 고려 탑의 특징을 보여준다.
 개심사지 오층석탑에는 140여자의 명문이 있어 건립연대와 조성취지를 알 수 있다. 탑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이에 따르면 현종1년 (1010년)에 시작하여 다음해인 1011년 사월 초파일에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상층기단과 갑석에 빙 둘러 새겨진 명문은 선명하다. 마모되지 않은 것은 글씨만이 아니다. 기단과 일층 몸돌에 새겨진 조각들도 온전하다. 바람 부는 들판을 지키며 천년을 버티고 서 있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조각은 깨끗하고 글씨도 알아볼 수 있게 뚜렷하다.
 2월의 바람은 차고 매섭다. 탑 앞에 가만히 서 있으면 귀가 아려오고 볼이 탱탱하게 긴장된다. 손끝이 시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도 어려운데 어찌하여 탑은 묵묵히 천년을 버틸 수 있는지 경이롭다. 화강암의 강인함을 우리 조상들은 불심으로 승화시켜 탑을 쌓았다.
 얕은 돋을 새김을 한 조각들은 양감이 없어 언뜻 가벼워 보인다. 하지만 정연한 비례와 알맞은 상승감이 조화를 이루어 들판 가운데 홀로 아름답다.
 하층기단은 탱주와 우주를 생략하고 한 면에 큼지막한 안상이 3개씩 있고 그 안에 십이지신상을 하나씩 새겼다. 상층기단은 양 우주가 있고 면석의 가운데를 탱주로 분활 하여 팔부중상을 새겼다.
 팔부중상은 무관 복장에 무기를 들고 서 있는데 반해 십이지신상은 문관 복장을 하고 앉아있어 대비되는 조각 수법이 이채롭다. 일층 몸돌 남면은 자물쇠를 꼭 채운 문비형과 그 좌우에 인왕상을 두었다. 인왕상의 모습은 귀엽기만 하다.
 지붕 돌은 처마가 짧고 두툼하다. 그러나 반전이 경쾌하여 둔중함을 없애준다. 지붕 돌의 층급 받침은 모두 4단이며 층마다 풍탁을 달았던 흔적인 구멍이 크게 나 있다. 상륜부는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다.
 예천읍을 가로지르는 한천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개심사지 탑과 견줄만한 신라 탑이 있다. 동본동 삼층석탑이다. 둑 아래에 주택가에 있는 높이 4m의 삼층석탑은 보물 제4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탑은 옆에 나란히 있는 석조여래입상과 잘 어울린다. 9세기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탑은 기단부가 좁아 안정감이 없어 보이지만 부드럽다. 이 부드러움은 다른 탑에서는 보기 드물게 지붕 돌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체감률도 온화하다. 위층기단의 각 면에는 사천왕상이 1구씩 조각되어 있으나 마모가 심하다.
 그 옛날 이곳은 강을 굽어보며 삼층석탑과 잘 어울리는 절이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동네사람들의 버팀목이 되어 석불입상은 씩씩하고 탑은 한없이 다정하다.
 예천에는 신라와 고려시대에 조성된 탑이 잘 남아 있다.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탑들은 한천사 삼층석탑과 간방리 삼층석탑, 그리고 보문사 삼층석탑이다. 규모는 작지만 예천 사람들의 돌 다루는 솜씨가 뛰어남을 보여주는 수작들이다. 석공의 다정한 손길을 느낄 수 있어 안아주고 쓰다듬고 싶은 탑들이다.
 노루꼬리 만큼 길어진 2월의 해는 탑 기행을 하는데 일조를 했다. 쌀쌀한 바람은 절 마당을 휘휘 감아 지나고 강 마을도 휘 돌아간다. 바람은 찬데 봄이 두런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개심사지 오층석탑을 둘러싼 들판을 걸어본다. 발 밑에서 흙이 깨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배혜숙

◆ 주변 볼거리
예천의 자랑은 예천읍에서 북쪽으로 약 15㎞ 떨어진 용문면 내지리 소백산 용문사가 으뜸이다. 고려시대로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으며 번성한 절이다. 용문사는 문화재의 보고이다. 대장전은 조선중기에 지은 오래된 목조 건물이며 국내 유일의 윤장대와 목각탱이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불좌상이 있으며 각 시대를 느끼게 해 주는 탱화가 많다.
 용문사로 가는 초입인 용문면 죽림리에 있는 예천 권씨 종택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 그리고 ‘초간일기’를 보관하고 있으며 별당인 초간정을 거느리고 있다.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초간 권문해 선생이 건립한 초간정은 뛰어난 주변 경관을 자랑한다.
 용궁면 대운리 의성포(회룡포) 마을은 내성천이 350도를 휘돌아 흐르는 특이한 지형이다. 넓은 백사장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사람들의 발길이 그다지 닿지 않은 곳이다. 장안사 뒷산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회룡포 마을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찾아가는 길
울산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가다 금호JC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들어간다. 중앙고속도로 예천 IC를 나와 928번 지방도로를 따라 예천읍내로 들어가다 보면 영주에서 오는 28번 국도와 만난다. 28번 국도를 따라 오른쪽에 있는 예천읍 중심부를 지나 조금 가면 주유소앞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문경방향으로 가는 34번 국도이고 바로 오른쪽 들판에 개심사지 오층석탑이 보인다.
 동본리 삼층석탑은 삼거리에서 예천읍내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예천교를 건너게 된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사거리다. 오른쪽으로 돌아 둑길을 따라 500m 정도가면 둑 아래에 삼층석탑과 석불입상이 있다.
 예천읍에서 문경으로 가는 34번 국도를 따라가면 용궁면이 나오고 용궁 향교를 지나면 회룡포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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