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길이었다. 빗속을 달려 강원도로 향할 때부터 가슴은 두근거렸다. 거세게 내리던 비도 진전사터를 찾았을 때는 거짓말처럼 개었다. 부처님의 가피다.
 진전사지로 향하는 나를 아들은 부러워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여행을 같이 한 아들은 우리나라 국보를 거의 다 보았다. 그런데 진전사지 삼층석탑은 놓쳐버렸다. 몇 년 전 진전사터를 향할 때도 고3이라 제가 슬그머니 포기하더니 올해도 같이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 국보 책을 줄줄 외우고 다닌 탓에 진전사지 삼층석탑에 대한 것을 본 듯이 묘사한다. 그 녀석을 위해서라도 기품 넘치는 탑을 내 맘에 꼭 담아와야 할 것 같다.
 설악산 끝자락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골짜기에 자리한 탑을 보러가기 위해 봄부터 벼르다가 여름이 되어서야 찾았다.
 진전사는 도의선사가 헌강왕 13년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 창건한 절이다. 통일 신라 시대에 절대적 왕권의 비호를 받던 교종에 반기를 들고 새로이 등장한 선종이 꽃을 피운 터전이다.
 도의선사는 타고난 마음이 곧 부처라고 외치고 다녀 기존의 승려들에게 배척을 받고 진전사에 은신하였다. 그러나 선종은 통일신라 하대에 지방 호족들의 절대적인 호응으로 구산선문을 이루었다. 그 상징적 의미로도 진전사지 삼층석탑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곳에 이르렀을 때, 구름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골짜기 물은 우당탕탕 흘러내렸지만 하늘은 개었고 고추잠자리가 떼지어 날고 있었다.
 탑으로 오르는 짧은 길의 벚나무는 몇 해 전보다 훨씬 무성하고 넓은 돌계단은 더 정겹다. 그 길을 올라 만나는 아름다운 자태의 화강암 탑에 푹 안기고 말았다. 까무짭짭한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탑 앞에 있는 작고 예쁜 배례석에는 약수가 올려져 있다. 비 지난 뒤라 탑은 물기를 머금어 조각들은 선명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이중 기단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기본적 탑 형태지만 화려한 장엄을 한 것은 선종이 꽃을 피운 통일신라 말의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하층 기단의 연화좌 위에 앉은 비천상은 천의를 날리며 금방이라도 천상의 세계로 날아 갈 듯하다. 세속의 번뇌를 떠나 천상의 세계에 이르러는 길이 그곳에 있음을 말해준다.
 상층기단에는 양 우주를 새기고 중앙에 탱주로 양분하여 각 면에는 팔부신중 2구씩을 도드라지게 조각했다. 구름을 타고 앉은 모습에서 생생한 아름다움이 전해진다. 남쪽 면의 아수라상과 건달바는 더욱 선명하다.
 일층 몸돌의 각 면에는 여래좌상이 한 분씩을 조각되어 있다.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하고 앉은 부처님은 이중의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육계가 큼직하여 위엄이 넘친다. 서면의 아미타불은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살을 받아 그 표정이 한없이 자비롭다.
 낮은 산은 그림자가 짙고 탑도 긴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바람이 상쾌하다. 풀 냄새에 코를 킁킁거린다. 비 지난 뒤라 줄지어 선 아기 단풍의 잎이 유난히 반짝인다.
 높이 5m의 단정한 탑을 바라보는 저녁시간은 평화롭다. 고요한 절터에 앉아있으니 비천상을 닮아 하늘에 날아오를 것 같다. 네 귀가 약간 치켜 올라간 지붕 돌은 경쾌한 아름다움이 퍼져난다. 풍경이 달렸던 흔적도 보인다. 완숙하고 세련된 조각들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여간아니다. 진전사터 삼층석탑은 당대의 걸작임에 틀림없다. 방향을 바꾸어가며 걸작을 감상하는 재미에 빠져 일어서기가 싫다. 그윽이 내려다보는 부처님을 향한 마음도 점점 깊어진다. 도심에서의 피곤에 절은 마음을 탑 앞에서는 내려놓고 잠시 쉬고 싶다.
 통일신라시대 서울인 경주와 멀리 떨어진 동해안, 이곳의 사람들은 서울과 다른 그들만의 불심을 나타내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너무 세련되어 범접하기 어려운 정돈된 삼층석탑의 형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왕실의 근엄함이나 엄중함이 담긴 삼층석탑이 아니라 그들만의 힘이 실린 탑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종의 꽃을 피우고 좀 더 화려하고 부드러운 석탑을 만들어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하려고 애쓴 흔적이진전사지 삼층석탑에 그대로 나타나있다.
 국보 제122호인 진전사지의 검은빛을 뛴 화강암 삼층석탑은 멀리 있는 나를 자주 불러 줄 것 같다.
 진전사지에서 멀지 않은 양양군의 깊은 산중 미천골의 선림원지에도 삼층석탑 한기가 있다. 보물 제 444호로 지정된 선림원지 삼층석탑은 진전사탑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곳도 진전사와 함께 선종의 꽃을 피운 의미 있는 곳이다. 이중기단을 갖춘 전형적인 신라시대의 삼층석탑이다. 이 삼층석탑의 기단 아래에서 60여 개의 소탑과 1개의 동탁이 발견되었다.
 눈에 띄는 것은 상층기단에 새겨진 팔부중상 조각이다. 마모가 심하나 비 온 뒤라 물기 머금은 조각들은 제 모습을 잘 드러내 준다. 찾아오는 이 없는 쓸쓸한 곳이나 최근에 휴양림이 생겨 탑 앞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계곡의 물소리와 어우러져 그다지 심심하진 않을 것 같다.
 탑이 선 언덕위로 흥각선사 부도 비와 부도등 보물급 문화재가 있어 꼭 한번 은 들러볼 만하다.
 무슨 인연인지 그 깊은 산골로 여름이면 꼭 한번씩 들러 탑을 만나곤 한다. 실비 내리는 선림원터에서 우두커니 탑을 본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주변 볼거리
강원도 양양은 그야말로 볼거리가 풍성한 고장이다. 맑은 계곡이 곳곳에 자리하고 수많은 해수욕장이 있으며 무엇보다 설악산의 초입이다.
 진전사지와 가까운 곳에 자리한 낙산사는 동해바다를 끼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의 계시를 받고 지은 절이다. 일출이 장관인 의상대가 있으며 의상대사가 도를 통했다는 홍련암이 있다. 홍련암은 낙산사에 딸린 암자로 법당 마루 밑으로 출렁이는 바닷물을 볼 수 있게 절벽 위에 세워졌다.
 낙산사는 요즈음 많은 체험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소리체험, 참선체험, 묵언수행체험등 산사의 하루 체험은 해 볼만 한 프로그램이다.
 선림원지가 있는 미천골의 최 상류에는 불바라기 약수가 있다. 국내에서 가장 깊은 오지에 숨은 약수터이다. 약수의 철분 성분으로 샘 주위가 빨갛게 녹슬어 생긴 이름이 불바라기다. 하얀 폭포 옆에 빨간 불기둥처럼 약수가 나와 신비롭다. 미천골 자연휴양림의  수려한 풍광과 어우러져 심신을 편하게 해 준다. 휴양림 내에는 많은 숙박 시설이 있다.
#찾아가는 길
울산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동해안으로 올라가면 된다. 포항, 울진, 삼척, 강릉을 지나 양양군 강현면에 이른다. 여기에서 설악동 입구인 물치 삼거리가 나온다. 물치교를 건너기전 좌회전하면 구 속초공항 나오고 속초공항에서 10분쯤 가면 석교리 마을이 나온다. 마을길에서 3 가면 둔전면 진전사지에 이른다.
 진전사지에서 되돌아 나오면 반대편으로 낙산사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있다. 물치 삼거리에서 5.4 들어가면 된다.
 선림원지는 양양군 서면 황이리에 있다. 물치 삼거리로 나와 양양읍으로 온다. 양양읍에서 56번 국도를 따라 구룡령(홍천) 방면으로 23가면 미천골 자연 휴양림 입구가 보인다.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1가면 휴양림 매표소가 있고 매표소를 지나 조금 오르면 선림원지가 나온다. 휴양림에서 5 정도 들어가면 불바라기 약수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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