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표창장 같은 외형적인 상장보다
제자에 평생 간직할 가슴속 상 안겨줄
어른다운 스승, 교육감도 이런 분이길

▲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여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이 만든 ‘졸업식의 노래’ 첫 구절이다. 지금은 추억 속의 동요가 되었지만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모든 초등학교 졸업식은 이 동요를 부르면서 끝이 났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몇 번 부르지 않았지만 아직도 가락을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다. 노랫말이 주는 여운의 깊이도 그러하지만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졸업식 분위기도 노래 가락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형들이 관심을 갖는 일은 상장을 수여하는 행사였다. 도지사나 교육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아이들도 도지사상이나 교육감상이 가장 뛰어난 졸업생에게 수여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상에는 지난날의 학업 성적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룰 성과에 대한 기대도 함께 포함되어 있어서 수상자의 가족들에게는 가슴 설레는 영광이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도 이러한 평가와 기대는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최고의 상을 받은 친구가 뒷날 국가가 시행하는 최고 시험인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것을 보았다. 지금 거리에는 교육감 선거에 나온 후보들이 명함을 돌리고 피켓을 흔든다. 자기가 교육감에 가장 적합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들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들 중에 누가 어린 학생들에게 교육감상을 수여할만한 경륜과 품성을 가지고 있을까.

상을 받는 일은 어린 학생이나 다 큰 어른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가슴 뿌듯한 일이다. 어떤 상이라도 거기에는 남다른 노력에 대한 사회의 인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을 받을 만큼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평생을 두고 한두 번도 상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모든 이에게 돌아갈 만큼 상의 수를 늘일 수는 없는 일이다. 다행히 인간은 타인의 작은 인정이나 칭찬을 통해서도 큰 이름의 상에 못지않은 긍지와 자신감을 발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훈장이나 표창장과 같은 외형적인 징표뿐만 아니라 존경하는 사람의 진심어린 칭찬이나 격려에도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릴 적 선생님이 들려준 작은 칭찬을 평생 동안 간직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선생님의 칭찬이나 격려는 상장에 적힌 정형적인 글 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불러오는 살아있는 상이기 때문이다.

칭찬이나 격려가 필요한 것은 학교 안의 어린 학생뿐만 아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자기를 인정해주는 일터를 얻지 못해 방안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그 수를 헤아리기는 쉽지 않으나 4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보도를 보았다. 이런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은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관심과 격려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을 모두 견디어 낸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것만으로도 이 젊은이들에게도 상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월은 학생들이 더 나은 곳을 향하여 옛 둥지를 떠나는 시기이다. 더러는 학업을 지속하기도 하고, 더러는 직장을 찾아 학교를 떠날 것이다. 모두가 큰 상을 받을 수는 없지만 가슴 속에 등불처럼 간직할 상은 하나씩 안고 떠났으면 좋겠다. 귀감이 되는 어른이 드문 세상이라고 하지만 제자들이 간직할 상을 나누어 주는 선생님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가장 높은 자리의 선생님인 교육감도 이런 분이면 좋겠다.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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