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교감에 가치 부여하는 인간
노년엔 감정 나눌 기회 줄어들지만
대가들 작품 속에서 교감 찾을수도

▲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인간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민의 정을 느끼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한다. 그러한 고통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이 고통을 당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자신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들을 염려하고 걱정한다. 친구가 힘든 질병에 걸리면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건강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자신의 건강 상태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안도감을 느끼는 것도 이러한 때이다. 타인을 통해서 자신의 처지를 가늠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타인의 아픔이나 슬픔에 대한 이러한 공감 능력이 사회를 유지하는 힘이라고 사회학자들은 말한다. 사회를 지탱하는 윤리의식이나 정신적인 유대감도 이러한 공감능력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인간의 능력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이기심을 이렇게 표현했다. “동업자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지만, 경쟁자의 고통은 나의 즐거움이다.”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흄의 이러한 주장도 인간의 공감능력을 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다른 사람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행복이나 불행이 타인의 정서와 태도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가를 강조하는 진단이기도 하다. 타인의 눈을 통해서 인정되는 나의 행복이 진짜 행복이라는 말도 이와 비슷한 시각이다.

나이가 지긋한 성인을 대상으로 철학 강의를 하다보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피할 수 없다. 삶의 의미가 다르듯이 죽음의 의미도 지극히 개별적인 것이다. 그러나 타인과의 교감이나 공감은 삶뿐만 아니라 죽음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내일 세상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가장 안타까운 것이 무엇이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을 더 누리고 경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상실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은 타인과의 교감을 추구하고 가치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줄어드는 노년에 이르면 인간관계의 폭도 좁아지고 감정을 나눌 기회도 줄어든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적극적으로 실행하기 보다는 기회가 되면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영역으로 남겨 두는 것이 더 편안하다. 새로운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들끼리의 밋밋한 대화가 발길을 망설이게 하는 원인일 수도 있다. 또 타인과 교감하는 힘이 점점 떨어지는 것도 주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사람이나 사회에 대한 시선이 굳어지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화된다는 말이다.

사회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회나 인간에 대한 공감능력마저 줄어든다면 삶은 더욱 단조로워 질 것이다. 삶의 반경이 좁아지고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노년의 시기에 주어지는 행운도 있다.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운 시간은 젊어서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자산이다. 자신에게 남겨진 마지막 자산을 또 다른 성장을 위해서 마음껏 사용해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남긴 정신세계를 끝까지 따라가 보는 것도 이 시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인간관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서적 울림에 못지않은 깊은 교감을 대가들의 작품 속에서 찾아낼 수도 있다. 이것은 결코 작은 즐거움이 아니다. 눈이 건강한 상태로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공감대를 넓히는 마음속의 여행을 좀 더 지속하고 싶은 것이다.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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