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발길 끊이지 않는 도심 속 태화강
소박한 산책로따라 펼쳐지는 가을풍경
강변 거닐면 서정 넘치는 시구 떠올라

▲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가을은 시와 어울리는 계절이다. 봄은 기분을 들뜨게 하지만 가을은 사람을 생각 속으로 침잠하게 한다. 그래서 문학적인 정서와 거리가 있는 사람도 낙엽이 지는 10월이 되면 소싯적 외운 시 한두 구절을 떠올린다. 계절 감각이 무디어지는 노년이 되어서도 가을 햇살과 청량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면 별다른 이유 없이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가을에는 산과 바다뿐만 아니라 매일 걸어 다니는 강변의 풍경도 시어를 만들어 낸다.

태화강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심 속의 강이다. 그래도 강변 경관은 여느 강보다 수려해 멀리서도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사계절 내내 색다른 모습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화강의 또 다른 힘은 강을 따라 이어진 산책길에서 찾을 수 있다. 산에서 바다로 이르는 여정이 그리 멀지 않은 소박한 길이지만 강둑을 걷는 사람들에게 심신을 회복하는 힘을 베풀어 준다. 바람이 서늘해지면 강변을 걷는 일은 운동이 아니라 휴식이다. 그래서 가을 강변을 거닐다 보면 서정이 넘치는 시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지극히 평범한 시구가 주는 깊은 울림은 강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걸어보면 알 수 있다.

태화강 물도 시월에 가장 맑고 깊게 흐른다. 여름날 무섭게 소용돌이치던 강물이 어느새 모든 것을 잊은 듯이 처연하게 흘러가는 것을 보면 시간의 무상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시간을 따라 덧없이 흘러가는 삶이지만 시월의 강물처럼 사랑할 것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시인 황동규가 시월의 강물에서 느낀 정서를 수시로 찾아가는 도심의 강에서 체험한다는 것은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가을 풍경은 어디에서나 시심을 자극한다. 시인 윤동주가 북간도에 있는 어머니와 친구들을 생각하며 ‘별을 헤는 밤’도 가을이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시를 읽지 않는 사람도 이 싯귀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 번만 읽고 나면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가을밤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표현한 젊은 시인의 능력이 감탄스럽다.

박목월의 노랫말도 우리의 희미해지는 정서를 자극한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철새가 날아가는 가을 풍경을 보면 누구나 떠올리는 싯귀이다. 가을 하늘의 별이나 기러기를 통해서 표현되는 이들의 정한은 누군가에게 닿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간직하고 있다. 젊은 시인의 고독한 마음은 이렇게 이어진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봄이나 여름 밤의 별을 노래했다면 윤동주의 마음이 이토록 쓸쓸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을에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마음에도 특별한 간절함이 묻어 있는 것 같다.

가을은 조락의 계절이다. 자연의 모습이 변하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도 조금은 쓸쓸해진다. 그래서 가을은 고향이나 친구와 같은 그리움의 정서로 연결된다. 번잡한 도시 생활 속에서 점점 옅어지는 기억들이지만 더러는 간직하고 싶은 것도 이들과 함께한 추억들이다.

울산은 고향을 그리는 망향비가 많은 도시다. 공장 아래 고향 마을을 묻어버린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이 가을에는 고향엔 가지 못하더라도 동네 친구를 만나서 사라진 고향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같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고향 친구가 보낸 손편지 속에 적힌 시를 가을이 되면 아직도 읊조린다. 40여년 전에 받은 편지다. 글을 보낸 친구는 아마 이 편지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김상곤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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