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기슭에서 먹는 국수와 막걸리 운치
휴식과 회복의 느낌을 얻을 수 있는곳
가끔 혼자 찾아가 자신을 돌아보기도

▲ 김상곤 칼럼니스트·철학박사

문수산 기슭에는 국수를 파는 집들이 많다. 등산객들이 드나드는 입구에 자리한 자그마한 식당에는 국수와 더불어 막걸리를 판다. 별다른 안주 없이도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편리한 장소다. 국수나 칼국수를 주문하면 막걸리 안주를 별도로 시키지 않아도 주인이 눈치를 주지 않는다. 이러한 식당의 가장 큰 장점은 산의 풍경이 남아있는 야외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산객들도 국수와 더불어 막걸리를 마시며 등산길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도심의 야외 카페에서 식사와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산기슭에서 먹는 국수와 막걸리도 나름의 운치가 있다.

거주하는 아파트와 인접한 등산로 입구에도 막걸리를 파는 작은 국숫집이 있다. 그 집에도 나무 아래 놓아둔 탁자가 있어 계절의 정취를 느끼면서 식사를 할 수 있다. 등산객들은 여기서 가벼운 대화로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하지만 혼자서 국수를 먹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다. 나무 그늘 밑에서는 혼자 먹거나 마셔도 별로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혼자서 술을 마시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지만, 살다 보면 막걸리 잔을 앞에 두고 사색에 젖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특히 이러한 기분이 낮에 찾아오면 마땅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유용한 곳이 등산로 입구의 국숫집이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나무 아래의 정취를 핑계 삼아 낮술을 마시러 오는 친구도 서너 명 있었다. 은퇴자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면 이만한 곳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무 그늘 아래의 대화도 벌써 지난 일이 되었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친구도 있고, 시나브로 마음이 멀어진 친구도 있다. 또 어떤 친구는 몸이 술을 받아주지 않아 오지 못한다. 말로는 한번 오겠노라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힘들어지리라는 것을 안다.

친구들과 나누는 떠들썩한 대화도 좋지만 혼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도 익숙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오랜 우정이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도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노년이 되면 대부분 인간관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어쩌면 이것은 잦아지는 이별이 주는 아픔을 줄이고자 하는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른다.

자신과 대면하면서 혼자 보내는 시간도 쉽지만은 않다. 마음에 담아둔 일들을 하나하나 되새기는 일이 수고롭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지난 삶이 순탄하지 못했다고 느끼면 더욱 어려운 일이다. 힘든 농사일에 막걸리가 필요하듯이 마음을 돌아보는 일에도 막걸리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나무 아래에서 시간을 보낸다.

인간에게는 자신이 소유하는 지리적인 영역뿐 아니라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심리적인 영역도 있는 것 같다. 나이 들어 소유물들이 점점 줄듯이 마음의 영역도 줄어들고 단순해지기를 염원한다. 그러나 심리적 경계선은 좀처럼 줄어들거나 약해지지 않는 것 같아 염려스럽기도 하다. 오히려 어떤 부분은 신념이 더욱 완고해지고 침범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경계선이 강해지기도 한다. 자신 속으로 점점 침잠하게 되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이 들어서도 친구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사람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등산로 입구의 국숫집은 누구나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장소다. 여럿이 혹은 혼자서 찾아와도 휴식과 회복의 느낌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등산객들이 피로를 풀고자 들리듯이 흐트러진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찾기도 한다. 때로는 소란스러운 마음의 영토를 평정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삶의 모습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자신 속으로의 침잠이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고대 수메르인들은 전쟁과 같이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두 번의 검증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맨정신으로 결정한 일을, 술을 먹고 다시 한번 의논한다고 한다. 이성으로 판단하는 세상과 감성으로 느끼는 세상이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등산로 입구 나무 밑에서 혼자 하는 시간도 이런 과정의 하나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김상곤 칼럼니스트·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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