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양이 등 반려동물과 교감 즐거움
유년의 여름날을 함께 했던 눈이 큰 소
반려동물을 넘어서 ‘동지애’까지 느껴

▲ 김상곤 칼럼니스트·철학박사

풀이 무성해지는 여름철이 되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김종삼 시인의 묵화(墨畵)라는 글이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함께 지났다고/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서로 적막하다고” 어린 시절 여름날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짧은 시를 읽고 나면 한참 동안 시어들을 곱씹게 된다. 해거름녘 집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함께 고생한 소에게 물을 먹이는 일이다. 시인에게도 이러한 풍경은 먹으로 그린 그림처럼 깊은 울림을 주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제목을 묵화라고 지었을 것이다. 시 속의 할머니에게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친구 같은 존재이다. 삶의 애환은 물론 노년의 적막함까지도 함께 겪어가는 반려동물이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허기보다 반려동물의 배고픔을 먼저 생각한다. 특히 소와 같이 거대한 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배부르도록 먹이는 일에 온 정성을 기울인다. 소의 배를 채우는 식량은 여름과 겨울이 다르다. 지금이야 사계절 한 곳에 매어놓고 똑같은 사료를 먹이지만 소로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계절마다 다른 먹이를 주었다.

힘든 일을 해야 하는 시기에는 사료나 여물을 주기보다 싱싱한 풀로 배우 채우게 했다. 그래서 소와 함께 일하는 농부는 아침저녁으로 풀을 베는 일이 중요한 일과였다. 그것도 부족해서 일이 없는 여름날에는 아이들이 오후 내내 소를 몰고 다니며 풀을 먹였다.

소를 먹이는 일에는 식구들이 모두 참여했다. 초등학교 아이도 소를 몰고 산에서 산으로 풀을 찾아 다녔다. 자기 몸무게의 10배도 넘는 소를 몰고 다니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자기의 일로 여기며 감수해야 했다. 점심을 먹고 낮잠이라도 잘라치면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불러서 잠을 깨웠다. ‘소먹이러 가야지.’ 이 한마디면 아무리 힘들어도 마다하지 않고 소를 산으로 몰았다. 물론 혼자서가 아니라, 온 동네 아이들 틈에 끼어서 다녔다. 그러다 보니 별로 위험한 일로 여기지는 않았다. 가끔 성질 사나운 소가 뿔을 들이대거나 뒷발질로 위협했지만 겁내지 않고 소를 통제할 줄 알았다.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이 주인의 말이나 신호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교감의 즐거움을 느낀다. 소를 먹이는 어린아이는 덩치가 큰 소와도 교감하는 능력이 있었다. 집에서 키우는 덩치가 큰 소를 줄 하나로 통제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너무 빨리 가면 ‘워 워’ 하면서 속도를 늦추고 너무 늦게 가면 ‘이랴 이랴’ 하면서 재촉했다. 논이나 밭을 갈려면 더 많은 교감이 필요했지만, 소 풀을 먹이는 일에는 몇 마디의 말이면 충분히 소통할 수 있었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생기기 전이지만 어린아이들은 소와 더불어 여름 오후를 보내는 일을 생활의 일부로 여겼다. 소는 산등성이에서 풀을 뜯고 아이들은 무덤 앞에 놓인 상석 위에서 여러 가지 꼰(고누)을 두며 놀았다.

소를 먹이는 일은 어둑어둑해져야 끝이 났다. 소를 몰고 산에서 내려오는 길도 ‘이까리’라 불리는 작은 줄을 통해 어린아이와 소가 서로를 의지하는 시간이었다. 배부른 소도 놀이에 지친 아이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소와 사람의 긴 행렬에는 갖가지 방울 소리만 조용하게 울렸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어린 아동을 늦은 시간까지 일터로 몰았다고 나무랄지도 모르지만, 추억 속에 남아있는 여름 오후의 풍경은 소와 함께 산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여행길 같은 것이다.

요즈음은 거리에서 강아지를 태운 유모차를 보는 일이 별스럽지도 않다. 심지어는 다 큰 개를 안고 다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들 사이의 깊은 교감은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을 보면서 유년의 여름날을 함께 하던 눈 큰 소를 생각한다. 하루 종일 사람과 같이 논밭에서 일을 하거나 어린아이의 손에 이끌려 산등성이를 헤매는 소는 반려동물을 넘어 동지애를 느끼게 하는 동물이다. 어린아이와 함께 묵묵히 산길을 걸어가는 소의 모습이 떠오르면 김종삼 시인의 글을 읊조린다. 어린 시절 기억을 불러오는 글을 읽은 것도 적적한 여름날을 보내는 좋은 방법이다.

김상곤 칼럼니스트·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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