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박해는 서양문물의 낯섦에 대한 인식부족이 빚은 비극이다. 그 역사도 길다. 새로운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다. 무조건 배척만 해서도 발전이 없다. 그걸 간과한 무지에서 비롯된 비극 때문에 조선 후기는 신앙인들의 피바람이 그칠 새 없었던 시대였다. 새삼 신해, 신유, 기해, 병인박해로 이어진 순교자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긴 세월을 순교로 지켜낸 신앙 덕분에 오늘날 천주교가 좋은 이미지로 안착한 게 아닌가 싶어서다.
<난주>(김소윤/은행나무)는 4대 박해 중 두 번째 박해였던 신유박해 때의 이야기다. 주인공 난주는 정약용의 질녀요, 백서로 유명한 황사영의 아내다. 남편이 순교한 데다 부친을 제외한 삼촌들이 서학을 접한 죄목으로 줄줄이 귀양길에 오른다. 난주는 배교를 약속하고 죽음을 면하지만 죽음보다 못한 삶이 확정된 제주의 관비가 된다. 어린 아들을 추자도에 떼어놓고, 평생을 남의 딸과 오갈 데 없는 소년을 대신 키워낸 여인. 상전댁 도령과는 어떤 유모보다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몸에 밴 기품 또한 어떤 고난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다.
이 책은 4·3평화문학상 당선작이다. 제주의 저항정신을 잘 담아낸 덕분이다. 난주를 지나치게 미화한 느낌이나 책 속의 난주는 강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4·3정신에 비해 다소 억눌린 듯하나, 어떤 저항정신이 억눌림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있던가. 난주는 자신을 핍박하는 대상 앞에 대놓고 대적하지 않는다. 지체 높은 집안의 여식이었지만 관비가 됐으니 그럴 처지도 아니다. 신분이 뒤바뀐 뒤에는 그동안 누렸던 지위까지 박해의 구실이 된다. 난주는 그런 걸 아는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박해를 당하면서도 상대가 오히려 굴욕감을 갖게 만드는 능력이 부럽기도 했다.
남루한 옷이나 천한 신분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기품은 난주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벽이었다. 쇠사슬보다 더한 박해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구실이기도 했다. 비록 지난한 여정이었지만 누구보다도 고귀했던 삶을 산 여인. 난주의 정신은 점점 감정기복이 심해지기 쉬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감정조절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장세련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