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적 삶은 쉽지 않다. 얽히고설킨 삶의 희로애락에서 초연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연인을 표방하는 삶을 조명하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다. 등장인물들은 거의가 남성이다. 사연도 가지가지다. 지병을 고치기 위해서, 사업에 실패해서, 삶의 무게가 버거워서 연결고리를 끊고 사는 사람들이다. 가끔 아무것도 거치적거릴 것 없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보면서 과연 저들은 얼마나 자유로울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이종인, 연암서가)를 읽으면서 그들의 삶을 다시 생각했다. 이 작품은 지적인 광산 소유주와 요란스러운 공사 반장 사이의 기이한 우정을 소개한다. 두 인물은 정신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세계를 대표한다. 두 세계는 너무 다르지만 동떨어질 수는 없음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조르바는 애초에 길들여지지 않은 인물이다. 정착은 도태라는 등식을 갖고 산다. 다소 거친 듯한 말투나 행동은 때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광산의 소유주인 책벌레 화자가 조르바를 탐색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연인’을 외치는 사람들에게서는 조르바 같은 대승적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조르바에게서 느껴지는 신비감이 없어서이거나, 정착에서 도피하려는 억지스러움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르바의 삶은 반대다. 언뜻 보기에 다소 방탕한 삶에서 정착으로 이어진다.

조르바는 인생이 제공하는 모든 도전에 기꺼이 응한다. 산속 수도원에서 미친 수도사들과 대면할 때, 지난날 자신의 모험담을 꾸며낼 때, 자신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여자들과 사랑을 나눌 때, 어떤 순간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거침없이 당당하다. 나이가 들어가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것이 조르바의 매력이다.

결말이 인상적인 것은 조르바의 역설 때문이다. 스스로 자유롭기에 동행할 수 있다는 화자에게 조르바는 고개를 젓는다. 매여 있는 줄이 남들보다 조금 길다고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그 줄을 잘라내야 한다고 충고하면서. 언젠가는 그 줄을 잘라낼 거라는 말에 조르바는 정작 정색하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역설을 또 뒤집는 조르바를 더 대승적으로 보이게 하는 장면이다.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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