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세련 아동문학가

현대는 여성의 사회활동이 자유롭다. 특별한 능력을 인정받는 여성도 꽤 흔하다. 여성이 기업인이나 대기업의 임원이 되기도 한다. 장관은 물론 대통령이 되는 시대이니 당연하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성행하던 ‘여성백일장’ 같은 여성만을 위한 사회 진출기회조차 흐지부지되었을 정도다. 그만큼 여성이라 차별받거나 활동을 제한 받는 일이 없어졌다는 반증이다. 여성이 남성과 균등한 기회를 부여받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여성이라서 못할 일은 없다. 불과 100년 전 대한민국의 여성이 집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강요된 현모양처로 사는 것이 보람이던 시대. 그런 시대에 여성의 몸으로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다. 여성으로서 독립운동을 했던 <하란사>(권비영, 특별한 서재)가 크게 조명을 받는 것도 그런 분위기가 큰 몫을 했다고 본다.

3년 전 여성 독립운동가 명단에서 보았던 하란사의 삶이 소설로 재조명되었다. 반가운 일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강요로 스무 살 가까이 차이나는 중늙은이의 재취가 된 여인. 남편의 무조건적인 지원 덕분에 이화학당에 입학을 하면서 얻게 된 세례명 ‘낸시(Nancy)를 음역한 이름이 란사다. 거기에다 남편의 성을 붙여서 하란사로 살았고 미국 대학에서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에는 몽매한 여성교육에 힘쓰는 한 편, 은밀하게 독립운동을 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다.’ 늘 되뇌던 것처럼 그녀는 철저히 독립적인 삶을 살았다. 그런 자세가 나라 독립의 밀알은 되었을지언정, 남편에게는 조금의 애정도 없었다. 두 가지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으나 가정사에는 너무 소홀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을 당연시 여긴 면은 부럽기보다 다소 불편하기도 하다.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이 센 란사가 신여성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밀어준 남편 덕분이다. 그럼에도 독살설만 분분할 뿐 하란사의 의문사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뜻도 펼치지 못한 채 죽은 터라 남편의 배려가 배신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남편에 대한 고마움만은 잊지 않은 여성으로 살려낸 작가의 따듯한 배려가 작은 위안이 되는 소설이다. 장세련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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