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간의 성격이나 질병, 성향 등은 유전자의 작용으로 이미 결정되어진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더불어 유전자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중시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 걸맞다는 생각에 완독한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을유문화사).
종족 보존의 본능을 어쩌면 이렇게나 어렵게 썼을까. 읽으면서 내내 했던 생각이다. 분자, 세포의 구조도 그렇거니와 저자가 생물학자라는 것을 감안하고 읽어도 어려웠다. 일반 독자에게 가장 먼저 초점을 맞추었다는 저자의 서론에 자존심이 상할 정도였다. 또 생물학에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는 일반 독자, 나머지는 생물학 전공자들을 위해서 썼다는데 아무리 봐도 가장 후자를 대상으로 한 작품 같았다. 최소한 생물학에 꽤 조예가 깊은 일반 독자는 돼야 흥미롭게 읽을 책이었으므로.
인간의 본성을 다소 억지스럽게 다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류가 이타적이어야 세상이 밝고 건강해진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인간의 유전자가 이타적 존재가 아닌 이기적 존재라니 쉽게 수긍이 되지 않았다. 인간이 생존 기계로서 존재한다는 저자의 관점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인간은 자신을 운반해 주고, 종족을 보존해 줄 더 나은 운반자를 만들려는 유전자의 매개라는 주장이다. 반감이 일었다. 인간의 본성을 동물적으로만 다룬 듯해서 유쾌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집단을 형성하면서 사회적 존재로 거듭난다. 인간 본성의 전부가 유전자에 의한 것만은 아님을 깨달았다. 본성은 환경의 영향에 의해서 얼마든지 변한다.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만큼 어마어마하다. 그런 만큼 이기적 유전자를 누르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이타적으로 살려는 의지를 갖지 않으면 유전자에게 지고 만다는 조용한 충고를 읽었다.
이기적 유전자일 뿐이라는 인간의 기질은 꽤나 복잡하고 다양하다. 비로소 책의 내용에만 골몰해서 삶이 허무주의에 빠지려는 감정을 털어낼 수 있었다. 삶은 결코 예정되어 있지 않다. 삶에는 항상 변수가 존재한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에 따라 예측 불가능한 이타적 존재라는 결론에 삶의 활력이 솟는다. 장세련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