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을 들렀다가 고인돌을 본 적이 있다. 사진으로 보았던 것보다 훨씬 큰 덮개돌의 위엄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덮개돌 아래도 궁금했다. 들추기만 하면 왠지 억눌렸던 많은 이야기들이 빳빳이 고개를 들 것 같았다.
<석수장이의 마지막 고인돌>(함영연, 내일을여는책)은 그 기억을 소환하기에 충분한 이야기였다. 동화지만 어른이 읽어도 무게감이 예사롭지 않다. 시대상과 삶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도움이 될 법한 책이다.
주인공 모루는 금누리국 으뜸 석수장이인 아버지를 존경한다. 석수장이 일에 자긍심을 느끼는 아버지는 군주의 전횡에 심한 갈등을 겪는다. 죽은 자를 위해서만 지어야 하는 돌집을 군주 자신을 위해 지으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산 자의 돌집을 지을 경우 어떤 횡액을 당할지도 모르는 처지의 아버지를 보면서 모루는 해결책 모색에 바빠진다. 더는 명령을 거역도 미루기도 할 수 없어 아버지는 군주의 돌집을 짓기로 한다. 그런데 덮개돌을 캐는 도중에 암벽에 깔려 죽는 사고를 당한다. 그런데도 돌집조차 갖지 못할 처지의 아버지를 위해 모루는 과감하게 작은 돌집을 짓는다.
사람은 권력 앞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가진 자는 전횡을 저지르기 마련인 모양이다. 거기에 맞서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모루는 달랐다. “새날은 한 사람의 변화에서 시작된다.”는 놋 할아버지의 말을 좌우명처럼 새기고 소심하지만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반란에 가까운 모루의 선택이 주는 메시지는 신선하고 강렬하다. 금누리국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현대사회에서도 뒤처지거나 어색하지 않다.
이야기의 배경은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고대사회다. 등장인물의 이름에서 작가의 섬세한 의도가 읽힌다. 돌만 다루는 아버지 돌만은 청동기시대의 마지막을 묘사한 이름 같다. 청동기와 철기시대를 잇는 듯한 놋 할아버지의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모루는 금속재료를 원하는 형태로 만들 때 그 재료를 올려놓는 쇠 받침대로 철기시대의 등장을 예고하는 이름이다. 이름들을 새겨 보니 공감대가 더 크고, 모루의 선택이 새 시대의 서막 같아서 참으로 시의적절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세련 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