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의 뿌리털 역할하는 중소기업
지방 중기가 견고하게 뿌리 내리도록
한은, 다양한 중기 지원 프로그램 운영
현장의 애로 청취, 적극적 지원 뒷받침
미래 50년 새로운 번영 위해 함께 뛸것

▲ 이강원 한국은행 울산본부 본부장

드넓은 호주대륙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매우 건조한 사막지역을 아웃백(Outback)이라고 칭한다. 50℃가 넘은 기온에다가 강수량도 적어 사람은 물론 동식물들도 살아가기 매우 어려운 척박한 오지(奧地)이다. 그런데 이런 황량한 땅에서도 거대한 숲이 있고 유칼립투스 등 다양한 희귀식물이 잘 자라고 있다. 이러한 강한 생명력의 근저에는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연약한 수많은 ‘뿌리털(root hair)’이 있다. 원뿌리, 곁뿌리에서 뻗어나온 수천만 개의 근모(根毛), 즉 뿌리털이 흙 속 깊이 흩어져 있는 미세한 물과 자양분을 모아들이고 식물 본체를 사막땅에 견고하게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뿌리털은 굳이 물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는 수생식물에는 없고 육지식물에만 존재한다고 한다. 뿌리털이 견고할 때 튼튼한 줄기며 아름다운 꽃과 풍성한 잎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에 있어서 이러한 ‘뿌리털’의 역할을 하는 존재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다들 아시다시피 글로벌 스타기업들이 즐비한 울산에서는 일차적인 관심이 대기업에 쏠리기 마련이다. 승용차 6000여대가 들어가는 자동차 수출전용 선박, 아파트 36층 높이의 골리앗 크레인, 여의도 면적 3배에 달하는 에너지기업의 석유화학콤플렉스 등은 우리들 입이 저절로 벌어질 정도로 거대하다. 필자는 이들 대기업을 현장 방문하면서 저절로 느끼는 북받쳐 오르는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들을 뒤에서 떠받치고 있는 수많은 지역 중소기업들의 땀과 노력도 생각해보는 계기도 되었다. 대기업, 수출기업이 많은 울산에서 중소기업을 끌어간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어려움도 많을 것이다.

어느 울산 대기업의 협력사가 800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소위 1차, 2차 등등의 벤더라고 불리는 작은 중소기업들은 다양한 원재료를 조달하고 소재를 제조하며 부품과 모듈을 제작해 대기업에 납품한다. 가격변동, 수요변화, 자금난, 산업재해, 뜻하지 않은 여러 대내외 충격 등의 다채로운 위험을 감내하면서 원재료, 소재, 부품, 모듈 등을 차질없이 이동시키는 공급망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역 중소기업이 경제의 뿌리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필자는 한국은행 울산본부장으로 부임한 이후 여러 중소기업 경영인들과 단체 대표들을 만나보면서 지역 기업인들의 위기감과 절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 있는 높은 열정과 의욕, 책임감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접촉점을 통해 한국은행 울산본부가 좀 더 지역경제와 중소기업들에 다가가서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지게 되었다.

한국은행 울산본부는 현재 지역 중소기업들이 보다 싸고 쉽게 기업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방중소기업 지원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금리정책 등을 통해 경제 전체를 대상으로 물가안정과 통화조절 기능을 수행하는 가운데에서도 온도차가 있는 지방 중소기업으로 생산적인 자금이 흘러 들어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통화정책의 효과성을 제고하기 위한 취지에서다.

올해 중 이 프로그램의 이용업체수(+129.2%, 1844개→4227개)와 이를 통한 일선 금융기관 실제 대출금액(+54.8%, 9903억원→1조 5333억원)이 크게 증가했다. 중소기업 경영진 및 대표 면담, 대기업 현장방문, 금융인 모임, 지역 오피니언 리더 간담회 등을 통해 관련 제도를 설명하고 자료 배포 등을 통해 관계자들에게 전파를 요청했던 효과가 어느 정도 발휘되지 않았나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고 싶다.

한편으로는 중소기업 자금지원 대상을 신규로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지난 9월 울산경제자유구역청과는 경제자유구역 내 150여개 입주기업을 대상으로 자금지원과 정보공유를 위한 업무협약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2020년 전국 9번째로 지정된 울산경제자유구역의 설립 취지에 맞게 외국자본 유치와 지역경제 글로벌화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11월에는 울산시가 중심이 돼 추진한 울산 첨단이차전지 특화단지 투자기업 지원을 위한 통합금융지원 업무협약서를 경남은행,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 7개 기관들과 공동 체결했다.

그동안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주력산업의 부진으로 지난 2012년부터 10여년간 마이너스 성장시기를 거친 울산으로서는 새로운 먹거리를 추가해 산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서 지난 1960~2000년대의 50년 발전을 다시 맞이하는 새로운 번영의 50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이차전지가 미래 선도산업 내 차지하는 위치를 감안할 때 선두주자를 선점하는 것이 긴요함에 따라 울산시의 빠른 정책대응에 적극 동참할 필요성이 있겠다.

울산 소재 글로벌 스타기업들이 국가대표로 나서 세계무대에서 각종 기록을 세우고 있다. 울산이 K-자동차, K-LNG선, K-신소재에 이어 K-배터리, K-수소 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역 토착 중소기업들의 혁신과 공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여기에는 정책당국의 신속하고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할 것은 분명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은행 울산본부도 현장 기업인들의 의견을 찾아서 듣고 중앙은행으로서 도와야 할 일들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노력하겠다.

이강원 한국은행 울산본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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