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

▲ 삽화= 화가 박종민

울산의 봄은 숨 막히게 아름답다.

온통 흐드러지게 핀 벚꽃으로 마음을 부풀게 한다.

며칠 전에 봄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싱그러운 풀내음까지 골목을 휘감아 내려오고 있다.

몇 천 년 전 시저가 클레오파트라 7세를 처음 대면하는 날도 이렇지 않았을까.

봄 향기 무르녹는 밤,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순간도 이처럼 가슴 부풀어 숨 막혔을 것이다.

시인 키이츠가 ‘미(美)는 곧 선(善)’이라고 말했듯이, 여인의 아름다움은 남자이면 누구나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이기도 할 것이다.

시저가 이집트로 가게 된 연유는 참으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는 자신의 나라 로마의 심장을 향해서 진격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지만 폼페이우스와 로마귀족들은 시저의 강한 군대를 그냥 보고 있지 않았다.

로마 원로원은 시저에게 즉시 군대를 해산하고 갈리아 총독에서 물러나 홀몸으로 로마로 돌아올 것을 명령했다. 시저에게 무장해제하고 죽으러 오라는 말이었다.

시저는 갈리아에서 루비콘 강을 건너며 자신의 병사들 앞에서 “이 강을 건너면 세계의 파멸, 건너지 않으면 나의 파멸,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연설을 하며 로마로 진격하며 용단을 내린 영웅이었다.

폼페이우스와 로마귀족들은 용감한 시저의 군대 앞에 당황했다. 그들은 시저의 군대에 맞서지 못하고 로마를 비운 채 이집트로 나가 전열을 가다듬기로 하였다.

시저는 한 때 자신의 사위였던 폼페이우스를 뒤쫓아 이집트로 진격해 갔으나 폼페이우스는 이미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의 남동생이자 그녀의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게 죽음을 당한 뒤였다.

시저의 외동딸 율리아가 폼페이우스의 아이를 낳다가 죽고 난 뒤 폼페이우스는 시저를 배반했고, 또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만 것이다.

그날 밤 시저 앞에 나타난 세기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본 순간 로마의 영웅 시저도 여인의 관능에 녹여나는 한 여자의 상대 남자일 뿐, 그는 그만 넋을 놓고 말았다.

친 남동생이자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와 그의 지지자들에게 내몰려 자신의 존재에 대해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즈음에 영웅 시저의 등장은 그녀에게 큰 기회였다.

그녀는 시저를 환상으로 사로잡을 전략으로 변신을 꿈꾸었다.

당시 알랙산드리아는 그리스와 이집트문명이 혼재된 독특한 문화를 꽃피우고 있었다.

세계의 도서관이라고 불리는 방대한 자료를 가진 왕실 도서관에서 클레오파트라는 어려서부터 방대한 양의 독서를 하였다. 당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지식을 쌓은 지혜로운 여왕이었다.

천부적인 언어 능력으로 무역도시 알렉산드리아를 통교하던 수많은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며, 대제국 로마가 이집트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왕위에 오른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왕가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지략과 외교술을 펼쳤다.
 

▲ 한분옥 수필가·울산예총 회장

클레오파트라는 장사꾼의 융단에 말려 몰래 시저 앞으로 다가갔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때때로 성(性)적인 의미로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독(毒)일 수도 있다.

순간 클레오파트라 역시 시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권력자의 매력에 끌렸다. 권력이라는 것이 지위에서 뿐만이 아니라 인품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그녀는 인간 시저에게 스스로 반하고 말았다.

파스칼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1㎝만 낮았어도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클레오파트라에게 시저는 운명 그 자체였지만, 시저에게 클레오파트라는 철저히 정부였을 뿐, 그 어떤 법적인 보장이나 배려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한분옥 수필가·울산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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