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순욱 (荀彧·162~212)

▲ 삽화=화가 박종민

온 천지가 하얀 달빛이다. 차가운 겨울 달빛이 하염없이 쏟아져 비좁은 뜰엔 달빛으로 넘쳐난다. 이럴 때는 하릴없이 역사속의 영웅호걸을 찾아 나선다. 달빛은 소리 없이 쏟아져 적막하여 고요하다.

시대를 풍미했던 정객들, 제왕의 책사들의 발자취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을 되짚어 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시대의 주역이 되길 원한다. 그러나 그 어떤 드라마도 혼자서는 그 빛을 발할 수가 없다.

과연 지나간 역사의 진정한 주역은 누구였으며, 가장 빛나는 조역은 누구였던가.

시대를 풍미한 미인이 있듯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를 호령했던 영웅은 있게 마련이다. 진정한 미인이란 옛날이나 지금이나 외적인 용모뿐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을 가꾸는데 있다. 무릇 진정한 선비는 어떤 군주를 섬기느냐에 따라 그의 품세가 달라진다.

어느 시대에도 제왕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왕을 받들어 그 영광을 함께 누리는 사람이 있다.

순욱은 삼국지를 통틀어 최고의 모사였다. 조조가 그대는 나의 자방(子房)이요, 하며 크게 환대했던 모사(謀士)였다. 유비에게 제갈량이 있듯이 조조에겐 순욱이 있었다.

순욱은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나 사마의 같은 모사에 가려져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한 비운의 책사였다.

한 때 순욱은 원소를 섬겼고, 원소도 순욱을 크게 예우하였으나, 순욱은 원소가 대업을 이룰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그를 뿌리치고, 조조에게로 갔다.

관도대전에서 20만 군사의 조조가 80만 대군의 원소를 이긴 것도 모사 순욱의 지혜를 받아들인 승과였다.

순욱은 관도 전투에서 본거지의 수비를 맡았는데, 조조가 전쟁도중 전혀 승산이 없다고 회군하려 했을 때 순욱은 반대하며 조조를 격려했다.
 

▲ 한분옥 수필가·울산예총 회장

조조가 원소에게 일단 승리한 후에 원소와의 결전은 중지하고 남쪽의 유표와 싸우려고 하자, 순욱은 원소가 남은 무리를 수습하고 빈틈을 타서 다시 쳐들어온다면 유표와의 싸움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반대했다.

이 진언에 따라 조조는 황하를 두고 원소와의 대치를 계속했고, 원소가 죽은 뒤 원소의 세력이 내분에 빠지자 이 틈을 공격하여 하북의 대부분을 조조의 세력권에 넣을 수 있었다.

순욱은 조조를 도와 중국대륙의 중원을 기점으로 강북을 평정하고 동탁과 원소를 쳐 넘기고 조조의 대업기반을 확장하는데 일등공신이었지만 순욱은 끝까지 조조와 뜻을 같이 할 수가 없었다.

순욱은 처음에서 끝까지 스러져 가는 한(漢)나라의 부흥을 꿈꾸면서 방법적으로 조조를 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조의 야심은 그게 아니었다.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 헌제를 옆에 끼고 있는 것은 그의 명분에 지나지 않았으며 기회를 보아 언제든지 쳐 넘기려는 복심(腹心)을 갖고 있었다.

조조는 서서히 찬탈의사를 비추기 시작했고, 위공(魏公)의 지위를 욕심내어 구석(九錫)을 받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조조의 부하였지만 한(漢)나라의 충신이었기에 한나라를 유지하겠다는 정치적 이상을 던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순욱은 이에 맹렬히 반대하였다.

한(漢)실의 부흥을 열망하는 순욱의 본심을 눈치 챈 조조는 가차 없이 순욱을 마음에서 지웠다. 그리고선 조조는 어느 명절에 순욱에게 빈 찬합을 보냈다. 이를 보고 조조의 뜻을 간파한 순욱이 독주(毒酒)를 마셨다. 빈 그릇처럼, 자신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을 정도로 이용되었다는 뜻을 간파한 순욱이었다.

순욱이 죽은 다음해 조조는 위공(魏公)이 되었다.

황진이가 머문 곳엔 그녀의 향기가 배어있듯이 제왕의 책사가 앉았던 자리는 지혜로운 전략과 충정의 붉은 꽃이 지지 않는다.

올해는 흑룡의 해였다. 대선을 기점으로 흑룡이 승천하는 기운을 온 국민이 누리기를 기대한다.

한분옥 수필가·울산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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