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 삽화= 화가 박종민

잠 못 드는 밤이 있다는 것은 가슴이 뜨겁다는 것이며, 아직도 뜨거운 청춘이라는 말이다. 아득히 멀고도 깊은 밤에야 비로소 잃어버린 자신을 만나기도 하고, 고독 속에서 비로소 낯설고도 멀었던 자신과도 손잡는다.

사람은 슬플 때만 우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 사무칠 적에 우는 울음은 그 보다 더 깊은 곳에서 나온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큰 딸에게 읽어 줄 때도 울었고, 막내딸에게 읽어 줄 때도 울먹였다. 30년 전의 일이다.

굶주린 성냥팔이 소녀가 추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성냥을 팔지 못하면 집에 돌아갈 수도 없는 소녀는 꽁꽁 언 손을 녹이기 위해 성냥 한 개비를 긋고 또 그었다.

빨갛게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온갖 환상이 소녀 앞에 나타난다. 첫 번째 성냥은 큰 난로가 되고, 이어서 맛있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 그리고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가 나타나는데, 크리스마스의 트리에 달린 불빛은 높은 하늘로 올라가 밝은 별이 된다는 동화 속의 이야기인줄 알면서도 읽을 때 마다 울먹였다.

기쁨이 사무치면 울게 되고 즐거움이, 노여움이, 억울함이, 사랑이 사무쳐도 울게 되는 법이다. 그 누가 청춘을 묻는다면 잠 못 드는 밤과 동시에 눈물 흘리는 밤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비록 잠 못 드는 밤으로 외롭고 서러워서 버려진 느낌, 흔들리는 느낌일지라도 그 서러움을 깊이 끌어안는다. 눈물 속에서 내 안의 나와 뜨겁게 만나는 것이다. 진정한 고독을 두들기며 서러움에도 진실하게 다가서는 것이다.

사방이 어둠으로 깔릴 때의 평화로움, 비로소 그 고요를 느낄 줄 아는 즈음에 이른다.

밤은 빛 밝은 낮 보다 자신의 존재에 더 가까이 다가 설 수 있어서 좋다.

어둠이 내리면 비로소 모든 일에서 놓여나니, 정좌해서 서럽게 어둠에 다가간다. 일은 낮에나 하는 것, 집안일은 그냥 밀쳐 두기로 한다. 밤에는 혼자만의 시간으로 나를 채우기로, 어떤 일에도 어느 누구도 오늘 밤 나의 시간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청정하게 깨어 있는 밤이 있다는 것은, 가슴 가득 서러움이 있다는 것은 그 만큼 가슴에 새기고 싶은 그리움이 있다는 것이다.
 

▲ 한분옥 수필가·울산예총 회장

오늘 밤은 꼬박 밤을 새우기로 한다. 차라리 안데르센의 동화속의 비극으로 나의 밤을 포장해버릴 것이다.

순수한 나와 대면해서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다. 눈물을 찍어 낸다든지 훌쩍거리기를 한다든지 간에 이 밤은 혼자만의 시간이다.

안데르센 그는 나와 똑 같은 미운 오리새끼였으며, 어느 소녀들과도 똑 같은 인어공주였다. 때로는 성냥팔이 소녀이기도 하고 백조왕자이기도 했다.

그가 살아온 인생이 바로 그의 작품에 대한 최상의 해석이다.

그는 동화 속 주인공 ‘성냥팔이 소녀’처럼 외롭고 버거운 삶을 살면서도 꿈을 버리지 않았다.

꿈꾼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 안에는 정의, 열정, 순수 사유(思惟)와 통찰 같은 많은 희망의 언어로 가득 차 있다.

끝없는 사색과 열정, 땀으로 얼룩질수록 인생은 그 무늬가 아름답다.

비극적 동화로 불멸의 명성을 얻은 그는 얼음처럼 차갑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환경 속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도 인생의 꿈만은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었던 그였다.

오늘밤은 밤하늘의 별 보다 더 많은 상상의 언어들이 반짝인다. 희망의 언어들이 영혼을 비춰준다. 안데르센의 동화 속이다.

어른이 되고서야 온전히 그의 동화를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내 속에 있는 동심을 울린다.

한분옥 수필가·울산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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