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호 울산대 객원교수·철학박사

서울에서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의 사진전을 보고 왔다. 레이터는 1950~1960년대 미국의 길거리 풍경을 찍은 컬러사진으로 유명한 작가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흑백사진이 사진의 주류로 인정받고 있었기에 레이터의 컬러사진은 그가 80세가 되어서야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평소 사진을 좋아하던 필자는 레이터가 단순히 시대를 앞서간 컬러사진의 대가 정도로만 알았다. 그러나 전시회를 통해서 그가 평생 꿈꿨던 삶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소박한 행복을 누리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의 모델이자 평생의 연인이었던 솜스를 담은 사진을 통해서 그의 말이 진실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찍은 사진은 특별할 것도 없는 뉴욕의 길거리 풍경이다. 그냥 길을 걷는 사람, 거울에 비친 풍경, 우산을 쓰고 어딘가로 움직이는 사람. 그러나 그의 사진에 담긴 그 평범한 일상은 마법과도 같은 색감과 구도의 아름다움을 통해 영원한 인류의 문화적 자산으로 승화되었다.

관람객으로 가득한 전시장을 나서자 내 앞에 일상의 풍경이 다시 펼쳐졌다. 찬 바람에 몸을 움츠리고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 두꺼운 외투도 없이 서로 즐겁게 장난치며 걷는 젊은 연인, 조깅하는 사람. 일상의 평범함이 곧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문득 알게 되었다. 명예를 위해, 승진을 위해, 성공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오다가 문득 깨닫게 된다. 담벼락 밑에 피어있던 민들레 꽃을 내가 바라보지 못한 채로 살아왔음을.

코로나19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이 우리 마음을 또 무겁게 만든다. 그 아픔이 다시 아물기까지 오랜 세월과 힘겨운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일상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각자 묵상할 시간이 왔다. 의미심리학의 창시자 프랑클은 말한다. 일상에서 소중한 체험을 겪어보라고. ‘아… 내가 이 순간을 위해 살아왔구나’라고 느낄만한 그런 체험은 멀리 있지 않다. 마치 레이터가 피사체를 찾기 위해 멀리 떠나지 않았듯이. 커피숍에서, 차 안에서, 산책길에서 만난 순간이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변화되듯이.

이번 주에는 만나고 싶은 소중한 사람에게 안부 전화라도 해야겠다.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일상을 위해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겠다.

김남호 울산대 객원교수·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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