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학 울산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나는 작년 3월에 울산으로 갓 부임해 온 신임 교수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서울이고 보스턴과 런던에서 머물던 유학시절을 제외하고는 사십 중반을 넘게 서울을 떠나 살아 본 적도 없으며, 울산은 방문 한 번 해본 적 없는, 낯선 도시였다. 그리고 이제 겨우 1년을 울산과 지낸 그야말로 울산 새내기다. 이렇다 보니 지금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울산 사람, 문화, 경제, 역사 등에 대해 알아가려 애는 쓰고 있지만 아직도 울산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만도 못한 갓난 아기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평생을 울산에서 보내신 노 교수님이 쓰시던 이 칼럼을 선뜻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내가 지난 1년 동안 학생들과 지내며 얻은 울산 디자인에 대한 몇 가지 인상 때문이다.

작년 초 부임하자마자 부족한 것이 많은 신임 교수를 추켜세워 주시려 동료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내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해주셨다. 한편으로는 고마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내 부족함을 누구보다도 스스로 잘 알기에 겸연쩍어 머쓱해할 즈음, 내게 들려온 어느 학생의 말 한 마디. “그렇게 훌륭하신 교수님이 왜 울산에 오셨대요?”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한 학생에게 대학원은 공부하고 싶은 분야의 선생님을 찾아가는 것이 옳다며 울산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그 학생은 부모님과 의논해서 서울로 진학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 학생으로부터 전해들은 부모님의 반응. “서울에 있는 00대학으로 진학하면 빚을 내서라도 보내주겠지만, 울산에서 진학하겠다면 십원도 못 대준다.”

너무 부정적인 면만 본 걸까? 물론 심정적으로 이해는 한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본 전부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난 1년 동안 내가 목격한 일련의 상황들이 울산 디자인에 대한 울산 사람 다수가 가진 생각의 단면임은 분명해 보인다. 자신감 없는 짝사랑. 울산의 부모들이 여기서 나고 자란 우리 자녀들에게 작은 확신이라도 심어주려 애썼다면, 울산의 관공서와 대기업들이 그들의 중요한 디자인을 서울이 아닌 울산의 디자이너들에게 신뢰를 가지고 꾸준히 맡겨왔다면,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디자인 토양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울산은 내가 선택한 곳이다. 자신감은 내 생각과 행위가 옳다는 확신, 그리고 내가 배우고 일하는 이곳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21세기 울산 디자인의 미래를 위해, 자신감 없는 짝사랑은 이제 제발 그만.

안병학 울산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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