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는 인터뷰 요청 이메일을 한통 받았다. 그런데 보낸 이의 이름이 낯익다. 중3 아들놈이다. 전문가 인터뷰란다. 가만히 달력을 들여다보니 개학이 내일 모레다. ‘이 녀석 또 아빠 활용해서 방학 숙제 하나 때우려 하나보다.’ 그런데 ‘어라!’ 질문이 예사롭지가 않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디자인이 어떤 면에서 유용한가?’ ‘디자인은 우리에게 숨겨진 정치적인 일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가?’ ‘디자인이 고쳐야 할 사회문제가 있다면?’ ‘디자이너로서 숨겨진 문제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법은?’ ‘혹시 사회문제에 관한 작품을 만든 적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동기로 만들었고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가?’

잠시 당황했다. 머리 큰 학생만 가르쳐봤지 어린 청소년, 그것도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아들이 보낸 아빠의 직업에 대한 진지한 질문은 처음 접하는 터라 어떻게 이 녀석을 이해하게 할지 난감한 노릇이었다. 고심 끝에 최대한 쉬운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고 책상머리에 앉았다.

우리는 흔히 디자인은 대단한 전문가나 하는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지나친 전문가 의식으로 자신들만의 굳건한 성을 지키기 위해 높은 벽을 쌓는다.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디자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 가까이에 있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입힐 스웨터를 뜨개질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가장 먼저 수없이 많은 종류의 실 중 어떤 것이 추운 겨울에 가장 훌륭하게 보온 역할을 할지 조목조목 따져서 고를 것이다. 그 다음 어떤 색을 좋아할지, 어떤 문양을 좋아할지, 어떤 스타일이 가장 잘 어울리는지 고민할 것이다. 모든 재료가 준비되면 한 땀 한 땀 만들어가며 옷을 입고 다닐 어린 손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흐뭇해 할 것이다. 이게 바로 디자인이다.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어머니가 가족의 건강, 영양, 맛을 고려하여 좋은 재료를 고르고, 입맛을 돋우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요리해 예쁜 그릇에 정성스럽게 담아내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이 또한 가족에 대한 극진한 정성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디자인 행위다. 반면 무형의 결과를 낳는 디자인 행위도 있다. 선생님이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선생님은 학생이 수업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설명 방식, 체험 학습, 그림이나 음악 같은 오감을 활용하는 교재를 준비하는 등 짜임새 있고 효과적인 수업을 기획한다. 무형의 교육 시스템을 디자인하는 행위다.

이처럼 우리는 늘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디자인을 한다. 상품을 예쁘게 포장하거나 멋진 제품의 형태를 만드는 일만이 아니라 주변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모순과 부조리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 우리 삶을 조금씩 진보하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남을 생각하는 극진한 마음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절실함이 담긴 디자인을 우리는 좋은 디자인이라 부르며 오래 기억한다. 울산대학교 디자인대학 교수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