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병학 울산대학교 디자인대학 교수

‘본다’라는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본다’는 행위는 인간이 시각기관을 통해 기관 외부의 대상을 의미 있게 해석하여 인식하는 과정이다. 사물의 유사함과 차이를 구별하고, 불완전한 자극을 통해 완전한 형태를 추론하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배경 속에 숨겨진 자극의 원천을 확인하고, 또 지각한 자극을 기억하며 구체적인 형태로 재생해내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오감으로 대상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대상을 해석하며 해석의 결과를 의미로 인지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

그런데 인간은 지각된 인식을 통해 대상을 하나의 통일체로 파악하고, 이를 증명하고 논리화하는 과정을 통해 인식된 내용을 지식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 때문에 오감에 의존해 대상을 지각하고, 지각된 내용을 관념화, 인식화 과정에서 그 결과를 수학적이고 미학적인 방식으로 논리화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 바로 투시도법이다. 투시적 원근법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눈의 거리와 시야, 그리고 시각의 관계를 바탕으로 3차원의 형태를 2차원의 평면에 입체감을 살려 구현하는 방법으로, 142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발명되어 19세가 말까지 서양 미술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20세기에 들어 입체파 또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에 의해 투시도법을 의도적으로 깨뜨리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지만, 이는 지금까지도 사물을 바라보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으로 예술, 디자인뿐만 아니라 인간의 시지각(視知覺, visual perception)을 통한 인식 활동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실생활에까지 실로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 의심 없이 믿는 이 투시도법이 사실은 우리가 보는 실제 세계와 다르다면? 예를 들어 옆의 그림은 투시적 원근법을 적용해 그린 그림이다. 왼쪽은 음각으로 움푹 패어 있고, 오른쪽은 양각으로 볼록 튀어나와 있다. 그럼 신문을 뒤집어 다시 보자. 뒤집어 보면 반대다. 음각이었던 것은 양각이 되고, 양각이었던 것이 음각이 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빛 때문이다. 우리는 무의식적 경험을 통해 빛이 왼쪽 위에 있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빛의 방향과 그림자가 생긴 방향으로 사물을 인지한다. 우리가 투시적 원근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각을 관념화하기 위한 기하학적 구성일 뿐, 빛이라는 경험된 인식이 시지각에 영향을 미처 인식을 바꾸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간은 대체로 자신이 보는 것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렇듯 인간의 ‘본다’는 행위를 통한 지각은 어쩌면 이미 기존에 인식된 관념의 지배 안에서만 사실인 무엇일 수 있다.

안병학 울산대학교 디자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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