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인공지능 기술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충분히 합의해
더 나은 인류의 미래, 함께 만들어야

▲ 최진숙 UNIST 교수 언어인류학

‘문화 모퉁이’라는 칼럼을 시작하게 되었다. ‘모퉁이’란 꺾여서 돌아가는 자리, 즉 어디론가 방향을 틀어볼 수 있는 곳이다. 인류학자인 필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으로부터 멀찍이 거리를 두고 살펴봄으로써 감히 세상이 돌아가는 방향을 약간 틀어보고자, 잠시 이 자리를 빌려 독자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미국에서는 작년 11월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초부터 생성형 AI가 대중 앞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이후 지난 몇 개월 동안 생성형 AI를 마치 알라딘의 마술램프 요정 지니처럼 소원을 이루어주는 기술로 생각하고 환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은 미다스(Midas) 왕처럼 손대는 것마다 금으로 변환될 수 있는 것인 양 들떠 있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것을 관찰하다 보니 2010년 아이폰이 막 대중화되기 시작할 때 흔히 떠돌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기술과 인문학의 만남’이라고 하며 스티브 잡스가 대학에서 서예를 배웠다는 사실까지 전설처럼 인구에 회자되기도 했다. 물론 그런 식의 서술이 사실이 아니라거나 부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치 기술이라는 재료와 인문학이란 재료를 마법 상자에 넣고 적절히 섞으니-중간 단계, 과정, 철학 모두 생략하고-아이폰이라는 작품이 나온 것으로 상상되었던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생성형 AI에 대해서도 그 기술의 창출 과정 및 사용에 대한 고민에 앞서, 단지 마법의 힘이라도 가진 양 상상되는 듯하다.

문화인류학에서 주술(magic)과 과학의 관계는 복잡하고 다층적이라고 이해되어왔다. 주술과 과학, 둘 다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탐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지식과 실천의 시스템으로 이해되지만, 종종 다른 영역에서 작동한다. 주술은 인류학적으로 볼 때, 종종 전통적인 비서구 사회와 관련이 있으며, 초자연적인 수단을 통해 생활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관행과 믿음을 포함한다. 주술은 의식, 주문, 상징적인 물체의 사용을 포함할 수 있으며, 종종 불확실성을 관리하고 예측 불가능해 보이는 결과를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에, 과학은 일반적으로 현대 서구 사회와 연관되며, 이는 경험적 관찰, 실험, 그리고 이론적 설명에 기반을 두고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

하지만, 주술과 과학은 생각처럼 그리 단순하고 명료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이 둘은 대조적이지만 동시에 유사성도 가지고 있다. 두 시스템 모두 질서와 예측 가능성을 창출하는 역할을 하며, 둘 다 특정 규칙과 원칙에 의존한다. 주술과 과학 간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낼 수 있다. 그러므로 현대 인류학자들은 종종 과학을 순전히 이성적이고 마술을 비이성적으로 보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다. 과학과 주술 둘 다 문화적인 시스템이며, ‘과학적’ 또는 ‘마법적’으로 보이는 것은 문화와 역사적 맥락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성이 지배한다고 믿어지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주술적 사고는 공존한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마법이나 주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AI 기술에 대한 인간이 가지는 기대와 상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많은 이들이 새로운 기술이 마법이라도 부릴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이 기술이 어떤 것인지, 어디로 향해 가는지 아직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그 쓰임새는 우리 자신이 결정한다. 우리는 AI에게 인간을 대체할 역할을 주면서 인간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꿈꾸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도록 AI에게 다양한 역할을 부여할 것인가? 기왕에 소원을 빌고 싶다면, 먼저 어떤 용도로 어떻게 사용할지를 충분히 합의하면서 향후 도달할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함께 꿈꾸어 보면 좋겠다.

최진숙 UNIST 교수 언어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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