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시인의 여름산을 찾아서 - 경북 청송 주왕산

절골계곡 따라 흐르는 물에
거짓과 위선이 모두 부서진다
비우고 돌아서자 산도 일어선다

경북 청송의 주왕산은 튼튼하다. '택리지(擇里志)'의 저자 이중환은 주왕산을 "모두 돌로써 골짜기 동네를 이루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는 산"이라고 했다. 거대하고 강건한 돌로 이뤄진 산은 무겁게 솟아 올라 있다. 서로 단단히 어깨를 맞댄 봉우리들은 오르락내리락 하며 서늘한 기운을 뿜어낸다.

장맛비 개인 뒤 축축하게 젖은 산의 풀빛은 더욱 짙어져 싱그럽다. 싱그러움은 계곡을 따라 흐르다 평지에 이른다. 그 힘은 푸른 논과 밭을 융단처럼 펼치고, 사과나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경북 의성에서 청송가는 914번 지방도로는 여름산의 능선을 타고 자연스럽게 흐른다. 억지로 터널을 뚫거나 단절된 곳을 잇는 다리없이 산과 산으로 이어진다. 풀빛에 물든 풍경은 다가섰다 지나치기를 반복한다.

청송 주산지는 주왕산 남서쪽 끝자락 거대한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입구 주차장에서 주산지까지 600곒 남짓한 산길은 병풍 같은 바위산을 배경으로 야생화와 들풀이 어우러져 호젓한 정취를 자아낸다. 특히 주산지는 4~5월 새풀이 돋을 무렵 새벽녘 물안개와 버드나무가 연출하는 몽환적인 풍경으로 사진가들의 발길을 끌어당긴다.

주산지는 조선 숙종(1720년) 때 가뭄에 대비해 농업용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수이다. 길이 100곒, 너비 50곒 규모의 조그만 이 호수는 아무리 심한 가뭄이 들어도 완전히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축조된지 300년이 지난 지금도 이전리 마을사람들은 주산지의 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주산지 한 가운데는 수령 200년의 아름드리 왕버드나무와 100년 된 능수버들 30여그루가 자라고 있다. 오랜 세월 물 속 혹독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나무들은 몸이 뒤틀어지고 굽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물에 의지하고 산다. 모든 생명의 원천인 물에 온 몸을 내맡긴 세월 동안 주산지의 한 부분으로 뿌리내렸다.

주산지는 본격적인 장마를 앞두고 바닥을 일부 드러냈다. 왕버드나무와 능수버들은 물에 잠겨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군데군데 나무의 일부가 떨어져나가고 바싹 마른 물이끼가 하얗게 껍질에 앉은 모습은 발레리나의 못생긴 발을 떠오르게 한다. 화려했던 어떤 삶의 이면은 그렇게 상처투성이였다.

주산지 옆 절골계곡은 주왕산의 숨겨진 절경이다. 주등산로가 아닌 탓에 사람들의 발길이 적어 한적하고 고즈넉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 봉우리마다 우뚝 솟은 거대한 기암이 산의 힘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계곡은 10㎞에 걸쳐 크고 작은 돌들이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안이 훤히 보이는 맑고 투명한 물은 쉴새없이 흐른다. 흐르다 큰 돌 앞에서 부서지고, 다시 물길을 낸 뒤 흐른다. 물과 돌의 힘에 사로잡혀 도시의 매연과 악취와 먼지는 모두 부서진다. 훌훌 털어내고 일어서자 산도 함께 일어선다.

'여름산은 솟아 오른다/열기와 금속의 투명한 옷자락을 끌어 올리며/솟아 오른다 발등에 못 안박힌 것들은 다 솟아 오른다 저기/비행기가 수술톱처럼 하늘을 끊어낸다 은빛 날개가 곤두선다 … 여름산은 솟아 오른다/여름산은 땀 흘리지 않는다 힘 쓰지 않는다/여름산 여름산 여름산 우리는 그늘에서 콜라를 마셨다'(시 '여름산' 부분)

시인 이성복의 시 '여름산'은 거짓과 위선에 대한 자기반성의 글이다. 콜라를 마시며 프랑스로 떠나는 여인을 생각하며 우는 시늉을 하고, 가난하지 않으면서 가난한 척하며, 소외받는 이웃을 생각하면서 우는 흉내를 내는 위선을 뚫고 여름산은 솟아 오른다. 결국에는 여름산조차 부정하지만 그 모습이나마 여름산은 분명 솟아 올랐다.

# 주변 볼거리

주왕산국립공원 안에는 전기 없는 마을로 유명한 내원동이 있다. 촛불하나로 온 가족이 옹기종기 방안에 모여 이야기 꽃을 피웠던 예전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9가구가 살고 있으며 민박을 할 수도 있다.

청송야송미술관은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지낸 한국화가 야송(野松) 이원좌씨가 옛 신촌초등학교를 개조해 만든 미술관이다. 한국화와 도예작품, 국내외 화가들의 작품 등 4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7월19일까지 채색화그룹 '춘추회'의 채색화 전시화가 열리고 있다.

청송자연휴양림은 청송과 포항을 잇는 31번 국도 중간에 위치해 있다. 산세가 수려하고, 수목이 울창해 산림욕장으로 인기가 높다. 숙박, 편의, 체육시설과 야영장 등을 갖추고 있다. 입장료는 어린이 300원부터 어른 1천원(개인 기준)까지이다. 통나무집 이용료는 9평을 기준으로 3만5천~6만원이다.

송소고택(경북 민속자료 제63호)은 파천면 덕천리에 있다. 조선시대 만석꾼 심처대의 7대손 송호 심호택이 지은 집이다. 옛 가옥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한옥체험 숙박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054·870·6230(청송군청 문화관광과), 청송문화관광 홈페이지(tour.cs.go.kr).

# 찾아 가는길

울산에서 대구로 가는 경부고속도로→금호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 진입→의성 IC→우회전→첫번째 사거리에서 직진→의성읍→914번 지방도로 진입→길안→청송→주왕산→주산지(4시간 정도 소요)

# 먹거리

청송 하면 떠오르는 먹거리는 달기약수로 끓인 닭백숙이다. 달기약수탕 근처에서 맛볼 수 있다. 달기약수는 미네랄 성분이 많이 함유돼 쏘는 듯한 맛이 난다. 닭백숙은 녹두를 비롯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끓인다. 백숙과 함께 나오는 산나물, 도라지무침 등도 즐길 수 있다. 달기약수탕 주변의 부산식당, 예천식당, 대구식당 등이 유명하다.

글·사진=서대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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