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자취 서린 대흥사 입구 나무터널 청량감 더해
김남주·고정희 시인 생가 땅끝마을 가는 길목 나란히 위치

연두빛 풍경에 잠긴 섬진강을 건너자 낯선 냄새가 바람 속에서 묻어 난다. 집요하게 따라붙던 차들은 눈에 띄게 줄어 든다. 컨베이어 위에 멈춰 서서 모든 운동이 정지한 듯한 착각에 빠져들 만큼 한산하다.

섬진강 서쪽 전라도의 야트막한 산들은 봉긋이 솟은 여성의 젖가슴과 닮았다. 경상도의 우락부락하고 힘이 넘치는 산과는 다른 느낌이다. 경상도 산이 강퍅하지만 속정 깊은 '아지매'라면 전라도 산은 그저 푸근하고 인내심 많은 '댕네'(아줌마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구구절절한 서편제 가락처럼 산은 곡선을 그리다 끊어지고 다시 이어진다.

전라남도 해남은 두명의 현대시인을 길러냈다. 김남주(1946~1994)와 고정희(1948~1991) 시인이다. 두 시인 모두 40대 중반에 암과 사고로 세상을 떴다. 슬픔의 시대를 온 몸으로 노래하더니 결국 슬프게 생을 마감했다.

이들에 앞서 고산 윤선도(1587~1671)와 추사 김정희(1786~1856)가 해남에서 서글픈 삶을 이어갔다. 고산은 귀양을 반복하다 말년에 해남에 정착했다. 추사는 제주도에 귀양가는 길에 한번, 귀양을 끝낸 뒤에 한번 해남에 들렀다. 해남 대흥사 일지암에서 정진했던 초의선사와 인연이 없었다면 그야말로 팍팍한 시절이었다.

순천에서 목포까지 이어진 2번 국도를 타고 보성을 지나면 강진이다. 강진에서 18번 국도로 갈아타면 길은 해남으로 안내한다. 추수를 앞둔 보리가 일렁이고, 문학작품과 그림에서 접했던 남도의 '시뻘건 땅'에서는 양파농사가 한창이다. 물이 잔뜩 차 있는 논과 그 안에 처연하게 서있는 경운기가 곧 농번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해남 답사 1번지는 두륜산(706곒) 대흥사다. 추사 김정희와 차를 통해 문학적, 정신적 교감을 나눴던 초의선사가 대흥사 일지암에 기거해서 유명한 사찰이다. 서산대사의 의발이 봉안돼 있고, 추사와 원교 이광사의 글씨가 각각 무량수각과 대웅보전의 현판으로 걸려 있어 역사학도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매표소에서 절까지 이어진 숲길은 덩치 큰 나무들이 터널을 이루면서 청량감을 준다. 동백나무, 소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삼나무, 서어나무, 배롱나무, 대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초여름 마지막 연두빛을 발산하는 숲길에서 피곤한 일상의 두께는 조금씩 얇아진다. 절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바람처럼 가볍다.

고산 윤선도 고택은 대흥사와 해남읍 사이에 있는 연동마을 끝에 있다. 수령 500년, 높이 20곒의 은행나무가 해남 윤씨 종가임을 알려준다. 고산이 살았던 녹우당(綠雨堂)과 고택 사이 돌담길에서 옛집의 정취가 물씬 난다. 은행나무도 크더니 고산사당 앞 이팝나무도 오랜 연륜을 자랑한다. 모두 옛집과 잘 어울린다.

고산 윤선도 고택의 주요 건물인 녹우당과 유물전시관은 현재 문을 닫은 상태다. 녹우당 주인은 폐쇄 이유에 대해 이렇게 안내했다. '긴급 보수공사 지연과 당국의 무례하고 통념에 어긋한 고산유적지 관리운영으로 인하여 임시 휴관합니다. 죄송합니다. 녹우당 주인'

김남주, 고정희 시인의 생가는 땅끝마을 가는 길에 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중심에서 현실을 질타했던 김남주 시인은 삼산면 봉학리에서 태어났다. 시인의 생가임을 알리는 철제 팻말의 글은 고은 시인이 썼다. '그의 언어는 폭발적인 남성적 언어로서 세상을 잠깨우는 힘으로 빗발쳤다'는 마지막 문장이 시인의 일생을 함축한다.

마을주민들은 "시인이 어렸을 때부터 똑 부러지게 똑똑했다"고 회상했다. 집에는 현재 동생 김덕종씨가 살고 있다. 올해 3월 새단장한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4월이 지나고 5월이 지나도 깜깜 무소식이란다. 담쟁이가 담장을 빽빽하게 뒤덮은 집은 사람이 오래 드나들지 않은 듯 잡초만 무성하다.

김남주 시인과 같은 시기에 여성적 언어로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했던 고정희 시인은 삼산면 송정리가 고향이다. 마을사람들이 '고쟁이(고정희)'라 부르는 그는 스무살 무렵까지 고향에서 시를 썼다.

대문을 활짝 열어 놓은 그의 집은 순해보이는 말라뮤트가 지키고 있다.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면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더니 그는 자신의 죽음 뒤에 생가라는 여백만 남겨 두고 뭇사람들의 발자국으로 채우고 있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고정희 시인의 시 '외경읽기-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여백을 남긴다' 일부)

# 주변 가볼만한 곳

해남 하면 떠오르는 곳이 땅끝마을이다. 해남 읍내에서 완도 방향으로 40㎞ 정도 가다보면 나온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남해 바다와 더불어 높이 39곒 전망대,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모노레일카 등이 볼거리다.

달마산 미황사도 해남에 있다. 우리나라 불교가 바다로 유입됐다는 '해로유입설'을 뒷받침하는 고찰로 대웅전이 보물 제947호로 지정돼 있다. 달마산 정상의 기암괴석과 어울리는 절 풍경이 눈길을 끈다.

해남까지 갔다면 강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해남에서 강진 가는 길에 다산초당이 있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지은 별채로 주변에 나무가 우거져 있어 시원한 느낌을 준다. 주차장에서 다산초당까지 10여분 정도 올라가는 산길도 가벼운 산책 코스로 제격이다.

강진읍내에는 김영랑 시인의 생가가 잘 정비돼 있다. 강진군청 인근에 있어 찾기도 쉽다. 생가는 초가로 정비돼 있으며, 건물마다 시비가 세워져 있다. 시인이 쓴 시의 이미지를 최대한 반영해 주변 환경을 꾸몄다. 초가집 툇마루에 앉아서 생가 뒤 대나무숲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도 들을 수 있다.

# 해남 가는 길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순천까지 간다. 순천에서 2번 국도를 타고 목포 방향으로 달린다. 보성을 거쳐 강진에서 빠져나와 18번 국도로 갈아타면 해남으로 갈 수 있다. 울산에서 해남까지는 자가용으로 4~5시간 소요된다.

글·사진=서대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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