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살오른 영덕대게 찾는 인파에
목청 높여 흥정하는 아낙들 여전해
풍문으로 만발했던 경북 영덕의 복사꽃은 지고 없다. 5월 말까지 살이 피둥피둥하게 오른다는 영덕대게와 이제 본격적으로 초록빛에 힘을 주는 청정의 나무와 들풀만이 관심의 끄트머리를 붙든다.
소설가 김주영씨의 장편소설 <천둥소리>에서 경북 영덕 강구항은 일제시대 말기부터 한국전쟁이 한창 진행될 때까지 비정한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숨구멍 같은 역할을 한다.
유교적 가치관에 따라 수절하던 주인공 신길녀가 여러 남자들에게 겁탈을 당하고,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 아버지와 사랑하던 사람이 비운의 생을 마감하는 생지옥 같은 시절 속에서도 영덕 강구항은 가난하지만 인간적인 정만큼은 포기하지 않는 삶을 따뜻하고 가슴 뭉클하게 보여준다.
영덕 강구항은 길녀의 두번째 남자라 할 수 있는 지상모의 고향이다. 지상모의 간계에 빠져 겁탈을 당하고 아이까지 낳은 길녀는 궁여지책으로 시댁인 경북 영양을 떠나 영덕으로 간다. 지상모 대신 그의 본처인 궐녀를 만나게 되고, 신분을 숨긴채 궐녀와 함께 선착장에서 품을 팔며 질긴 삶을 이어간다.
친정이 있는 함양으로 돌아간 길녀는 여러번 강구를 다시 찾는다. 지상모 때문이 아니라 궐녀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지상모가 뻔뻔스럽게 길녀를 내칠 때 여비에 보태 쓰라며 소중한 은가락지를 내놓은 궐녀였고, 길녀가 아버지와 연인인 황점개가 떠나 피폐해졌을 때 투박하지만 푸근하게 감싸준 것도 그였다.
여편네(궐녀)는 턱에 와서 들쑥날쑥하는 가쁜숨을 한동안 삭히더니 길녀의 손을 잡아채어 뭔가를 쥐어 주었다. 손바닥에 담겨진 것은 은지환이었다.
"떠나 보내고 나서야 생각나더구만, 내왕행보에 노자인들 신실할까, 빠듯한 노자에 이거라도 팔아 쓴다면 사흘 끼니는 벌충이 되잖겠는가. 폐단된다 생각 말고 이거라도 지니고 가야지. 그래야 마음이 든든할게야"
영덕 강구항은 지난달 14~16일 인근 지품면 오천1리 복사꽃 마을과 연계한 '제9회 영덕대게축제'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활기차다. 평일에도 대게를 맛보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내륙지방에서만 살았던 길녀가 처음 강구에 도착했을 때 비릿한 갯내음이며 '목청높은 아낙네들과 걸걸하고 농하기 좋아하는 사내들이 많았다'고 느낀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포구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대게식당마다 호객을 하는 목청은 높고, 수족관에서 대게를 건져올리는 사내들의 팔뚝은 해풍에 그을려 강하고 단단해 보인다. 어판장에서 대게를 파는 노파가 건네주는 대게 다리를 무심히 먹고 그냥 돌아서자 곧 억센 지청구가 뒤통수를 때린다.
대게식당 거리가 끝나는 어업창고 맞은 편으로는 언덕진 고샅을 따라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키작은 집들이 이마를 비빌 듯이 모여있다. 바다 쪽으로 난 마당의 양지바른 쪽에는 빨래며, 도루묵 같은 작은 생선이 널려 있다. 창고로 쓰이는 듯한 한 오래된 토담집에서는 덩치 큰 개 한마리가 무료한 듯 풀을 뜯는다.
강구항과 축산면을 이어주는 해안도로(918번 지방도) 옆은 시장에서 생선을 팔 여력이 없는 노인들이 미역이며 작은 생선을 말리느라 분주하다. 허리가 반으로 굽어 건조대를 옮기는데 애를 먹는 모습이 역력했으나 생활력은 좀체 꺾이지 않는 듯하다. 얕은 해안을 따라 흰머리 성성한 해녀들이 자맥질하는 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소설 <천둥소리>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극에 달했던 근현대사의 뒷전에서 역사의 비극을 온 몸으로 이겨낸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양반집 며느리였던 길녀가 살아남기 위해 품을 팔고, 생선을 머리에 이는 모습과 완악하게 느껴지는 포구 사람들의 생활은 고단했던 시대를 살았던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포구는 항변하고 있다. 삶의 윤회가 지속되는 한 오늘도 수많은 길녀는 강구항 포구에서 흥정을 하고, 미역을 말리고, 바다로 난 툇마루에서 지친 몸을 누인다.
▶ 주변 가볼만 한 곳
경북 영덕 강구항에서 해안도로(918번 지방도)를 따라 축산면 쪽으로 25㎞ 정도 달리다 보면 영덕의 명소인 '해맞이공원(사진)'이 나온다. 풍력발전소의 거대한 바람개비가 길잡이 역할을 한다. 하얀 등대와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청자빛 바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짭짤한 바다 바람 등이 절로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부채꽃과 패랭이꽃 등 야생화가 공원의 정취를 더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기념해 만든 이 공원은 해안선을 따라 목책으로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으며, 1천500여개의 나무계단 중간에는 동해안 해돋이 전망대가 두군데 있다. 특히 이 해안도로는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운치있는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 영덕 먹거리 대게
영덕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먹거리는 대게이다. 강구항만 해도 수십여곳의 대게식당이 포구를 따라 이어져 있다. 강구항의 한 대게식당에 따르면 영덕대게는 이달말까지는 살이 가득차 있다. 일부는 냉동을 하기 때문에 다음달 초까지는 대게 맛을 볼 수 있다. 강구항에 있는 대부분 식당에서는 보통 7마리에 5만원을 받는다. 따로 무게를 달지 않고 손대중으로 게를 고르기 때문에 흥정을 잘하면 보다 큰 대게를 먹을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보다 싼 가격에 대게를 구입할 수 있지만 식당 자릿세는 따로 계산해야 된다.
▶ 영덕 강구항 가는 길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경주-안강-포항을 거쳐 해안도로를 따라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약 2~3시간 가량 걸린다. 강구항에서 해맞이공원까지 간다면 자가용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 시외버스는 하루 8번 운행한다. 첫차는 오전 5시33분, 막차는 오후 6시28분(2006년 3월31일 기준)에 있다. 약 3시간 소요된다. 문의 054·734·2121(영덕군청)
글·사진=서대현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