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이룬 사랑 간직한 창건설화
무량수전 옆 거대한 바위 '부석'
서로 닿지 못하는 안타까움 흔적

영주 부석사(浮石寺)의 봄은 더디 온다. 지난 가을 절 주위를 노랗고 빨갛게 물들였을 은행나무와 사과나무는 제 잎 다 털어낸 채 아직도 맨 가지로 봄을 기다린다. 산문으로 올라가는 호젓한 길 옆, 듬성듬성 피어난 노란 산수유만이 황량한 풍경에 봄이 근접해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소설가 신경숙씨의 단편소설 '부석사'처럼 절을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소설 속 남자와 여자는 부석사를 찾아가다 눈 덮인 소백산의 한 낭떠러지에서 멈추지만 풍기 IC를 빠져나와 931번 지방도를 달리다 보면 부석사를 알리는 팻말이 집요하게 길을 알려준다. 부석사는 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다.

주로 사과와 인삼농사를 짓는 부석면의 봄에서는 거름 냄새가 난다. 배설물을 가득 싣고 털털 거리며 2차선 국도를 달리는 경운기가 풀풀 날리는 냄새는 은근하게 허기를 자극한다. 향긋한 사과꽃 향기를 기대하기에 4월은 이르다. 5월 초순, 사과나무가 한꺼번에 꽃을 틔울 때까지 무미한 봄은 이어진다.

그러나 부석사는 사랑을 화두로 던지는 절이라는 문학적인 풍문만으로도 사람을 끌어당긴다. 창건 설화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또는 그리움의 정서가 배어있다.

부석사를 창건한 신라고승 의상(義湘)이 당에서 유학할 때 선묘(善妙)라는 소녀가 그를 사모했다. 신분상 불가능한 사랑이었다. 의상이 신라로 귀국하자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그의 무사귀환을 인도했다. 의상이 신라에서 절을 지을 때 방해하는 무리가 있었다. 이 때 선묘가 용의 모습으로 나타나 거대한 바위를 들어 그들을 제압했다. 공중에 뜬 그 바위가 남아 절 이름의 유래가 됐다.

무량수전 옆에는 '부석(浮石)'이라는 글자를 선명하게 새긴 바위가 또 다른 바위 위에 포개져 있다. 선묘바위라 불리는 바위 사이에는 실이 드나들만큼의 미세한 틈이 있다고 한다. 완전히 다가서야 사랑이 완성되는데 육중한 바위와 바위 사이 틈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사랑의 흔적이다. 시인 정호승은 이 흔적 앞에서 죽음만한 무게와 깊이로 사랑하라고 노래한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摩指(마지)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시 '그리운 부석사' 전문)

비로자나불과 아마타불은 부석 옆에 있다. 시 속에서 주는 큰 울림과 달리 두 석불은 작고 아담하다. 부석에 얽힌 전설과 선묘당의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무량수전 아미타불은 퉁명스런 표정이다. 결국은 모든 것을 끌어 안으면서도 짐짓 아닌 척 하는 듯해 오히려 더 인간적이다. 부석사는 원래 화엄종 종찰이지만 화엄종 주불인 비로자나불 대신 아미타불이 주불이다. 화엄도량의 정점에 정토신앙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무량수전 동쪽에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3층석탑이 있다. 지금은 보수공사 중이다. 탑 옆으로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조사당이 보인다. 조사당 옆 텃밭에는 꽃이 잔뜩 피어있다. 전체적으로 고즈넉한 절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앙증맞다. 조사당에는 의상대사가 심은 지팡이에서 자랐다는 선비화(仙飛花)가 철조망에 갇혀 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선비화에 대한 퇴계 이황의 시와 선비화에 얽힌 변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광해군 때 경상감사 정조가 나무를 베었으나 나무는 다시 자랐고, 계해년 인조반정 때 정조는 죽임을 당했다. 박지원의 일가인 박홍준도 어릴 때 실수로 선비화를 꺾었다가 나이들어 곤장을 맞고 죽었다. 이름은 선비화지만 꽃 피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 내려와 극락과 사바세계를 잇는 안양루에서 내려다 보이는 절 풍경은 그윽하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듯한 전각 지붕 사이로 극락을 찾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과 조용히 사바세계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간다. 머지않아 사과꽃 지천으로 필 때 절을 찾을 수많은 인파의 번잡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량수전에서는 스님들의 독경 소리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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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는 전국 사과 생산의 13%를 차지할 만큼 사과가 많이 난다. 풍기에서도 심심찮게 사과밭을 볼 수 있다. 사과나무는 5월 초에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린다. 그 때를 즈음해 크고 작은 축제들이 열린다.

풍기에서 부석사 가는 931번 지방도와 영주에서 부석사 가는 935번 지방도 어디에서도 사과꽃을 감상할 수 있다. 가을과 더불어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기이기 때문에 최소 2주 전에 숙박을 예약하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과 선비들의 생활상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선비촌도 가까운 곳에 있다. 부석사에서 931번 지방도를 타고 풍기 IC 방향으로 15~20분 정도 차를 달리다 보면 보인다.

선비촌 입장료(어른 3천원, 어린이 1천원)를 내면 소수서원은 물론 안향과 이황 등 유학자들과 유교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소수박물관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서원을 감싸고 도는 죽계천을 따라 백운동계곡 쪽으로 이어진 둑길이 운치가 있다. 선비촌은 실제 경북지역에 있었던 가옥을 그대로 옮겨왔기 때문에 옛사람들의 주거공간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희방폭포로 유명한 희방사도 멀지 않다. 희방폭포는 우거진 잡목과 시원한 폭포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폭포를 따라 산길을 오르면 희방사가 자리하고 있다.

영주 부석사는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경부고속도로 금호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풍기 IC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부석사까지 4시간 가량 걸린다.

시외버스는 영주(제천)까지 하루 6차례 운행한다. 첫차는 오전 8시40분, 막차는 오후 6시40분에 있다. 요금은 1만4천원이다. 기차는 무궁화호 열차가 오후 3시15분, 11시28분 하루 2차례 운행한다. 요금은 1만1천700원(어린이 5천900원)이다. 모두 영주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부석사까지 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글·사진=서대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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