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순태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

집 앞에 석류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일주일 전 피기 시작한 꽃이 행여 지지 않을까 매일 노심초사하였다. 꽃시 연재를 하는 이의 숙명이다. 봄꽃이 사나흘, 길어야 일주일이라면 여름꽃은 제법 오래 피어 있다. 석류꽃도 일주일 넘도록 싱그러워 가슴을 쓸어내렸다.

초록으로 짙어지는 세상에서 주홍으로 반짝이는 꽃은 단연 눈에 띈다. 송나라 시인 왕안석도 석류꽃의 이러한 모습에 착안하여 ‘온통 푸른 잎사귀 속 붉은 점 하나(萬綠叢中紅一點)’라 읊었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 남자들 사이에 끼어 있는 한 사람의 여자를 가리키는 ‘홍일점(紅一點)’이다.

소나무 숲 지나니 길이 세 갈래라
언덕가에 말 세우고 이씨 집을 물어보네.
농부가 호미로 동북쪽 가리키니
까치집 지은 마을 안에서 석류꽃이 드러나네.
松林穿盡路三丫(송림천진노삼아)
立馬坡邊訪李家(입마파변방이가)
田父擧鋤東北指(전보거서동북지)
鵲巢村裏露榴花(작소촌리노유화)

▲ 남일호의 ‘화조화첩(花鳥畵帖)’ 중.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 남일호의 ‘화조화첩(花鳥畵帖)’ 중.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조선 후기 시인 이용휴(1708~1782)의 ‘산집을 방문하다(訪山家)’라는 시다. 갈림길이 나오자 말을 세우고 시인은 농부에게 친구 이씨 집이 어디냐고 묻는다. 농부가 호미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멀리 마을 안쪽에 석류꽃이 보인다. 친구 집은 잊고 초록 풍경에서 붉게 빛나는 석류꽃만 시인의 눈과 마음에 새겨지는 순간이다.

석류는 열매 안에 붉은 알갱이들을 품고 있다. 이 때문에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던 과일이다. 또 임금이나 황제가 하사하던 귀한 과일이기도 했다. 뭇 꽃들이 시드는 초여름에 유난히 눈에 띄는 붉은 꽃, 귀한 선물로 주고받던 열매, 석류는 이처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극진한 사랑을 받아 오고 있다. 석류꽃을 보고 있자니 입안이 시큼해진다.

안순태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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