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은 4, 5월에 개화하여 다양한 색깔과 자태, 향기로 꽃 중의 왕 곧 화왕이라 칭송받았다. 이 꽃은 중국 원산이지만 7세기 전반 신라 선덕여왕의 지혜를 보여주는 ‘지기삼사(知幾三事, 세 가지 사건의 기미를 미리 안 일)’ 설화에 등장하여 이른 시기부터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졌으며, 13세기 초 고려 고종 때 지은 <한림별곡>의 ‘홍(紅)모란 백(白)모란 정홍(丁紅)모란’이라는 구절로 보아 여러 색깔의 모란(사진)을 감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부귀화라는 이칭에서 보듯 이 꽃은 일반인의 부러움을 받은 면이 있으나 부귀를 추구하지 않은 탈속한 사람에게는 도리어 멸시당한 꽃이기도 하였다.

몸을 잊고 나라 위해 목숨 바침이 곧 지극한 충성이니
마음껏 애써 윗사람을 섬기느라 온갖 꽃들에서 사냥하네.
모란꽃 떨기 속에 어찌 일찍이 찾아왔으랴?
응당 ‘꽃 중의 부귀한 존재’라는 명성 회피하려 함이리라.

殉國忘身卽至誠(순국망신즉지성)
勞心事上獵 羣英(노심사상엽군영)
牧丹叢裏何曾到(목단총리하증도)
應避花中富貴名(응피화중부귀명)

이 시는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의 ‘모란꽃이 활짝 피니 많은 벌들이 다투어 모이는데도 다만 꿀벌만은 한 마리도 오지 않으므로 느낌이 있어서 짓다(牧丹盛開 羣競集 惟蜜羣一不到 感而賦)’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송의 유학자 주돈이(1017~1073)가  <애련설>에서  “국화는 꽃 중의 은자이고,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존재이며, 연꽃은 꽃 중의 군자이다.”라고 한 꽃들의 특성에 바탕을 둔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활짝 핀 모란꽃에는 많은 벌이 다투어 모여들지만 지극한 충성심과 정성으로 여왕벌을 위하여 온갖 꽃들에서 사냥하는 꿀벌만은 찾아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것은 ‘부귀한 존재’로 알려진 모란꽃에서 꿀을 구걸했다는 오명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 경종(警鍾)을 울려주는 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성범중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명예교수·<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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