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순태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는 뜻이다. 석류꽃이나 치자꽃, 능소화 같은 여름꽃은 열흘 이상 피어 있기도 한다. 그런데 열흘을 훌쩍 넘겨 100일 넘게 피는 꽃이 있다. 배롱나무에서 7월부터 9월까지 피는 배롱나무꽃이다.

배롱나무는 ‘백일홍나무’를 줄여 발음하면서 만들어진 말이다. 땅에 풀로 자라는 초본 백일홍도 있는데(원산지는 멕시코) 그것과 구분하기 위해 배롱나무를 목백일홍이라고도 한다. 또 배롱나무는 그 수피(樹皮)가 매끈하여 줄기를 만지면 가지와 잎이 간지럼을 타듯 흔들린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간지럼을 무서워하는 나무’라는 뜻의 ‘파양수(怕癢樹)’라고도 했다.

허옇게 센 백발의 주인 늙은이
칠월에 이미 꽃이 핀 것 보았지.
나그네 생활로 한 달이 지났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예전처럼 붉게 피어 있네.

皤皤白髮主人翁(파파백발주인옹)
曾見花開七月中(증견화개칠월중)
作客已經三十日(작객이경삼십일)
還家猶帶舊時紅(환가유대구시홍)

▲ 신윤복의 ‘소년이 붉은 꽃을  꺾다(少年剪紅)’  간송미술관 제공
▲ 신윤복의 ‘소년이 붉은 꽃을 꺾다(少年剪紅)’ 간송미술관 제공

신광한(1484~1555)이 어느 해 7월, 학질(말라리아)에 걸려 한 달간 집을 떠나 있게 되었다. 집을 나서기 전 배롱나무꽃이 붉게 핀 것을 보았는데, 한 달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여전히 그 꽃이 붉게 피어 있어 읊은 시다.

배롱나무꽃은 한번 피면 100일이 넘게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꽃이 피었다 떨어지고 그 자리에 새 꽃이 피어 100일 동안 붉게 보이는 것이다. 소나무가 푸른 잎이 지고 난 자리에 곧 새잎이 돋아 늘 푸르게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조선 후기 학자 신경준(1712~1781)은 배롱나무꽃이 얼마나 오래 피어 있는가 관찰한 적이 있다. 그 결과 먼저 핀 꽃이 지려 할 때 그 뒤의 꽃이 이어서 피어나 100일 하고도 열흘 남짓 붉은빛을 유지하더라고 했다. 배롱나무꽃을 읊은 옛 시인들도 대부분 그 꽃이 100일 동안 붉게 보이는 이유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안순태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알고 보면 반할 꽃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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