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었던 등하굣길·바다수영 배운 일 등
중학교 물론 초등생 기억 아직도 생생
힘들었지만 순수했던 추억은 ‘활력소’

▲ 박기준 변호사

중학교 동기회나 동창회가 조직되어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고교 동문회는 어느 학교나 활발하다. 대학 동창회는 성년이 되어 함께 했던 시기라 잘 되는 편이다. 초등 동기회는 나름대로 치기어린 순수한 마음들이 모여서 그런지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제법 잘 된다고 한다. 다른 견해도 있겠지만 실상이 그런 것 같다. 나의 경우 드물게도 중학교 동기생 모임이 비교적 활발하고 전체 동창회가 조직되어 있어 10년전 나도 동창회장을 맡아서 봉사했고 지금도 울산과 서울에서 동기생들과 정기적으로 만난다. 이런 모임은 나이와 무관하게 즐거운 일이다.

중학 입시가 추첨제로 바뀐 첫해 입학생이라 초등학교 시절 비교적 마음껏 뛰놀았다. 추첨으로 배정된 학교가 내가 살던 염포에서 멀리 떨어진(당시에 더욱 그러하였다) 공업탑 로터리 인근 중학교여서 등하교가 쉽지 않았다. 지금은 울산시의 시가지 중심이 신정동 삼산동으로 바뀌었지만 그 시절은 옥교동 성남동이었고, 동천교(1970년대 건설 당시 명촌다리라 불렸고, 현재의 명촌대교와는 다름)는 놓이기 전이라 염포에서 시내버스로 효문동 연암동 반구동 학성동을 지나 옥교동 종점까지 와서 버스를 갈아타고 태화교를 건너 신정동, 시청 앞을 거쳐 공업탑로터리 종점까지 간 다음 걸어서 등교해야 했으니 긴 시간동안 매우 힘들었다.

펜글씨를 반듯이 빠르게 썼던 탓에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의 잡무를 가끔 도와드렸는데 주로 선생님이 채점해 놓은 점수를 정리해서 옮겨 쓰는 일, 학습 지도안을 예쁜 글씨로 정사하는 일 등이었다. 당시 주먹크기 작은 공을 사용하는 축구가 중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시킨 일을 빨리 끝내고 운동장으로 나가 축구하고 싶어 애태웠던 기억, 한학년 동급생 전체가 여름방학때 동구 일산해수욕장으로 해양 훈련을 가고 서너달에 한번씩 단체로 극장에서 영화 관람했던 일, 버스조차 잘 안 다니는 외곽 시골에 사는 급우의 집에 놀러가 원두막 참외밭에서 참외를 따 주기에 책가방에 넣어 가지고 온 추억 등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나간 5월 첫주의 어린이 날에 부르는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는 노래를 들으면 남다른 느낌을 받는다. 나는 초등학교를 두군데 다녔는데 염포에서 입학해 몇달도 채 안되어 아버지의 일 때문에 강동으로 전학했고 4학년 초까지 다니다가 다시 염포로 옮겨 졸업했다. 당시 두 학교는 한 학년에 한두 반 있는 작은 학교였다. 때마침 전학온 첫날 학교 운동장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던 노래 가사의 ‘나는 새, 푸른 하늘, 냇물, 벌판, 자란다(성장)’ 등에서 받았던 벅찬 감동은 지금도 그대로 느껴진다.

정자 해변에서 뛰놀면서 바다 수영을 자연스레 익혔기에 따로 배우지 않았음에도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잘 한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겠지만 혹시 웬만한 물에 노출되어도 헤엄쳐 나갈 자신감은 있다. 다니던 초등학교 인근 현대차동차 소속 실업 배구 선수 선생님이 학교에 새로 만들어진 학생 팀을 지도해 주어 그 일원으로 국제식 배구에 대한 지도와 훈련을 받은 덕분에 이후 친목 또는 교내 배구 시합 등에서 코트에 들어서면 내가 중심이 되어 경기를 주도해 나갈 수 있었다. 초등 시절 학교 도서관이 따로 없었고 각 학급 교실에 설치된 문고에 위인전, 어린이 명작 등 책이 제법 있었는데 다 읽고 모자라 책에 갈증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취미란에 ‘독서, 영화 감상’이라고 적는다.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저워스는 ‘무지개’란 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하였다. 자라서 어른이 되지만 어린 시절의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간직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 마음은 어른이 본받고 배워야 하는 정신의 원형이라는 뜻이리라.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 한때의 기억으로 평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른이면 누구나 가슴속에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 시절의 추억은 아름답게 색칠되어 있다. 좀 힘들었어도 맑음과 순수가 가득하기에 늘 아름답고, 기억해 보면 하나하나가 언제나 활력으로 다가온다.

박기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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